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토요일, 퇴근하자마자 짐을 챙겨서 티옹빌로 향하는 기차에 올랐다.
전날 더워서 잠을 잘 못잤기도 하고 일할 때 더워서 진이 빠진탓에 꽤 피곤한 상태였다.
기차안에서 나는 잔잔한 음악을 들으며 눈을 감고 명상을 시도했다.
눈을감고 허리를 꼿꼿이 세운채로 호흡에 집중하기. 이러면 피로가 좀 풀리려나.
얼마 후 눈을 떴더니 기차가 어느 역에 정차하고 있었다. 티옹빌까지는 이제 20분 정도 남았겠구나.
내 옆으로 아랍계 남자들 세 명이 내리려고 통로에 서 있는게 보였다.
그냥 그런가보다... 하고 창문으로 시선을 돌렸는데... 이 남자들이 왜 앞으로 안움직이고 계속 내 옆을 가로막은채 가만히 서 있는거지?!
갑자기 정신이 번쩍 들어서 내 옆자리에 던져둔 짐가방으로 고개를 휙 돌렸다.
"끼약!!!"
순간 나는 큰소리로 비명을 질렀다.
내앞을 막고 서 있는 두 남자들 다리 사이로 손이 하나 들어와서 내 가방 속에 있던 휴대폰을 훔쳐가고 있었던것이다. 그 놈은 내 비명소리에 놀라 휴대폰을 떨어트렸고 기차 뒤로 후다닥 도망갔다. 누가봐도 당연하게 한패였던 나머지(앞에 서있던 키큰 두 남자)는 기차 앞쪽으로 유유히 사라졌다.
나는 손이 덜덜 떨렸다.
뒷자리 프랑스인 남자 승객이 걱정스러운 듯 무슨일이냐고 물어왔고, 나는 저 사람이 내 휴대폰을 훔치려 했다고 말했다.
버거씨한테 곧장 전화를 걸어서 횡성수설 떠들었다.
"방금 어떤 남자들이 내 가방에서 휴대폰을 훔치려다 내가 비명질러서 도망갔어. 이거 어디다 리포트하는거지? 근데 나 이 남자들 얼굴이 자세히 기억나지 않아. 아 결국 훔친건 없으니까 어차피 이 사람들은 처벌 안받으려나... 이걸 그냥 가만 있어야 하는건가?"
나를 마중 나오느라 운전중이던 버거씨는 기차 소음때문에 내 목소리가 잘 안들린다고 했다. 주변에 앉아있던 다른 승객들이 나한테 말을 걸어와서 일단 전화를 끊었다.
우리 칸은 다른 칸에 비해 좌석이 얼마 없는 작은 칸이었는데 나 말고 네 명이 더 앉아 있었다. 모두다 나처럼 혼자 탄 사람들.
"저기 서 있는 사람들 다 한패예요."
그들이 가리키는 쪽으로 고개를 돌려보니 내 앞을 막고 서 있던 키큰 남자 두 명이 도망도 안가고 우리칸 문 앞에 서서 어떤 여자랑 시시덕거리며 웃고 있는게 아닌가!? 기차가 출발하기전에 내렸을줄 알았는데 이 칸에서 자기네 얼굴까지 다 봤는데도 태연하게 웃고 있는 그 모습에 나는 너무 화가났다.
저 얼굴들 사진이라도 찍어놔야 되나... 안절 부절하고 있을 때 그 패거리 중 흰티를 입은 키 큰 남자 하나가 나를 빤히 쳐다보면서 내 옆을 천천히 지나갔다. 소름끼치는 미소를 지으면서 말이다. 그 태도는 마치 "어디 신고할라면 해보시든가~" 라고 말하는 듯 했다.
"저 남자들 아까부터 이상했어요. 다른 칸에서 넘어왔는데 한자리 오래 앉아있지도 않았고 다들 따로 여기저기 자리를 옮겨다니면서 승객들을 주시하더라구요."
다른 승객들도 맞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피곤해서 눈을 감고 있느라 못봤네. 그 때문에 그들에게 쉬워보이는 타겟이 되었겠지. 혼자 여행하는 졸려보이는 동양 여자.
"역무원한테 말할거면 저도 같이 말해줄게요. 제가 얼굴도 다 봤어요."
통로 맞은편에 앉아있던 흑인 승객이 말했고 다른 승객들도 고개를 끄덕거리며 동조했다. 그들도 분개하고 있는 중이었다.
"아니에요, 저 여기서 내려요.. 어차피 신고해도 잃어버린건 없어서 처벌도 딱히 없을거고 저들도 그걸 잘 알고 있는듯 해요. 여러분들은 조심하세요, 소지품 잘 지켜요!"
이렇게 말하고 짐을 챙겨 일어났더니 우리칸 사람들이 다같이 따뜻하게 인사를 해 주었다.
"좋은 하루되세요."
"안전한 여행 되세요."
기차에서 내렸더니 버거씨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바로 앞에 딱 서 있었다.
힝... 서러워서 막 쏟아냈다. 그 남자들이 내 휴대폰 훔쳐가려다가 내가 비명 질러서 딱 떨어트렸어.
내 말을 듣고 바로 흥분하는 버거씨.
나는 플랫폼에 가만히 서서 기차 뒷쪽으로 고개를 돌렸는데 그 패거리중 한 남자가 여자랑 같이 내리는게 보였다. 기분나쁘게 웃으면서 나를 쳐다봤던 그 남자였다. 버거씨한테 말하려다 섣불리 나섰다 해코지 당할까봐 무서워서 입을 다물었다.
뒤늦게 우리를 발견한 그 남자는 걸어오다말고 여자만 남겨놓고 다시 기차에 올라탔다. 나 혼자 있었음 콧방귀도 안꼈을텐데 옆에 남자가 있으니 이건 좀 신경쓰이나보네.

집으로 돌아오는 차안에서 내 이야기를 들은 버거씨가 나만큼이나 흥분했다. 아랍계였다는 건 놀랍지도 않단다.
진짜 나도 외국인이지만 이렇게 인종차별이 시작되나보다. 프랑스 오고부터 진짜 아랍인들한테 너무 안좋은 이미지가 박혀버렸다. 나는 아랍인 좋은 친구들도 많기때문에 전부다 이렇지 않다는걸 잘 안다. 하지만 테러나 인종차별 사건은 다 아랍인들이던데...
버거씨는 SNCF(프랑스 철도)에 내가 겪은 일을 이메일로 보냈다. 그 사람들 처벌은 안되겠지만 그래도 이런 보고가 쌓이고 쌓이면 더 신경써서 관리하게 될 거라고 말했다.
내가 만일 관광객으로서 이런 일을 겪었다면 나는 아마 프랑스에 다신 오고싶지 않을것 같다. 하지만 내 경험상 대부분의 프랑스인들은 기차에서 나와 함께 화를 내주던 승객들처럼 친절하고 인정이 많다.
결국 잃어버린건 없으니 행운이라고 해야하려나.
앞으로 기차안에서는 정신 바짝 차리고 가방끈 잘 쥐고 있어야겠다.
여러분들도 조심하세요!
시끄럽게 떠들면서 여기저기 메뚜기처럼 자리 옮겨다니는 아랍인들... (인종차별이지만 어쩔수없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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