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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이야기/연애결혼

나 없이도 넘나 잘 사는 남편

by 낭시댁 2017. 9. 5.

내가 한국에 휴가와 있는 탓에 혼자 태국에서 지내고있는 남편이 그저께 사진 한장을 보내왔다. 

밥솥에 밥이 한가득.... 

바로 화상으로 전화를 걸어서 물어봤다. 

"무슨 밥을 이렇게나 많이 했어?"

"내일 나 쉬는날이잖아. 오늘 밥을 한가득 해서 이틀동안 아무것도 안할거야. 빨래도 다 해놨고 지금 렌틸콩도 졸이는 중이야"

"그럼 내일 뭐 할건데?"

"아무것도 안할거라니까 ㅎㅎ 혼자서 그냥 제대로 쉴거야. 요즘 너무 바빴거든. 이거봐 밥이 그렇게 많아보여도 일인분씩 담으니까 10개밖에 안되네. 내일이랑 모레 먹고 그 다음날 도시락으로 가져갈거다ㅎㅎ

아무것도 안하는 휴일을 위해 열심히 준비하는 남편이다.
자랑스럽게 남편이 식탁위를 비춰주는데 그곳에는 밥이 담겨진 열개의 반찬통들이 정렬돼서 밥을 식히고 있었다. 

 

"저녁은 먹었어?"

"아까 퇴근해서 오자마자 저녁으로 먹을 볶음밥도 이미 만들어놨어. 소고기랑 렌틸콩 그리고 자색고구마를 섞었어. 시장갔더니 고구마가 이거밖에 없더라고. 근데 먹어보니까 나쁘지 않아"  

"우리집도 보고싶다. 좀 비춰줘봐. 우리집 잘 있지? 청소는 좀 했어?"

"집은 잘 있고, 청소는 너가 와서 낯설지 않도록 일부러 안하고 있어."

"어... 전혀 그럴필요 없어. 안하고 살더라도 한국 들어오기 직전에는 대청소 한번 해줘" 

"알았어ㅎㅎ"

"그래 내일 아무것도 안하려면 오늘 일찍 자고 내일 일찍 일어나야지. 부디 아무것도 안하는 즐거운 휴일이 되길바래. 나도 방해하지 않을게. 심심하면 뭐하는지 사진이나 몇장보내주면 좋고" 

다음날 오후에 보내준 팬케잌 사진이다. 간식으로 먹으려고 만들었는데 초콜렛칩을 듬뿍 넣어서 맛있다고 자랑한다. 

"맨날 다이어트식 팬케잌만 만들어주더니... 나 가면 또 만들어줄거지?"

"아마도... 아니, 대신 내가 하는 법을 가르쳐줄게. 그래야 나도 얻어먹지"

 

헬스장 다녀오는길에 시장에 들러서 과일이랑 고구마를 샀다며 사진을 보내왔다. 아무것도 안한다더니 헬스장을 다녀왔구나. 

보통 고구마랑 용과만 사더니 왠 오렌지랑 사과? 특히 사과는 내가 그렇게 먹으라고 해도 절대 입에도 안대더니 직접 샀다고 하니 더욱 놀랍다. 

"왠 사과야? 사과 안먹잖아?"

"나 이제 먹어. 몸에 좋은거니까 먹으려고" 

 

 칭찬해 줬더니 사과를 사올때마다 자랑한다. 

아주 칭찬해~

사실 생각해보니 4년전에 만난이후 3주이상 떨어져 지내본 적이 없었다. 24시간 이상은 절대 못 떨어지네 어쩌네 하면서 힘들게 하더니..

이제는 괜찮은거야? ㅠ.ㅠ

그래도 혼자서 사과도 사먹고 밥도 잘 챙겨먹는걸 보니 마음이 놓인다. 

솔직히 같이 있어도 내가 밥을 직접 챙겨주지는 않는다. 먹는지 안먹는지를 확인할 뿐이다. ㅎㅎ 

(우리 시어머니가 어느날 뜬금없이 나에게 "프랑스에선 여자들이 요리를 다 한다"고 말씀하신적이 있는데 아마 그게 무언의 압력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떨어져있다보니 돌아가면 좋아하는 음식도 만들어주고싶은 마음이 굴뚝같이 차오른다. (사실 너무 까다로워서 좋아하는 음식이 많지 않은게 문제라면 문제다.) 

남편 휴가가 확정되는대로 한국에 들어와서 며칠 같이 지내다가 같이 돌아갈 예정인데 그것만 아니었다면 이제 그만 태국집으로 돌아가고싶을 지경이다.   

 

보고싶다 이 요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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