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리카네 집에 오후 5시쯤 도착했다.
오늘도 역시 엘라가 미리 와서 주인처럼 반겨줬다. 언제나 약속장소에 1등으로 나오는 엘라. 그러고보니 나는 항상 2등이네.
에리카, 엘라, 마이크 그리고 같은반 친구였던 이란인 하니예까지 도착해서 우리끼리 아페로를 가졌다.
에리카가 말아주는 스프리츠는 역시 최고다. 이날 결국 세 잔을 마셨네. (음식을 더 먹으려면 음료를 줄여야하는데!)
엘라는 얼마전 할머니께서 돌아가셔서 런던에 장례식에 다녀왔다고 했다. 성당 장례식에서 엘라는 노래를 불렀는데 너무나 감동스러운 경험이었다며 그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독창이었지만 후렴부분에서는 성당 성가대(?)가 함께 불러줬단다. 듣고 상상만 해도 소름이 돋았다. 그때 부른 노래를 들려달라고 했더니 엘라는 망설임없이 바로 불러주었다. 어메이징 그레이스.
돌아가신 그녀의 할머니를 생각하며 다들 숙연하게 들었다. 귀는 호강했다. 사랑 덩어리 엘라.
처음 만났을때 스므살이었던 그녀는 벌써 23살이 되었다. 프랑스인 남자친구를 만난지도 2년이 다 되어가겠구나.
"나더러 남자친구가 결혼 얘기 좀 덜 하면 안되녜ㅋㅋㅋ 나도 의식하지 못했는데 내가 매일매일 결혼 안할거냐는 얘길 했더라고ㅋㅋㅋ"
누가봐도 그녀가 아까운데 어리고 예쁘고 총명한 그녀는 서른살의 남자친구에게 눈만 뜨면 결혼을 보채고 있다는 얘길 헤맑게 꺼냈다.
"그래서 이제는 한 달에 한 번씩만 하려고 ㅋㅋㅋㅋ"
우리는 배꼽이 빠져라 웃었다. 어쩌면 저렇게 구김도 없고 그늘이 없을까. 옆에 있으면 덩달아 행복해지게 만드는 귀한 친구다.
살다보니 에리카가 요리하는 모습을 다 본다.
저녁때가 돼서 퇴근하고 오는 친구들이 하나 둘 늘어나자 에리카는 저녁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오늘의 메뉴는 타코-
에리카는 최대한 손이 덜 가는 메뉴를 생각했다고 한다. 작년과 재작년에 라끌렛을 했으니 올해는 새로운 메뉴를 생각해야 했다면서 말이다.
소고기, 닭고기를 볶았고 치즈, 각종 소스와 야채들이 있었다.
다들 맵다고 못먹는 할라피뇨는 나랑 에리카 둘만을 위한 재료였다. 역시 고추가 들어가니 무조건 맛있네.
하나만 싸먹어도 배가 불렀는데 욕심내서 두개나 먹어버렸다. 이미 스프리츠로 물배를 채운 후라 두 개도 버겁다. 나이를 먹으니 내 위장도 예전같지 않구나.
식사 후 올해도 마이크는 어김없이 가라오케를 깔았다. 밤 10시가 넘었는데 이래도 되나... ? 된단다. 오케이.
엘라가 처음으로 폭탄머리를 하고왔는데 너무너무 예뻤다.
그런데 저머리를 하자마자 처음 만나는 프랑스인들이 자기한테 영어로 인사를 건네기 시작했다고 한다. 프랑스인들도 저런머리 하는데 왜 갑자기 자신을 외국인으로 대하는지 영문을 모르겠단다.
자정이 넘을때까지 우리는 가라오케를 했다. 흥 넘치는 마이크의 회사 동료덕분에 분위기가 아주 화기애애했다.
드디어 기다리고 기다렸던 생일케이크가 등장했다. (빨리 집에 가고싶어서 ㅋㅋ)
초콜렛 케이크, 과일 배가 들어간 케이크 한조각씩과 함께 내가 가져간 마카롱도 한개씩 얹어줬다.
푸짐하게 디저트까지 먹고 집에 돌아왔더니 새벽 두시였다.
나 내일 출근해야 된다고... ㅋ
이젠 40대라 체력이 예전같진 않지만 그래도 잼나게 놀았으니 만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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