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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새출발

프랑스인 삼부자에게 김밥을 만들어줬더니

by 요용 🌈 2024. 12. 16.

버거씨랑 이번 주말에는 김밥을 만들기로 했다.
일전에도 같이 만들어 본적이 있는데 이번에 아들들이 집에 와 있어서 꼭 아들들에게도 맛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한다. 그런데 김밥재료를 사러갔다가 스시를 두판이나 포장해 와서는 죄 지은 표정으로 나에게 사과를 했음ㅋ
 

아무튼 토요일에는 스시를 먹었고 일요일에는 요용표 김밥이다. 
 
"아참, 그리고 장 보다가 생각나서 작은 선물도 샀어. 비싼건 아니야." 

 
샴푸랑 아르간오일이다. 우리집 샴푸가 떨어져가는걸 보고 샀나보다. 가격을 떠나서 이걸 보고 나를 떠올렸다는 그 마음이 감동스러웠다. 나는 고맙다는 말과 함께 꼬옥 안아주었다. 
 
오늘의 김밥 재료는 볶은당근, 오이, 새우, 계란, 오이피클이다. 단무지를 가져오려고 준비를 딱 해놨는데 깜빡해서 그냥 버거씨네 냉장고에 있던 오이피클을 넣었다. 


밥담당 버거씨가, 파스타 삶듯이 쌀을 물에 끓이다가 물을 버리는 식으로 지어서 찰기가 다 사라졌다. 믿기 어렵지만 스시쌀이 맞다. 내가 안믿었더니 버거씨가 포장지를 가져와서 보여줌.

찰기 없는 밥으로 김밥을 마는게 쉽진 않았지만 그래도 아들들이랑 버거씨는 김밥맛에 대만족을 했다.

담에는 밥 내가 할게...
 

전날 스시먹듯이 김밥도 간장에 찍어먹는 세 남자. 김밥은 안찍어먹어도 되다고 말해줬음에도...

그래도 안 베어먹고(내가 당부한대로) 한 입에 먹어준게 어디야... 일부러 그래서 김밥도 최대한 작은 크기로 쌌다. (음식 사이즈가 좀 만 커도 나이프를 찾을 사람들이라...)
 
김밥 싸고 남은 재료를 테이블위에 같이 올려놨더니 두 아들들 모두 계란지단을 매우 신기하게 쳐다보았다. 하나씩 집어먹더니 그제서야 이렇게 말하는 이들. 
 
"아 오믈렛이었구나." 
 

마요네즈도 좀 넣었다.

단무지가 들어갔다면 더 맛있었겠지만 이것도 충분히 맛있었다.

세 남자들은 엄지를 치켜세웠고 김밥은 조용히 그리고 빠르게 사라졌다ㅋ 뿌듯해라- 기분이 정말 좋았다. 
 
세 남자는 식사 중 크리스마스 선물에 대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버거씨가 작은 아들에게 휴대폰을 바꿔주기로 한 모양이다. 아이폰 13. 정작 본인은 지난달 오래된 핸드폰이 망가졌을때 일주일 내내 수리하려고 애만 먹다가 결국 (비싼건 필요없다며)저렴한 샤오미로 바꾼바 있다. 

 

신이나 있던 작은 아들이 버거씨에게 물었다.

 
"아빠는 크리스마스 선물로 갖고 싶은거 없으세요? 전에 이북 리더기 사신다고 했죠? 킨들 어때요?"
 
그 말에 버거씨가 고개를 좌우로 흔들더니 아들 둘을 번갈아 바라보며 진지하게 말했다. 
 
"아빠는 아무것도 필요하지 않아."
 
여기까진 괜찮았다. 그 다음말부터가 문제였다.
 
"아빠는 요용을 얻었잖니. 그녀는 이 세상 최고의 선물이야. 앞으로 10년간 아빠는 아무 선물이 필요가 없단다. 그녀만 있으면 돼."
 
악! 
 
김밥이 입에서 튀어 나올 뻔 했다. 
 
다 큰 두 아들들은 또 고개를 끄덕끄덕하고 있네ㅋㅋㅋㅋㅋ 얘들아 왜 진지한건데 ㅋㅋㅋㅋ
 
나 혼자만 몸둘바를 몰라 헛기침을 했고 그 모습을 본 버거씨는 살짝 웃었다. 
 
"아빠 진짜 아무런 선물 필요없어요?" 
 
아들의 질문에 버거씨는 다시 나를 그윽하게 바라보며 단호하게 고개를 가루저었다. 이 어색한 대화가 더이상 진행되지 않기위해 내가 뭐라도 한마디 해야했다. 
 
"얘들아, 선물 필요없다잖아. 그냥 아무것도 준비하지 말자. 10년후에 그때 다시 물어보자 우리." 
 
버거씨는 여전히 그윽한 눈으로 내 얼굴에서 시선을 떼지도 않은 채 천천히 끄덕끄덕했다.
 
아 못말려 진짜ㅋㅋㅋ 
 
올해 선물은 그럼 아무것도 없는 척 연기를 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