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리카의 생일이 돌아왔다.
알마는 카자흐스탄으로 휴가를 떠나서 못오게 되었는데 에리카는 나까지 버거씨랑 데이트한다고 못올까봐 버거씨를 꼭 데려오라고 신신당부했다. 하지만 이번 주말에는 아들들 때문에 낭시로 못 오게 된 버거씨. 대신 에리카는 나 혼자라도 꼭 와야된다며 생일파티를 금요일로 조정했다.
생일 선물로 케이크를 사려고 했는데 시장에 있는 블랑쥬리에 갔더니 케이크가 다 팔렸고 다음에는 일주일 전에 예약을 미리 해 달라고 했다. 뭐 시장에는 쇼콜라트리도 있으니까 괜찮다.
커다란 생강과자가 맞이해 주는 쇼콜라트리.
오늘도 우리 시장에서 두번째로 예쁜 언니에게(젤 예쁜건 우리 지니) 마카롱 한 상자를 샀다.
퇴근 후 에리카에 집에 가기위해 버스 승강장에 갔다.
내가 타야할 T2버스가 이미 도착해 있는걸 보고 열심히 달려갔다. 한 흑인 여성이 버스에서 내렸는데 떠나다말고 달려오는 나를 보더니 다시 뒤돌아가서 버스 뒷 문을 여는 버튼을 누르고 서 있었다. 그 작은 매너에 나는 꽤 감동했다.
"감사합니다!"
숨을 헐떡이면서 인사를 한 후 급하게 버스에 올랐다. 그녀는 싱긋 웃으며 "천만에요" 라고 대답한 후 떠났다. 아 마음이 따땃해진다.
나도 다음에 누군가가 달려오면 꼭 버스 문을 눌러줘야지 하고 생각했다.
얼마전 새 아파트로 이사할 때가 떠올랐다.
버거씨랑 짐을 잔뜩 들고 몇 번을 왔다갔다 했었는데 현관에서 우리를 본 아파트 주민들은 어김없이 자신이 탈 엘레베이터 뿐만 아니라 우리가 탈 엘레베이터 버튼도 미리 눌러주고 떠났다. 덕분에 우리가 엘레베이터에 도착했을때 우리가 탈 엘레베이터가 미리 도착해 있었던 것이다. 그때도 그 젊은 이웃들의 작은 메너에 참 고마움을 느꼈었는데.
어디까지 왔나 싶어서 버스 스크린에 있는 정거장 이름을 확인했다.
Place Aimé Morot. 우리말로 혼자 읽어보다가 피식 웃음이 났다. 프랑스 발음으로 애메모호다ㅋ
에리카네 집 앞에 내렸더니 주황색 황혼이 짙게 내려앉았다. 너무 멋져서 사진을 열심히 찍었다.
작년 에리카 생일때가 떠오르네.
그때는... 그때는...
지금은 180도 바뀐 내 인생.
저 황혼처럼 내 과거도 저물어간다.
슬프고 말고 할 필요도 없는 것이다.
삶의 한 챕터가 넘겨졌을 뿐.
초등학교를 졸업하면 중학교에 가는 것 처럼.
오늘은 신나게 놀아야지. 집에서 기다리는 사람도... 보고싶은 고양이도 없으니까.
내 친구들은 변함이 없으니까 얼마나 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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