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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이야기/프랑스 시월드

이웃 아니아주머니네서 저녁식사

by 낭시댁 2017. 8. 5.

우리 시부모님은 두분다 정년퇴직을 하셨지만 여전히 열심히 일하며 사시는 모습은 항상 보기가 좋다.

젊었을때보다 일의 양을 줄이긴 하셨지만 여전히 연세에 비해 너무 열정적으로 일하고 계시고 또 그만큼 열정적으로 여생을 즐겁게 보내고자 노력하시는 분들이다.

집에는 저녁식사나 차를 마시러 오시는 지인들의 발길이 끊이질 않는데 연령대나 분위기가 너무도 다양해서 자주 놀라곤 한다. 같이 일하던 동료였거나 요리를 같이 배웠거나 슈퍼마켓에서 자주 만나 친해졌다거나 혹은 한때 고객이었던 사람들이라고 소개를 해 주셨다. 그렇게 좋은 사람들을 집으로 초대하고 또 초대를 받고 함께 어울려 같이 웃고 뭐든 나누시려는 꼭 그 모습 그대로 나도 닮고싶다.

하루는 바로 옆옆집에 사시는 "아니"라는 이름의 아주머니께서 저녁을 드시러 오셨다. 예쁜 꽃 화분을 선물로 들고 오셨는데 인자한 미소가 꼭 그 꽃과 닮으신 분이셨다.

우리가 태국에서 올때 시어머니 부탁으로 작은 밥솥을 사온게 있었는데 바로 이분이 그 선물의 주인공이라고 하셨다. 식사전 식전주로 샴페인을 마시면서 그 밥솥을 개봉해 보여드렸더니 아이처럼 너무 좋아하셨다. 시어머니께서 하신 밥을 맛보신 후 너무 맛있어서 하나 갖고 싶다고 하셨다고 한다.

한국 밥솥은 태국에서 구하기가 어려워서 해외 브랜드로 살 수 밖에 없었다.

사용법이 어렵지는 않냐 물어보시는 아니아주머니께 시어머니가 말씀하셨다.

"밥하는 법은 우리 며느리한테 물어봐야지. 밥 전문가. 나도 얘한테서 쌀 씻는법 부터 배웠는걸"

사실 자서방이나 시어머니나 쌀을 안씻고 밥을 하고 계셨는데 내가 쌀은 꼭 씻어서 하시도록 여러번 시범을 보여드리곤 했었다.

그날 저녁 식사를 마친후 아니 아주머니께서는 너무 고맙다고 하시며 꼭 이 밥솥으로 밥을해서 다음주에 저녁식사에 우리 가족을 모두 초대하겠다고 하셨다.

며칠 후 우리는 진짜 저녁 식사에 초대를 받아 옆옆집으로 온 가족이 차려입고서(?) 외출을 했다. 시댁 대문에서 열발자국도 안걸리는 거리에 사신다.

 

 

집안에서는 소박하지만 깔끔하고 깊이있는 분위기가 느껴졌다. 역시 집안 분위기는 그 집 주인을 따라가는가 보다.

원래 피부과 의사셨는데 정년퇴직하시고 혼자 살고 계시단다. 자서방말로는 심장전문의인 그녀의 남편이 젊은 여자한테 빠져서 이미 십수년전에 떠나버렸고 줄곧 혼자 살고 계시단다.. 딸이 있는 파리에도 집이 있어서 낭시와 파리를 오가며 살고 계시다고-

나라면 남편을 떠올리기도 싫을것 같은데 집안 곳곳에 젊을적 남편과 찍은 사진들이 눈에 띄었다. 내색은 안했지만 내가 괜히 부글부글..

성품이 너무 좋으셔서 자서방도 아니아주머니와 굉장히 친하게 지내온듯 하다. 자서방이 아니아주머니 말씀을 경청하고 있을땐 마치 얼굴에 "리스펙트"라고 써붙이고 있는듯한 느낌이 들기도 했다.

 

 

거실에 있는 소파와 의자에 둘러앉아 식전주를 마시고 시어머니께선 선물로 가져오신 예쁜 무드등을 드렸다.

커다란 창너머 뒷뜰을 보니 바로 우리 시댁 정원도 코앞에 보인다. 모웬과 이스탄불도 자주 요앞에서 어슬렁거리는걸 보신다고 하셨다. 새를 쫒아다니느라 정신이 없어보인다고 ㅎㅎ 빙고입니다~

내가 집안 곳곳에 붙어있는 그림들을 둘러보고있자니 아니아주머니께서 어느새 오셔서 대부분의 그림들은 한 일본 화가가 그린거라며 그 화가에 대해 설명을 해 주셨다. 나도 그림을 좋아하지만 역시 프랑스인들은 못따라가겠다.

 

 

저녁 식사를 위해 식탁으로 자리를 옮겼다. 다른집에 초대받았을때와 같이 이곳에서도 우리는 집주인이 정해준 각자의 자리에 앉았고 나는 역시 집주인인 아니아주머니 바로 옆자리로 배정받았다. 각별히 더 많이 챙겨주시려고 그러신듯 하다.

 

 

전채요리로 내오신 샐러드

완전 내 스탈이다. 한번먹고 또 먹었다.

아보카도, 망고, 새우, 샬럿, 당근등이 새콤달콤한 소스에 버무려졌다. 소스에 오렌지도 넣으신 듯 하다. 너무도 상큼한 맛이었다. 새우가 들어있었지만 자서방이 샐러드를 먹어서 또한번 놀랬다.

새우를 절대 안먹는 자서방이 무려 새우를 먹게한 기적을 일으키신 샐러드느님이시다.

 

 

 

남은 새우를 내 접시에 다 덜어주신 것 같다.

 

 

메인 메뉴는 냄새가 기가 막히던 송아지고기 요리였다. 토마토와 올리브등을 넣고 부드럽게 익힌 고기였다.

 

 

뚜둥~

 

 

 

밥과 함께 먹으니 더 맛있다. 이런건 밥이랑 먹어야지 암..

나중에는 소스를 밥위에다 듬뿍듬뿍 국자로 뿌려주셨다. ㅎ

나빼고 다른 분들은 밥이랑 빵을 동시에 곁들였다. 우리 부모님은 절대로 이해 못하실거야.. 나도 이해 못해..

자서방이 카레라이스에 빵을 곁들여 먹는걸 처음보고 받은 충격이 아직도 생생하다. 밥을 왜 빵이랑...

 

 

내가 밥을 잘먹는걸 보시더니 밥솥에 남은 밥을 모조리 긁어오셔서 더 주셨다.

밥솥이 너무 작아보이는데 혼자서 사용하기에 안성맞춤이라고 하시며 사용법도 쉽고 밥도 너무 맛있다고 계속 고마워하셨다.

예전에는 냄비에 물을 많이 넣고 거기에 밥을 삶다가 물을 따라내는 방식으로 요리를 하셨다고 한다. 그건 흡사 짜장라면 조리법이 아닌지...

 

 

후식으로 내오신 과일타르트

개인 용기에 따로 담아 오븐에 갓 구워서 뜨겁게 그대로 내오셨다. 새콤달콤하니 디저트의 정석과 같은 맛이었다. 하지만 이미 나는 배가 너무 불러서 반밖에 못먹고 나머지는 흑기사 자서방이 좋아라하며 기꺼이 클리어해주었다. 이미 이전 두가지 요리를 두번씩 먹은 탓에 내 뱃속엔 물들어갈 자리도 없을 지경이었다.

아니아주머니께선 나에게 끊임없이 이야기를 들려주시려고 노력하셨는데 최근 화제라는 프랑스의 길거리 화가에 대한 이야기를 특히 길게 해 주셨다. 왠만한 이야기의 주제들이 나에게 생소한 내용들이어서 맘에 걸리셨던가 보다.

 

집에 돌아와서 자서방에게 말했다.

"나 아니아주머니 너무 좋아."

"나도 굉장히 좋아해. 항상 친절하시거든. 우리 가족 모두 너무 좋아하는 분이야. 너도 우리 가족이니까 좋아할 줄알았어."

행복해 보이셨지만 더더욱 행복하셨으면 좋겠다. 다음에 또 밥해서 초대해 주신다고 하셨으니 다음 요리도 벌써 기대가 된다.

시어머니께 처음 밥솥을 선물해 드린 뒤 지난 크리스마스땐 시동생에게 크리스마스 선물로 밥솥을 선물해 주기도 했다. 이번엔 이웃에도 밥솥을 선물하고보니 우리 시댁에서 한국인 며느리를 맞은 이후 밥사랑을 전파하고 계신게 아닌가 싶다. 다음번엔 누구를 위한 밥솥을 또 싸매들고 오게될것인가...? 한국쌀과 한국밥솥이면 더 좋겠지만 그래도 여기저기서 밥을 더 자주 먹게되는점만해도 나는 참 좋다.

한국인은 역시 밥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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