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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새출발

천연제품만 고집하는 남자친구

by 요용 🌈 2024. 11. 14.

일요일 아침 버거씨는 아침을 먹자마자 새 아파트로 가서 페인트 칠을 마저 해야겠다고 말했다. 어제 온종일 칠했으면서도 완성하지를 못했던 것이다. 정말 생각보다 큰 일이었구나... 
 
나도 청소를 하려고 음료수, 간식 그리고 진공청소기를 챙겨서 따라나섰다. 

 
아직도 잘 모르겠다. 대체 무엇이 바뀐것인지... 더 환해졌다고 빈말로 말하긴 했지만 페인트를 칠하기 전이랑 솔직히 차이가... 흠...
 
버거씨가 페인트를 칠하는 동안 나는 욕실과 냉장고를 닦았다.  

코딱지만한 냉장고... 힝... 
냉동실이 한칸있긴 한데 얼음을 얼릴수 있지만 고기나 아이스크림을 보관하기에는 무리다. 
집에서 요리를 좀 하려면 냉동칸이 좀 필요한데 버거씨는 차라리 냉동고를 중고로 하나 사는게 낫겠다고 한다. 아직 고민을 좀 해 봐야겠다. 
 
남이 쓰던 냉장고라 자벨(락스)로 한 번 빡빡 닦아주고 싶은데 버거씨는 절대 자벨은 안된단다. 건강에도 해롭고 환경에도 안좋다면서 친히 천연제품들을 가져온 버거씨.  

사봉누아(천연비누)와 청소용 식초. 
 
두 제품으로 나는 여기저기 뻑뻑 문질러 닦았다. 나중에 내 머리에서 식초냄새가 나는것 같았다. 
 

새 아파트는 여전히 좁지만 그래도 이전 아파트보다는 살짝 넓다. 
주소상으로 내가 거주할 곳은 2층이지만 한국으로치면 5층에 해당하는 곳이다. 프랑스에서 층을 세는건 정말 이해가 안된다. 지상층인 0층위에, A층과 B층이 있고 그 위에 1층, 2층이 있다. 

경치가 참 좋다. 정면에 건물이 없어서 남들 시선을 신경쓸 필요가 없고 시끄러운 골목이 아니라서 소음으로부터도 안심된다. 
무엇보다! 창문을 열고 있는데도 춥지가 않다니!!! 
지금 내가 사는 아파트는 석빙고... ㅠ.ㅠ 
이제 조금만 기다리면 따뜻한 집에서 반신욕도 할 수 있게 된다.... 감사합니다 신이시여.... 
 
우리 버거씨는 의욕이 앞서서 벌써부터 내가 가져온 진공 청소기 홀더를 벽에다 박아버렸네. 나 아직 저쪽집에서 써야 되는데... 혼자 너무 뿌듯해하길래 그냥... 칭찬해줬다.  
 
"응... 잘했네... 잘했어... 고마워..."

와중에 스크래치도 많이 냈구나...
잘했네... 잘했어...
 
 
페인트칠을 끝내고 바닥을 청소하는것도 큰 일이었는데 결국 해 냈다. 아이고 허리야... 

이제 곧 이 공간이 내 물건들로 채워지겠지. 침대 테이블 옷장 등등... 
 
"이곳에서 나는 벌써 좋은 기운이 느껴져. 넌 이 집에서 더 행복할거야. 내가 확신해." 
 
나도 느끼는 바다. 뭔가 아늑하고 기분좋은 곳이다. 
 
 
버거씨는 이 집을 나오면서 자꾸만 되돌아보며 뿌듯한 미소를 지었다. 
 
"페인트를 칠한 일이 너무 뿌듯하고 자랑스러워. 정말 환해지지않았어?" 
 
대체 어디가...
 
"응 환해졌어. 힘들었을텐데 고마워." 
 
환해진건 잘 모르겠지만 고마운건 사실이니까... 
 
이 집에선 앞으로 더 많이 행복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