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2024 새출발

인생은 아름답다.

by 요용 🌈 2024. 11. 10.

오후가 되자 버거씨는 산책을 나가자고 했다. 날이 춥긴해도 하늘은 푸른색이라며 해가 지기전에 움직여야 한다며 서둘렀다. 그리고 현관을 나서기 전 별 기대없는 목소리로 2층에 있는 아들들을 향해 외쳤다. 
 
"우리 산책 나간다~ 따라갈 사람?" 
 
"난 안갈래. 그냥 집에 있을게요." 
 
"난 갈래! 지금 내려갈게요." 
 
엥? 아무 기대를 안했는데 숫기없는 큰아들이 혼자서 따라오겠다며 내려왔다. 버거씨도 살짝 놀라는 표정이었다.
 
"우리 어디로 가요?" 
 
말이 없고 내성적인 성격이지만 운동만큼은 누구보다 좋아하는 큰아들이 덩치에 안어울리는 작은 목소리로 버거씨에게 물었다. 
 
"날씨가 추워서 오늘은 조깅말고 걷기만 할거야. 그래도 올거야?" 

혹시 조깅을 가고 싶어서 따라오는건가 싶은 버거씨가 한번 더 확인했는데 큰아들은 그래도 좋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모젤강변으로 갈까?" 
 
"네, 좋아요." 
 
 

 
차로 10분정도 달려서 도착한 모젤강변- 
 
"우리 셋이서 사진찍자! 행인을 만나면 찍어달라고 말해야지." 
 
큰아들과 내가 양옆에 함께 걸으니 기분이 정말 좋은 버거씨.
첫번째 행인을 만나자마자 사진을 찍어달라고 부탁했고 서로 다른 배경으로 우리는 나란히 서서 사진을 세 장이나 찍었다. 

기분이 점점 좋아진 버거씨는 걸으면서 말이 더 많아졌다. 버거씨가 좋아하니까 나도 좋아~ 


날은 쌀쌀해도 산책을 나온 주민들이 꽤 많았다. 

 
"이거 무 같이 생겼는데?" 
 
길옆에 농작물을 보며 내가 말했더니 버거씨가 대답했다. 
 
"비트같은데?" 
 
"아 그럼 비트인가보다."
 
앞서 걷던 노부부가 우리 대화가 답답했던지 뒤를 돌아보며 "이건 콜자예요 콜자!" 라고 큰소리로 말해줬다ㅋㅋ 뉍...!
콜자라면 유채인데.. 유채가 이렇게 생겼던가...? 
 

평화로운 풍경 너무 좋다. 

바스락거리는 낙엽밟는 소리도 좋고 우리 옆에 넘실거리는 강의 풍경도 좋다. 

 

 

한껏 감상적이던 버거씨가 큰아들에게 요즘 일이 어떤지 묻고 있었다.
큰아들은 원래 공부하던것을 그만두고 몇 달간 방황을 좀 하다가 최근에 진로를 바꾼 상태이다. 알떼흐넝스(alternance)라고 일주일에 반은 공부를 하고 반은 약국에서 근무를 하면서 용돈도 벌고 학비를 지원 받고 있다. 최근들어 더 의기소침해진 큰아들에 대한 걱정이 많던 버거씨는 요즘 아들이 약국에서 가끔 배달일까지 한다는 말을 듣고 얼굴에 화색을 띠었다. 뭔가 야외에서 활동적인 일을 병행한다는 것 자체가 반가운 소식이었던 것 같다. 
 
"너 정말 멋지다! 배달일을 하다니! 약국에서 전화 응대도 하고 동료들과도 친하게 지내고 정말 자랑스럽다!"
 
아빠의 우렁찬 칭찬에 아들은 머쓱해하며 웃었다. 
 
이번에는 버거씨가 자신의 계획을 아들에게 진지하게 들려주기 시작했다. 
 
내가 새로 구한 아파트에 관한 이야기며, 내 이사를 돕느라 본인도 바빠질 예정이라는 이야기등을 들려주었고 아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묵묵히 듣고 있었다. 
 
"2년후에는 둘째도 성인이 되잖아? 그때쯤에는 내가 낭시에다 집을 구할 생각이야. 그렇게되면 티옹빌보다 낭시에 더 자주 있게 될것 같아. 장차는 티옹빌 집을 아예 처분한 후에 요용이랑 낭시에서 같이 살 계획이고." 
 
허걱. 
 
저런 진지한 말을 이렇게 갑자기 한다고...?
 
나는 살짝 당황해서 아들의 표정을 살폈다. 다행히 아들은 평온한 얼굴로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휴우...; 
 
"내가 요용이랑 시간을 더 많이 보내게 되겠지만 그래도 아빠가 필요할때 마다 나는 너희들 곁에 있을거야. 내년에 요용이 혼자서 한국에 휴가를 간다고 하니 그때는 우리 셋이서 여행이라도 가자." 
 
"좋아요."
 
버거씨가 아들한테까지 벌써 대 놓고 말할줄은 몰랐는데 그래도 좀 감동적이기는 했다. 
 
사실 내가 더 감동한 부분은 버거씨 보다 큰 아들이었다. 
내성적인 성격인데다 사교성이 부족하다는 말을 많이 들었는데 어쩐지 나랑은 처음 만났을때부터 친해지고 싶어한다는 걸 느꼈었다. 그런데 오늘 이렇게 따라 나와서 함께 걸으며 우리 이야기를 관심있게 들어주는걸 보니 그 느낌이 확신으로 바뀌었다. 나중에 버거씨한테 말했더니 본인도 똑같이 느꼈다며 환하게 웃었다.
 
비록 큰아들은 별 말없이 옆에서 따라 걷고 있는 정도였지만 나도 기분이 따뜻하고 든든해지는것을 느꼈다. 

해가 서서히 넘어가네. 이제 그만 집으로 돌아가자. 
 
우리는 뒤로 돌아서 왔던 길로 되돌아가기 시작했다. 지는 해를 정면으로 맞으면서- 

붉은빛 해를 얼굴에 맞으며 나란히 걷고 있는 부자의 모습이 아름다워 두사람의 옆모습 사진을 몇 장 찍었다. 버거씨가 좋아하겠네.

 
아름다운 저녁이다. 
아름다운 세상이다. 
브라보 마이라이프. 
 
희망을 안 버리길 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