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거씨는 약속한 대로 금요일에 룩셈부르크에서 퇴근을 하자마자 기차를 타고 낭시로 왔다. 시어머니와의 짧은 만남으로 내 기분이 울적할까봐 일찍 달려와 준 것이다.
저녁에 무얼 하고 싶냐 묻는 말에 나는 이렇게 대답했다.
"손잡고 시내를 걷고싶어! 곳곳에 예쁜 크리스마스 장식이 많은데 혼자서는 나가고 싶지 않더라고."
"그래. 크리스마스 마켓에서 뱅쇼도 마시고 군밤도 사줄게."
신난다~
주말이라 시내에 인파가 가득가득
하지만 그 번잡함이 오히려 좋았다. 축제 분위기.
나는 오늘 혼자가 아니예요~ 오늘 남친이 왔어요~
버거씨 손을 흔들며 길 한가운데로 신나게 걸었다.
스타니슬라스 광장을 지나 커다란 관람열차가 있는 크리스마스 마켓으로 들어갔다.
추운데도 관람열차를 타려고 줄 서 있는 사람들이 꽤 많았다. 보기만 해도 춥구만..;;
환하게 불을 밝힌 관람열차 아래로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있는 작은 크리스마스 마켓이 펼쳐져 있다.
음악소리가 꽤 커서 사람들이 큰 소리로 대화를 하느라 꽤 시끌시끌했다. 시끄럽다고 불평하는 사람 하나 없이 다들 행복한 표정이었다.
"군밤이다!"
버거씨가 군밤장수에게로 곧장 다가갔다.
아 ㅋㅋㅋ 손이 저게 뭐야 ㅋㅋㅋㅋ 손만 저런게 아니라 이 젊은 군밤장수는 얼굴에도 검댕을 일부러 뭍혀놨다.
나더러 어느나라에서 왔냐길래 한국이라고 했더니 대뜸 "밤~ 군밤!" 하며 한국말을 했다.
와~ 진짜 완벽해요 까르르~
군밤 장수랑 나랑 둘이서 웃고 있으니 질투가 났나.
우리 버거씨는 군밤이라는 말을 잊지 않겠다는 듯 혼자 열심히 중얼거렸다. 군밤 군 밤 군... 밤...
군밤을 들고 뱅쇼를 파는 줄에 합류했다. 줄이 꽤 길었지만 버거씨가 까주는 뜨끈한 군밤 때문에 전혀 지루하지 않았다.
맛있다 군밤! 올해 처음 먹어보는 군밤. 남이 까주니까 더 맛있다.
이곳은 크리스마스 마켓이기는 하지만 오직 먹거리와 마실거리만 판다. 소시지, 라끌렛, 뱅쇼, 맥주- 메뉴는 심플하지만 계속해서 사람들이 줄을 서고 있었다.
음... 앉을데가 없는것 같은데...?
버거씨가 뱅쇼를 계산하고 있을때 나는 또 매의 눈으로 지금 막 일어서고 있는 사람들을 발견하고는 냉큼 달려가서 테이블을 잡았다. 어느새 테이블에 앉아 손을 흔드는 나를 발견한 버거씨는 눈이 휘둥그레졌다. 내가 또 눈치가 빨라서 이런건 잘 캐치한다.
군밤이 생각보다 양이 넉넉했다.
추운 야외에서 뜨거운 뱅쇼를 마시면서 버거씨가 까주는 군밤을 먹으니 기분이 날아갈 것 같다.
"내가 금요일날 와서 기분 좋아?"
버거씨가 물었다. 내가 계속 즐거운 표정을 짓고 있으니 뿌듯한가보다.
"군밤 먹어서 기분이 좋아."
내 말에 버거씨가 빵 터졌다.
당연히 좋지. 군밤보다 군밤 사주고 군밥 까주는 사람이 더 좋지.
소원을 딱히 빌어본 적이 없는데 뭔가 이루어진것 같네.
다들 행복한 성탄 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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