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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이야기

시간이 멈춰버린 찬란했던 고대도시 폼페이

by 낭시댁 2017. 2. 8.

어릴적 내가 좋아했던 시간탐험대 돈데크만이라는 만화영화가 있었다. 돈데기리기리 돈데크만~

폼페이라는 도시를 처음 본게 이 만화영화에서였다. 

너무 인상적이어서 안잊고 있었나보다. 폼페이를 직접 가본날 이 만화영화가 생생하게 떠올랐으니까-

시간여행으로 과거에 갔는데 베수비오화산이 폭발하기 바로 전날의 폼페이로 가게 된것이다. 아무리 시민들한테 경고하고 알려줘도 시민들이 니네가 미쳤구나하면서,, 시장선거운동 비슷한거에 다들 정신이 팔려있었다. 내가 어찌나 속이 터졌던지...




폼페이 딱 도착하니까 비가 막 억수같이 쏟아졌다. 

아직 입장도 안했는데 온 도시가 물바다...ㅠ.ㅠ 방콕만 이런게 아니었어... 

우산을 써도 옷이 다 젖고,, 신발도 다 젖었다.

비때문에 입장이 안되다가 빗줄기가 잦아들자 드디어 입장~


가이드의 설명에 의하면, 당시 화산폭발이라는 개념이 없던 시절이었단다. 시민 대부분이 순식간에 화산재에 묻혔고 극소수의 살아남은 사람들은 이웃마을로 도망가서 화산이 폭발해서 다 죽었다며 도움을 요청했으나 산이 어떻게 폭발하냐며 오히려 안좋은 액운을 몰고왔다며 돌에 맞아 죽기도 했다고 한다.

 

폼페이는 기원전에 생긴도시이며 로마의 부호들이 거주하거나 혹은 부자상인들의 휴양지 비슷한 곳이었다고 한다.

사치,향락,동성애등으로 하나님의 화를 입어 멸망했다는 말이 나올정도로 타락한 도시였으며, 화산이 폭발했을때가 서기 79년인데 정말 말도 안될정도로 발전된 시설들에 깜짝놀랐다. 


우선 건물들은 대부분 대리석과 시멘트로 만들어져있다. 


밖에는 아직 도로마다 물이 차서 물바다인 상황인데 정작 고대도시인 이곳은 수로가 발달하여 물이 이미 다 빠진 상황이었다.

기원전 세워진 도시지만 저렇게 마차길과 인도가 나눠져 있고,마차길 군데군데에는 흰색 돌들을 박아놓아 밤에도 흰돌이 빛나는걸 보고 길을 다닐 수있도록했다니 역시 지혜롭다..


이곳은 법원이었다고 한다. 

시민들이 참여해서 다수결로 죄인에 대한 판결이 이뤄졌다고 한다. 이때부터 이미 민주주의가..

아고라 광장

부자든 가난한사람이든 차별없이 즐길수있는 광장이었다고 한다. 

정면에는 제우스 신전. 


근데 개가 많다..

저기 누워있는 사람..

 

당시 너무 순식간에 도시전체가 화산재에 뭍혔으므로 1600여년간 뭍혀있다가 17세기에 발견이 되고 19세기쯤 본격적인 발굴이 시작됐다고 하는데, 죽은 모습들이 모두 처참했다고 한다. 상태도 너무 잘 보존되어있었고 생생하다고.. 고통에 몸부림 치다가 죽은 모습들, 혹은 장례식이나 결혼식을 치르다가 죽는지도 모른채 그대로 죽은사람들.. 검투사와 불륜중 그대로 뭍힌 귀부인도 있었다고 한다;; 심지어 테이블 위에 음식도 잘 보존된 경우가 있다고...너무 허무하기도 하고 끔찍하기도 하고.. 


저 위에 구름덮힌 산이 베수비오산..

저렇게 멀리있는데 어떻게 화산이 순식간에 덮쳤을까...

자연의 힘은 정말 무시무시하구나..



2천여년전 다니던 마차의 바퀴자국도 아직 저렇게 선명하다.


이때 이미 수조관을 이용해서 활어를 즐겼다고 한다.


대중목욕탕

수로를 이용해 산에서 온천수를 끌어와 대중목욕탕과 온천 그리고 가정집에서 이용했다고 한다. 심지어 여성 전용 온천도 있었다고..


당시 이 도시가 얼마나 부유하고 사치스러웠는지를 보여주는 예라고 한다. 

대리석으로 화려하게 만든 이 표시는 바로 "개조심"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저곳은 당시 제사를 지내던 곳이라고 한다.

가축등의 재물을 바치기도 했다는..


저 표시는..;;

이런거 올려도 되나 모르겠다 ㅎㅎㅎ 바닥이며 벽에 여기저기 눈에 띄는데, 기생집으로 가는 이정표라고 한다. 당시에는 이곳이 바다에 접한 항구도시였다고 하는데 뱃사람들이 머물때 이 표시를 따라가서... 아무튼 기생집이 굉장히 많았다고 한다. 


아직도 발굴이 한창이며 발굴된 부분은 아직 일부분밖에 안되며 그중에서도 관광객이 출입가능한 부분은 더 제한돼 있다고 한다.

꼭 나중에 발굴이 더 많이 되면 다시 와보고싶다.


당시에 이곳이 바다였고 항구도시였다는걸 보여주는 한 예로 배를 정박했던 흔적들이 여기저기 보였는데 정말 신기했다.

얼마나 오랜 세월이 흘렀는지가 느껴지는 부분이었다. 


사실 이곳에서 웃으며 기념사진을 찍는다는게 죄스러울 정도로 사고 당시의 느낌이 생생하게 다가왔다. 

너무 의미있었던 폼페이

자연과 세월의 힘앞에 한없이 작은 존재로서 겸손하고 숙연해지는 마음이 드는 특별한 장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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