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에는 엄!청! 덥고 겨울에는 엄!청! 추운 시장. 혹독했던 작년 겨울에는 여름을 손꼽아 기다렸는데 여름에 또다른 지옥을 경험한 후로는 겨울이 차라리 낫다는 결론이 났다. 몸이 얼어 붙을것 같긴 해도 어지럽지는 않으니까.
겨울에 한국인 친구들이랑 뜨끈한 국밥을 같이 먹을수 있는건 크나큰 낙이다.
전날 내가 집에서 얼큰하게 닭 육개장을 끓여 먹었는데 너무 맛있었다고 말했더니 SK가 너무 좋은 생각이라며 비슷한 국을 끓여냈다. SK네 어머니께서 일전에 주고가신 고사리까지 넣으니 그야말로 환상적이다. 흥분한 우리는 손님을 받기도 전에 이른 점심으로 후루룩 퍼먹으면서 좋아했다. 이때까진 좋았다.
"저 사람, 너네 시어머니랑 디게 닮았다."
SK의 말에 고개를 들고 보니 한 마담이 맞은편 가게인 정육점 가판대를 보고 서 있는 모습이 보였다. 나는 대답했다.
"맞아 우리 시어머니."
그랬다. 우리 시어머니가 맞았다.
분명히 내가 바로 뒤에 있는걸 아시면서도 등을 돌린 채 고기 진열장을 보고 서 계셨던것이다. SK는 너무 미안하다며 나에게 사과했다. 말을 안했으면 못봤을텐데 괜히 말을 했다고 말이다. 나는 괜찮다고 했다.
우리의 대화가 들릴 정도로 가까이 서 계셨지만 내 목소리를 듣고도 시어머니는 등을 돌리지 않으셨다. 그리고 잠시 후 그대로 자리를 뜨셨다.
그래도 국밥은 맛있네.
나는 태연한듯 국밥을 씩씩하게 마저 퍼먹었다.
속이 멀쩡할리는 없었지만. 속상하다고 하소연 할 마음도 없었다.
한 10분 쯤 지났을까. 시어머니께서 다시 돌아오셨다. 이번에는 나와 눈을 마주치며 곧장 다가오셨다. 본인이 생각해도 이건 좀 심했다 싶으셨던걸까. 나는 '살뤼-' 하고 인사하며 어색하게 웃었다.
어머님이 물으셨다.
"...잘 지내니? 뭐 필요한 건 없고?"
나는 목이 메어서 대답을 못하고 고개만 천천히 좌우로 흔들었다. 어머님은 재차 물으셨다.
"필요한 거 없어?"
여전히 나는 입맛 벙긋하며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내 대답소리가 들리지 않았던 SK는 내가 못알아 들은 줄 알고 "너 필요한거 없냐고..." 라고 통역해 주려다 말고 그렁그렁한 내 눈을 보더니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
"다들 잘 지내시나요?"
내 질문에 어머님도 나와 비슷한 표정을 짓으셨다.
"응... 그냥 다들 너무 슬플 뿐이지..."
말을 제대로 끝맺지 못하신 채 어머님은 서둘러 떠나셨다.
어머님도 슬프시구나.
무스카델도 그 사람 안부도 너무 궁금한데 물어볼 수가 없었다. 마음이 아팠고... 글을 쓰는 지금도 아프다.
그래도 나는 앞만 보고 가야지.
온 종일 기분이 다운된 채로 지냈다.
저녁때 버거씨랑 전화통화를 하다가 낮에 있었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아무렇지 않은 목소리로 말했는데도 버거씨는 슬펐겠다며 나를 위로했다.
"혹시 내가 필요하면 말만 해. 당장 달려갈게. 언제든 네가 오라고 하면 갈거니까 나를 마음껏 이용해, 알지?"
"벌써 저녁 9신데 지금 오면 내일 출근은 어떻게 하려고?"
"몇 시간만 있다가... 너 자는거 보고 나는 돌아오면 되지. 그런 걱정은 네가 할 필요없어. 내가 알아서 하니까."
왈칵 눈물이 났다. 이렇게 따뜻한 사람을 만났구나 내가. 하지만 지금 우는 소리를 들으면 정말로 달려올것 같아서 소리를 죽였다.
"지금 갈까?"
대답 대신에 훌쩍거리는 소리를 들은 버거씨는 당장 오겠다고 했다.
"아니야. 괜찮아. 진짜로 올까봐 대답 할 말을 신중히 찾고 있는 중이었어. 훌쩍"
열심히 말려서 버거씨가 한밤중에 오는 건 막아냈다.
"그럼 이번주는 토요일 대신에 금요일 날 퇴근하자마자 갈게. 그건 괜찮지?"
그제서야 나는 맘놓고 울었다. 엉엉 울면서 고맙다고 말했다. 가슴깊이 숨겨둔 얼음이 다 녹아내릴때까지 울었다.
작년 이 맘때쯤
언제나 열려 있을것 같던 문이 꽝 하고 거칠게 닫혔다. 죽을것 처럼 그 닫힌 문에 매달리고 울던게 얹그제 같은데...
다른 문이 나를 향해 활짝 열렸다. 나밖에 없다고 내가 이세상 넘버원이라고 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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