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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이야기/한국

매우 진지한 나의 두번째 명상원 수련기

by 낭시댁 2017. 9. 11.

4년전에 큰 감동과 깨달음을 얻고 왔던 그 명상원을 얼마전 다시 다녀오게 되었다.

4년전 너무 힘들어서 무너져가고 있던 나를 다시 스스로 일어서게 해 주었던 곳인데 코스가 끝난후에도 혼자 꾸준히 명상을 이어가야지 다짐 했지만 사는게 바쁘단 핑계로 언제부턴가 명상을 아예 안하게 되었고 이제서야 초심을 찾고자 다시 찾게 된 것이었다. 

 

진안 마이산 자락에 있는 담마코리아라는 곳인데 이곳에서는 10일 무료 명상 코스를 운영한다. (http://korea.dhamma.org/)

자원봉사자들로 운영되는 비영리단체기 때문에 코스를 마친 후 원하는 대로 자유롭게 금전적으로 보시를 하거나 혹은 다음 수련코스때 자원봉사에 참여하는 식으로 보답을 하면 된다. 부처님이 실제 수련하던 그 명상법이라고 하며 티벳 소수 스님들을 통해 전수되었다고 한다. 종교적이기 보다는 스스로 깨달음을 얻는것이 목적인 가르침이었다.

사실 이번에 내가 한국에 들어온 최초의 목적이 바로 이 명상원이었다.

처음에는 이해하지 못하고 반대하던 자서방도 내 굳은 결심을 보고는 결국 동의해 주었다. 다음에는 나랑 꼭 같이 가자고 했더는 "글쎄"하며 말끝을 흐렸다.

 

이곳은 여전히 아름다웠다.

고속버스로 전주까지 가서 전주역앞에 있는 정류장에서 시골버스를 한번더 타야하는 여정이다. 센터로 가는 시골버스가 하루에 딱 3대밖에 없어서 놓칠까봐 30분이나 일찍 정류소로 가있었는데 나와 같은 곳으로 가는, 외국인 두명을 포함한 열명남짓의 사람들이 이미 커다란 가방을 들고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가는길에 서로 통성명도 하고 많이 친해졌다.

비온뒤라 산공기가 어찌나 맑던지..  대낮인데 산허리에 동요처럼 구름이 크게 걸쳐져 있었다.

버스에서 내려서 다같이 15분쯤 걸어가는 길이 즐거웠다.

전체 참가생중 외국인이 열명 넘었던것 같다. 특히 요리사로 자원봉사를 했던 사람이 프랑스인이었는데, 어느 대학교 건축학 교수라고 했다. 본인도 한번 참가하고 너무 좋아서 보답하기위해 요리봉사를 하게된건데 주방이 너무 더워서 항상 땀샤워를 했고 가지를 볶는데도 명상하는 마음으로 했다고 웃으며 말했다.

 

명상원에서 수련할 때 좋은 점 중 하나는 내 삶을 객관적으로 바라 볼 수 있는 기회가 된다는 거다.

도착하는날과 떠나는날도 수련 스케줄이 있으므로 코스는 총 12일간이다. 그 기간동안 규정에 따라 침묵을 유지하며 다른 사람들과 옷깃, 심지어 눈빛의 마찰도 피하면서 수련하다보면 오롯히 내 내면에 집중 할 수 밖에 없게 된다. 휴대폰이나 필기도구조차 반입이 안되므로 그 기간 동안은 어느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는것이다. 마치 세상에서 잠시 떨어져나온 듯한 그런 느낌이 든다. 살면서 그런 체험을 할 수 있는 기회가 몇번이나 있을까.

세상에 두고 온 내 인생을 객관적으로 자꾸 돌아보니 내 인생이 사실 내가 느낀것 보다 괜찮다는걸 깨달았다.

끊임없는 고민들과 시련들에 시달려 도망쳐온 기분이었지만 사실은 그것들이 내 인생에 큰 문제는 아니라는걸 이제서야 알게되었다.

그동안 열심히 부지런히 일구어 놓은 내 멋진 삶이 후회 없이 그저 벅차게 자랑스러웠다. 그리고 이제는 뒤돌아보지말고 남은 인생에 집중해서 앞으로 더 의미있게 감사하며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새벽 4시에 기상하려면 9시부터는 잘 준비를 해야 하는데, 하루는 침대에 멍하게 누워 별별 생각이 다 들었다. 며칠간 내리던 비때문에 몸이 으슬거리고 몸살이 올것만 같았다.
이럴때마다 알아서 약을 잘 챙겨주는 무뚝뚝한 남편이 사무치게 보고싶어졌다.
지금쯤 퇴근했겠지. 컴컴한 거실에 불을 켜고 들어와서 빈 도시락통을 설거지하고 저녁거리도 혼자서 요리하겠지. 바로 먹지않고 티비먼저 켜고 소파에 앉아있을거야. 그러다 피곤해서 깜빡 잠이 들겠지.. 자주 그러니까... 소파에서 혼자 잠든 남편을 떠올리니 참 미안하고 보고싶었다. 상상으로 남편의 머리를 여러번 쓰다듬어주다가 눈물이 찡 났다.... 더 잘해줄걸..
뭔가 더 좋은 새로운 답을 찾아서 이 먼곳까지 혼자 오게되었지만 진짜 소중한 해답은 원래부터 내 옆에 줄곧 있었다는걸 몰랐구나. 바보...

사소한 일때문에 내가 사랑하는 사람의 숨통까지 조이면 안되는것이었다. 내가 얼마나 행운아인지도 모르고..


많은 가르침이 있었지만 그중에 기억나는 것들은-

 

내가 고통을 받을때, 고통을 주는쪽이 문제가 아니라 문제는 내가 그 고통을 받기로 결심했다는데 있다고 했다.

첫날 가부좌로 30분도 못앉다가 며칠후 한시간이상씩 거뜬히 미동도 없이 앉아있을수 있게 되었을때 이말의 뜻을 잘 알게되었다. 발이 더이상 저리지 않은것이 아니다. 내가 발 저림을 무시하니까 정말 그게 별 문제가 되지 않았던 거다.

가시밭길이 나를 고생시키면 신발을 사서 나를 보호하고, 뜨거운 태양 아래서는 모자를 써서 나를 보호해야 할 책임이 바로 나 자신에게 있다고 했다. 가시밭길이나 태양을 원망할 일이 아닌것이다.

내 남편이, 내 엄마가 혹은 내 친구가 나를 힘들게 하는거라는 생각도 버려라. 아무리 전적으로 상대가 잘못한거라고 명백히 보이는 상황에서도 결국은 그것에 반응한 나 자신에게 절반이상의 책임이 있는것이다.

모든것은 나타나고 사라진다. 열번 화낼거 아홉번으로 줄이도록 노력하고, 10시간 속앓이할거 8시간만에 훌훌 털어버리자. 언젠가는 물위에 선을 긋듯이 나타났다가 바로 사라지는 상태를 경험할 수 있게 되는것이다.


 

수련을 마치고 다른 수련생들과 돌아오는길에 시외버스터미널로 돌아가는 택시를 세명의 외국인 참여자들과 같이 타게 되었다. 대만녀, 영국남, 미국남이었는데 각자 어떻게 오게 되었는지 얘기를 나누었고 느낀점도 나누었다. 얻은건 모두 다르지만 이 코스에 참여할 수 있었던 것은 인생에 큰 행운이라는데는 모두 동의했다. 

언젠가 나는 남편이랑 같이 오는게 소원이라고 했더니 영국인 남자가 말했다. 태국이랑 미얀마에 있는 담마 명상원이 아름답더라고.. 남편을 억지로라도 끌고 같이 다녀올 수만 있다면 남편이 나중에는 두고두고 고마워할 거라고.. 자기도 처음엔 이런거 안믿었는데 한번 해보고나서는 삶을 대하는 태도가 바뀌었다고 말이다.

자서방한테도 고대로 전해주었다. 프렌치 주방장 얘기와 함께-

역시 말끝을 흐리며 대답을 피한다. "글쎄 난 이미 행복한데.."

아무렴 어때. 남편이 고맙고 우선 내가 더 좋은 사람이 되는걸 보여줘야겠다. 그러다보면 우리도 언젠가는 같이 명상도 할 날이 오려나..? ㅎ

열심히 힘내서 행복하게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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