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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이야기/프랑스 시월드

시어머니 이름을 부르는건 아직도 어렵지만

by 낭시댁 2017. 8. 15.

남편이 외국인이라고 하면 다들 시월드가 없어서 부럽다고들 한다. 사실 나도 겪어보진 않았지만 내가 그런 부분에 있어서는 행운인것 같기는 하다. 고부간에 아무리 친딸처럼 친엄마처럼 서로 아끼자고 굳게 다짐해도 실제 서로 혈육처럼 허물없이 대한다는것은 불가능한 일이기에 서로에 대한 기대감을 충족하지 못해 갈등이 생겨날 수 밖에 없을것 같다.

어느 평화로운 오후 시댁 거실에 둘러앉아 차를 마시며 텔레비젼을 보고 있을때 시어머니께서 자서방에게 말씀하셨다.

"아들"

"네?"

"엄마 사랑하니?"

남편이 고개를 끄덕일때 나도 잽싸게 물었다.

"남편 나 사랑해?"

"엄마 사랑해요, 와이프 사랑해"

내가 시어머니를 쳐다보며 코평수를 넓히며 만족스럽게 웃었더니 시어머니께서 크게 웃으신 후 나에게 말씀하셨다.

"너와 나는 경쟁사이가 아니란다. 아들이 나를 사랑한다고 하는것보다 너를 사랑한다고 말하는게 더 듣기가 좋다. 어차피 내 아들이 나를 사랑하는건 변하지 않는 사실인데뭐. 너희들이 행복한게 바로 내 행복이야. 앞으로도 계속 이렇게만 살아다오"

읔 할말이 없네.. 넓혔던 코평수를 부끄러워서 잽싸게 좁혔다.

자서방이 내 표정을 읽었는지 나를 보며 검지손가락을 세워서 도리도리 흔들며 웃는다.

그러고보면 우리 시어머니는 내 앞에서 아들 자랑하시는걸 본 적이 없다. 고양이 자랑은 매일매일 하시는데도 말이다 ㅎㅎ

그리고 또 우리 두사람간 사생활에 대해서는 깊이 알려주지말라고도 하셨다. 혹시라도 우리 두사람간에 언쟁이 있었더라도 본인께서는 알고 싶지 않으시단다. 이야기만 듣고 잘못된 판단을 하고 싶지 않으니 그냥 좋은일만 얘기해 달라고 항상 말씀하신다.

 

나는 처음 시부모님을 만났을때 우리나라에서처럼 어머니, 아버지라고 불렀드랬다. 감히 두분의 이름을 부른다는건 상상을 할 수가 없는 일이었다.

 

어느날 시어머니께서 자서방에게 말씀하셨단다. "쟤 왜 자꾸 나더러 엄마라고 하는거니?"

ㅋㅋㅋ그걸 듣고 어찌나 당황스럽던지... 그걸 말하는 자서방도 웃었다.

"거봐 우리엄마는 그거 이해 못할거라니까ㅋㅋ 그냥 이름 불러드려. 처음에는 불편하겠지만 곧 익숙해 질거야. 엄마가 그걸 원해"

자서방이 한국에서는 그렇게 부른다고 말씀드렸음에도 어머니라는 호칭은 매우 불편하셨던 것이다. 몇번 나도 고집을 피우다가 결국 최근부터는 시부모님 두분께 모두 이름으로 부르기 시작했다.

그때 깨달았다. 시부모님의 이름을 부르는 순간 묘하게 동등해졌다는 느낌말이다. 

입장 바꿔서 어느날 내 며느리가 나를 어머니라고 부른다면 왠지 나는 매사 모범이 돼야 하고 어머니로서의 책임이 많이 따를것 같은 기분이 들었을것 같다. 그래서 "어머니" 대신 이름으로 부르는 순간 우리 시어머니의 마음이 더 편해 지셨던것 같다.

어느날 저녁 외출을 앞두고 날이 쌀쌀하니 입으라고 본인 자켓을 하나 주셨는데 생각보다 나에게 너무 잘 어울렸다. 시어머니께서는 갑자기 본인은 작아서 못입으니 가져가 입으라고 하셨다. 솔직히 작아서 주신것 같지는 않다.

조카가 선물로 준 값비싼 아이크림도 안쓰고 갖고 계시다가 나를 주시며 말씀하셨다. "이거 마리한테는 비밀이다~"

혈육간이 아닌데 애써서 처음부터 서로 애쓰고 과장할 필요는 없었던것 같다. 사랑으로 시작해서 법으로 맺어진 가족이니 그 테두리안에서 큰 기대나 댓가를 바라지 않고 서로 존중하다보니 자연스레 정이 들어 진짜 가족이 되는 그런 자연스러운 느낌이다.

며칠전 시어머니께서 여러장의 사진과 메세지를 보내주셨다. 시동생네 가족들과 해변으로 휴가 가신 사진들과 고양이들 사진이 대부분이었는데 마지막에 토마토소스와 엄청난 양의 버섯 사진들이 몇장 들어있었다.

"이거 다 너 주려고 만든거란다. 다음에 오면 만들어줄게"

내가 토마토소스 파스타와 버섯구이를 잘 먹었더니 이제 나는 그거만 해 주실건가보다 ㅎㅎ 유리병을 잔뜩 사셔서 그안에 토마토소스와 절인 버섯을 가득 채워서 내가 올때까지 보관하실거라고 하신다.

사진중에는 시아버지께서 너무 슬픈 표정으로 서서 토마토소스를 하염없이 젓고 계신 사진도 있었다.

 

자서방은 벌써 10월 프랑스 휴가를 또 계획중이다;;; 돈은 언제 모으려는걸까..

내가 시큰둥했더니 예쁜 캐슬 사진들을 잔뜩 보여주면서 다 가볼거라며 마음을 흔드는 자서방이다. 내가 성을 좋아하는걸 알아서 ㅎㅎ 엄밀히는 실내보다 그곳의 정원이나 바깥풍경을 좋아하는거다.

일단 다음 휴가 계획은 천천히 짜자. 버섯이랑 토마토 소스는 오래 보관할 수 있는거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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