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 이른 저녁 나는 티옹빌 기차역에 내렸다.
플랫폼에 마중나와 있던 버거씨는 평소처럼 두 팔을 활짝 펼쳐서 나를 맞이해 주었다. 차로 큰 아들을 픽업하러 가는 길 버거씨는 오늘도 나에게 들려줄 말이 많았다.
"어제 저녁에 큰 애 대부이자 절친인 친구를 집에 초대했거든. 저녁먹으면서 네 얘기를 참 많이했어. 그 친구 아들이 낭시에서 대학교를 다닌다네? 나중에 낭시에서 넷이 만나자고 하더라."
잠시 후 큰아들이 차에 올라탔고 버거씨는 아들에게 대부와 저녁식사를 한 이야기를 계속해서 들려주었다.
"너 그 아들 기억나니? 너만큼이나 운동을 좋아했는데 지금은 자가면역 질환에 걸려서 고생이 심하다네. 한 번씩 증상이 나타나면 항염제랑 면역 억제제를 며칠동안이나 먹어야만 조절된대. 면역력이 약해져서 감기도 잘 걸리고 몸이 약해졌대. 그래도 일상 생활 열심히 하고 있다더라"
그 얘길 듣다가 내가 끼어들었다.
"나도 류마티스 있잖아. 이것도 자가면역 질환이거든."
버거씨는 고개를 끄덕이며 아들에게 말했다.
"봤지? 세상에 아무 문제가 없는 사람은 없어."
큰 아들은 우울증이 있어서 수년째 정신과를 다니고있는 중이다. 때문에 학업까지 중단 했었는데 최근에 분야를 바꿔서 일과 새 학업을 병행하고 있는 중이다. 다행히 새로운 공부와 일이 꽤 도움이 되고 있는 듯 하다.
아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듣고 있다가 잠긴 목소리로 말했다.
"좋아지긴 했어요. 그래도 가끔 손님들 앞에 서면 긴장돼서 온 몸이 심하게 떨릴때가 있어요..."
버거씨는 그런 아들에게 그런 증상으로 의기소침해 할 필요가 없다고 부드럽게 말했다. 본인도 가끔 중요한 프리젠테이션때는 심하게 떨리고 숨어버리고 싶을때가 있다면서 말이다.
"네가 사람들 앞에 나서는게 걱정된다면 그럴 필요가 없는 직업도 있어. 아빠가 하고 싶은 말은 아무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말이야."
내 남친이지만 너무 자상하고 멋있다. 아... 뿌듯해라.
"그리고 며칠 후 치는 시험 준비는 아빠랑 같이 하자. 오늘 저녁에 같이 요약해보고 내일 아침에 질의 응답식으로 복습하자. 요용만 괜찮다면 말이지."
나를 바라보는 버거씨를 향해 나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아빠가 요약정리해서 필기도 해 줄게. 시험 전까지 그걸 보면서 연습할 수 있도록 말이야."
버거씨는 내 동의를 얻은 후 내 이야기도 아들에게 들려주었다. 내 류마티스 상태는 검사 수치상으로는 매우 심각하지만 통증이 없어서 수년전에 약을 끊은 상태인데 의사가 의아해 할 정도라고 말이다. 걱정을 줄이고 잘 먹고 잘 자는게 매우 중요하다고- 내가 자주 하는 말을 인용했다.
"아, 말이 길어져서 미안하다. 크리스마스 선물에 대해 이야기를 해 볼까? 컴퓨터를 바꾸고 싶다고 했지?"
"네, 블랙프라이데이 행사 있길래 제가 가서 샀어요."
"와! 월급받은걸로 스스로 샀구나! 정말 기특하다!!!"
버거씨는 소년처럼 기뻐하며 어서 사양을 알려달라고 보챘고 아들이 사양을 알려줄때마다 와우! 진짜? 하며 신나했다. 가격이 1900유로라는 말을 들었을땐 나랑 눈을 마주치며 살짝 움찔해하긴 했다ㅋ
"아빠가 크리스마스 선물로 그 금액중 일부를 분담하마. 둘째랑도 공평해야 하니 더 큰 금액을 너에게 할애하진 않을거야."
"당연하죠 아빠, 감사해요."
잠시 후 버거씨는 약국에 다녀온다며 잠시 차에서 내렸고 그 사이 나는 큰아들과 둘이 남았다.
"아빠 진짜 좋은 사람이다, 그치?"
"정말 그래요."
"부럽다. 난 어릴적에 크리스마스 선물을 받아본 적이 없어. 우리 아빠는 우리가 불교신자라서 산타가 안온댔는데 나랑 우리언니는 그래도 산타를 믿었고 매년 양말을 걸고 잔거있지."
아 그때 우리 자매는 참 순수하고 좀 불쌍했구나.
집에서 기다리고 있던 작은아들과 함께 우리는 버거씨가 포장해 온 스시를 저녁으로 맛나게 먹었다.
버거씨는 후식도 아주 맛나게 만들어 주었다. 감, 석류, 피스타치오 아이스크림 그리고 달콤 고소한 피스타치오 크림도 곁들였다.
그날 저녁 두 부자는 열심히 시험준비를 했다. 큰 아들은 내가 제대로 이해한게 맞다면 보건행정분야인듯 한데 의대를 1년 다닌 경험이 있던 버거씨는 열심히 같이 공부를 해 가며 요약을 해 주고 있었다.
다음날 아침에도 버거씨는 제일 먼저 일어나서 아들을 위해 요약본을 필기하고 있었다. 그리고 전날 이해가 안갔던 부분이 있었던지 혼자 공부를 해서 이해를 한 후 아들이 일어나서 내려오자 다시 알아듣기 쉽게 설명을 해 주었다. 두 사람은 질의 응답식으로 공부한 내용을 복습했다.
며칠 후 큰 아들은 시험에서 좋은 결과를 받고 기뻐했다고 한다. 아들이 의기소침해 지지 않게 하기위해 본인이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아끼지 않는 버거씨의 모습은 나에게 정말로 감동적이었다.
"미안해. 심심했지..."
나에게 미안해 하는 버거씨에게 나는 진심을 담아 말해주었다.
"당신은 정말로 좋은 아빠야. 나 감동했어."
내 말에 오히려 감동했다는 버거씨는 이렇게 말했다.
"넌 이 세상 최고의 파트너야."
헤헤 세상 최고의 커플이 탄생하는구먼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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