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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이야기/연애결혼

부모님과 외국인 남편과 노천 막걸리 한잔

by 낭시댁 2018. 5. 8.

저녁을 먹다가 문득 남편에게 물었다. 

"이번에 한국에 갔을때 뭐가 제일 좋았어?"

"나영이 학교에 데리러 가서 기뻐하는 나영이 모습을 봤을때가 제일 좋았어"

"그럴줄 알았지. 그거말고 또 다른건?"

"치맥?"

"ㅎㅎ우리 치맥 두번 먹었잖아. 재래시장에 갔던거 기억나? 우리 부모님이랑 갔다가 거기서 막걸리 마셨잖아. 근데 좀 많이 지저분해서 사실 나 신경 많이 쓰였거든. 거기 좀 힘들었지?"

"아니 그거도 좋았어. 우선 아버님이 가자고 먼저 말씀하신거잖아. 그래서 무엇보다 좋았어. 평소 말씀 잘 안하시는데 같이 가자고 하시니까 그게 어디든 나는 다 좋았을거야. "

"우리아빠도 그날 남편이랑 같이 막걸리 마셔서 굉장히 좋아하신거 알지?"

 

우리 동네에 재래시장이 있는데 거기는 5일장이 있어서 장이 서는 날에는 엄청난 인파가 몰린다. 특히 우리가 갔던 그날은 5일장이 서는 일요일이라 인파가 어마무시하게 몰리는 날이었다.

그날 아빠가 우리에게 무슨 계획이 있냐 물었고 우리가 계획이 없다고 하자 재래시장에 가서 먹걸리나 한잔하자고 하셨고 그렇게 우리는 부모님과 시장으로 나섰다. 아빠는 일단 자서방이 새로운걸 접해보는걸 좋아하니까 재래시장을 떠올리신것 같다. 그리고 자서방과 같이 외출할때마다 느껴지는 아빠의 뿌듯해하는 표정 또한 나는 잘 알고 있다. 

막걸리를 마실거니까 차는 집에 두고 택시를 타고 갔는데 시장 주변에 인파가 너무 많아서 입구근처에도 진입을 못하고 우리는 멀찍이 내려서 걸어 들어가야만 했다. 

 

엄마 말대로 자서방 손을 꼭 잡고 엄마아빠 뒤를 따라서 시장에 들어가는데 자서방이 말했다. 

"생각보다 한산한데?" 

"당연하지 우린 아직 시장에 들어가지도 않았으니까ㅎㅎ" 

막걸리 집까지 들어가면서 인파들이 점점 많아졌고 우리엄마는 몇번이나 우리가 잘 따라오는지 돌아보셨다. 

시장 한켠에 사실 개고기를 파는 상가들이 쭉 늘어선 곳이 있었다. 막걸리골목 바로 옆에 붙어 있어서 거기로 지나갈 수 밖에 없는 구조였는데 우리 부모님은 자서방이 프랑스인이라 마음에 걸리셨는지 먼길로 일부로 돌아서 가셨다. 

나중에 막걸리집에 들어가서 내가 그걸 말해주었다.

"남편, 바로 요 옆에는 별별 고기들을 파는 곳이 있는데 당신이 보면 놀랄까봐 일부러 아빠가 먼길로 돌아오셨어" 

"별별 고기? 혹시... 개?"

"응. 어떻게 알았어?" 

"한국에서 개고기 먹는건 알고 있었어. 에이 괜찮아. 중국에서도 개고기 먹잖아. 프랑스에서 푸아그라 먹는거나 뭐가 달라. 나는 그게 나쁜거라고 생각안해. 그냥 문화의 차이인거지. 물론 모든 프랑스인들이 나와 생각이 같은건 아니겠지만 나는 그게 나쁜거라고는 생각안해."

의외의 반응에 우리 엄마아빠도 살짝 안심하셨다. 뭐 사실 우리가족들도 개고기를 먹는 사람이 없어서 생고기를 보는건 우리에게도 유쾌한 일은 아니다. 

우리넷은 지저분한 바닥에 앉아서 막걸리 두병이랑 파전 그리고 메추리구이를 먹었다. 테이블마다 엄청나게 시끄러웠고 방석을 깔았지만 바닥은 지저분했다. 자서방은 바닥에 앉느라 힘들어서 몸을 이리저리 비틀어댔다. 그러다 옆테이블 사람들이 빠져나가고 우리는 그자리로 옮겼다. 거기서 자서방이 벽에 기대 앉게 되고 나서는 한결 표정이 편해 보여서 우리도 마음이 놓였다. ㅎㅎ 

 

 

사실 먹는내내 우리 네 식구는 변변찮은 대화는 못하고 연식 막걸리잔을 서로 부딪히며 "쨘~" 소리만 했다. 주변에 다양한 인파들을 구경하는것만해도 지루하지 않았다. 중국인들이나 동남아 사람들도 꽤 많이 보였다. 

자서방은 매추리뼈를 발라내느라 정신 없었고 우리는 그런 자서방을 구경했다.

시장에서 나오는 길에는 그나마 사람들이 좀 빠졌는지 이것저것 구경할 수가 있었고 엄마는 갖가지 채소들을 사셨다. 내가 좋아하는 찐빵도 사먹고 식혜도 나눠먹었다. (자서방입에는 별로 맞지 않았지만...)

"나 재래시장 재미있었어. 우리 엄마가 보셨다면 한국 재래시장 완전 좋아하셨을거야. 나중에 엄마 오시면 꼭 재래시장 보여드리자. 대신 개고기 파는건 엄마가 보시면 경악할거야ㅎㅎ" 

갑자기 생각나서 로버트할리와 이다도시의 고전(?) 대화가 떠올라서 자서방에게 들려주었다. 로버트할리가 개고기 맛있다고 했다가 이다도시가 난리치면서 어떻게 그럴수 있냐고, 개는 우리들의 친구라고 했더니 로버트할리가 "달팽이도 우리들의 친구지예~" 했다는 ㅎㅎ 물론 사투리 느낌까지 자서방에게 전달되면 좋겠지만 그렇지는 않아서 아쉽아쉽. 

그걸 들은 자서방의 대답: "뭐.. 나는 개나 달팽이나 둘다 안친하고 먹지도 않지만 뭐...  근데 이다도시라는 사람은 어떤 사람이야?"

아무튼 자서방이 동남아에서 오래 살다보니 아시아문화에 대해서 굉장히 많이 오픈 돼 있다는걸 한번더 느꼈다. 그리고 그 점이 나는 참 좋다~ 

나중에 정말 시부모님 모시고 서울에 재래시장에 한번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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