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이야기

필리핀에서 길거리 변태를 치유한 이야기

낭시댁 2017. 2. 28. 10:00

개인적으로 한국에 있을때 다양한(?) 변태들을 봤다. 그런데 필리핀에서도 변태가 있었다.



세부에서 레스토랑을 운영하고 있을때였는데 당시 여러 악재가 겹쳐서 심란하던 그런 날이었다.

가게에 손님이 많아도 내 마음은 먹구름 같기만 했고 그러다 마음이 답답해서 가게앞에 나가 계단에 쪼그려 앉아서 울어버렸다. 당시 절친이던 우리 매니저 안톤이 (나중엔 내 뒷통수를 제대로 쳤지만) 옆에 같이 쭈그리고 앉아서 나를 위로를 해 주고 있었다.

그때 눈앞에 뭔가 아찔(?) 한 장면이 나타나 울음을 뚝 멈추게 되었다. 동네 유명한 그 변태 아저씨를 처음 만난 순간이었다. 바지를 무릎까지 내린채 유유리 우리 앞을 지나가고 있었던것이다. 아..놔... 눈높이가 딱…

그 남자가 지나간 후에도 나는 멍하니 그 뒷모습에 시선을 고정시키고 있었다. 안톤이 날 위로해 줘야 할 것이 한가지 더 추가된 것이다. 내 표정을 보더니 지도 민망했던지 얼굴이 빨개져서는 (안톤은 게이다) 한다는 질문이

"너가 본걸 말해봐"

"나 아무것도 못봤어"

"아무것도?"

"그냥.. black forest...?"

안톤이 박장대소를 하며 공감했다. ㅎㅎ


그후로 그 변태남을 하루에 한번꼴로 보게 되었다. 우리 가게 앞을 얼쩡거리기도 하고 어떨땐 정문 유리에 코를 박고 안을 쳐다보기도 했다. 항상 바지는....내리고 다님.

어느날 내가 좀 성가셔서 쫒아나갔더니 나를 보고 주춤해 하더니 도망가는걸 봤다. 뛰느라 바지를 어정쩡하게 잡아올리고 뛰는 모습이 좀 웃겼다.

그 남자는 노숙자처럼 길거리에 생활하고 있었지만 실제로는 가난하지않고 멀쩡한 부모님이 계시다고했다. 아무리 부모가 데려가 옷을 입혀놔도 자꾸 바지내리고 길거리에 나와서 결국 부모가 포기했다는 소문.
하… 부모가 가엾다.


아침마다 나는 택시를 타고 가게에 출근을 했는데 차선 반대편에 가게가 있어서 도착전에는 항상 유턴을 해야 했다. 유턴할 때 마다 그 근처에 서있던 변태남과 유리너머로 눈이 마주치는 일이 많았다. 여전히 바지는 무릎까지 내리고 짧은 윗도리 아래로 배가 불룩하게 나왔고 머리는 덥수룩했다. 물론 덥수룩한건 머리뿐이 아님..... 그렇게 나는 나도 모르는사이 그 남자를 찬찬히 훑어보곤 했던것이다.

근데 어느날 부턴가 그 변태남이 택시 창문 밖으로 자기를 쳐다보는 내시선을 불편해 하기 시작한 걸 느꼈다. 내가 택시 안에 있는 걸 알아차린것도 신기한데 한번씩 멈칫해서 돌아서거나 내려진 바지를 끌어 올리는걸 보기도 했다.

안톤을 비롯해 가게 직원들에게 말해줬더니 아무도 믿지 않았다. 그 변태는 여자들이 자길 보고 놀래는걸 즐기는 사람이고 그렇게 바지를 내리고 이동네 길바닥에서 노숙자처럼 산지가 수년째라 수치심을 느낄리가 없다는것이다.

얼마후 안톤이랑 볼일이 있어서 가게 근처를 걸어가는데 멀리서 그 변태가 걸어오는게 보였다.

그런데! 그가 맞은편에 걸어오는 나를 보더니 갑자기 바지를 올려입더니 반대로 도망치듯 사라져버렸다. 할렐루야...

입이 싼 안톤이 온동네방네 떠들고 다녔다. 내가 그 변태남을 고쳤다고 ㅋㅋㅋㅋ 바지 올려입고 도망가는걸 봤다고 ㅋㅋㅋㅋ

그 변태남은 다시는 나타나지 않았다. 마음속 깊이있던 수치심이 다시 정상작동을 하게 된것이다. 누군가는 그 남자가 다른 동네서 멀쩡하게 바지를 입고더니더라는 목격담을 들려주기도 했다.

안톤말로는 그 변태남 입장에선 갑자기 나타난 외국여자가 놀래지도 않고 자길 너무 빤히 쳐다보니까 얼마나 당황했겠냐고 한다.


아무튼 바로 내가 그 변태남의 인생에 아주 큰 도움을 준 장본인이다. 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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