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거씨가 열심히 페인트를 칠했던 토요일날 늦은 오후 우리는 청소용품들을 사러 외곽에 있는 마트에 가게되었다. 차안에서 나는 미리 저녁 메뉴를 고심하고 있었다. (나는 여전히 먹는 생각뿐이다.)
"오늘 저녁에 우리 뭐 먹을까? 먹고 싶은거 있어?"
내 질문에 버거씨는 별 생각이 없는듯 아무거나 괜찮다고 말했다.
"그럼 내 맘대로 결정한다? 일본라멘? 이탈리안 피자?"
"흠… 새로운거 뭐 없을까? 이따 올드타운에 가서 한 번 둘러보는거 어때? 뭔가 색다른 경험을 하는것도 좋잖아?"
"잠깐만! 나 더포크 앱 좀 볼게!"
요즘 더포크앱 프로모션 기간이라 50프로 할인을 하는 레스토랑들이 꽤 있다.
"아 있다! 중동 음식 어때?! 자만이이라고 50프로 할인된대! 이 집 리뷰도 좋아. 비록 리뷰 갯수는 많지 않지만..."
"중동 음식이면 뭐가 있지?… 쿠스쿠스?"
"응 쿠스쿠스도 있어."
쿠스쿠스가 있다는 말에 버거씨는 고개를 끄덕였고 나는 바로 앱에서 7시 예약을 마쳤다.
마트에서 우리는 고무장갑, 목장갑, 걸레 등의 청소용품과 의자 2개를 샀다. 가구를 구경하느라 시간이 좀 지체가 되는 바람에 20분 정도 늦을것 같아 가는 길에 나는 레스토랑에 전화를 걸었다.
"봉수아, 7시에 두명 예약했는데요, 20분정도 늦을 것 같아요. 괜찮을까요?"
"네 걱정말고 오세요. 이따 뵙겠습니다."
음...
사장님 목소리가… 너무 잠겨있었다. 왠지 손님이 하나도 없는것 같은 느낌적인 느낌... 쎄한데...
7시가 넘어서 자만(ZAMAAN) 레스토랑에 도착했는데 꽤 넓은 홀에 손님이 하나도 없네? 가장 피크인 토요일 저녁인데 말이다. 다시 나갈까 싶은 유혹이 들던 찰나에 주방에서 젊은 사장님이 나왔다. 서로 어색하게 웃었다.
"원하는 테이블에 앉으세요."
이 분위기 어쩌나. 잘못 왔나. 너무 조용하고 너무 어색하다.
테이블을 골라 앉은 후 내가 농담을 던졌다.
"내가 오늘 여기 전체 예약했어. 우리 둘만을 위해!"
명랑한 내 목소리에 버거씨도 명량하게 받아주었다.
"오 고마워, 나 감동했어."
다시 나와서 메뉴만 주고 황급히 떠나려는 사장께 버거씨가 말을 건넸다.
"뭐가 맛있나요? 추천 좀 해주세요."
"쿠스쿠스도 맛있구요. 개인적으로 저는 타진을 자신있게 추천드립니다."
우리는 추천해 주시는 메뉴를 하나씩 시켜서 나눠먹기로 했다.
메뉴 주문이 끝났는데 버거씨랑 사장님은 여전히 스몰토크를 이어가고 있었다. 나는 화장실이나 다녀와야겠다...
잠시 후 내가 화장실에 다녀왔을때 버거씨와 사장님은 놀랍게도 여전히 대화중이었다. ㅡㅡ; 덕분에 홀안의 어색했던 분위기가 부드러워진 느낌이 들었다. 두 사람은 꽤 진지한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나 배고픈데... 이 사장님은 혼자서 요리하고 서빙하고 다 하는데 당신이 붙잡고 있으면 우리 저녁은 누가 요리해주니...
내가 살짝 눈치를 줬더니 버거씨는 사장님께 얼른 사과를 하며 보내드렸다.
"조금있다가 덜 바쁘실때 꼭 이야기를 마저 했으면 좋겠습니다. 하하."
버거씨는 사장님이 들려준 이야기를 나에게 전해 주었다.
"저 사람은 모로코 출신이래. 아버지는 UN에서 근무를 하셨대. 저 사람이 태어나고 자란 곳은 모로코 사하라 사막 입구주변인데 그 지역은 모로코로부터 독립을 원하고 있대. 근데 모로코에서는 자치를 허락하지만 국적과 국기는 모로코의 것을 사용하도록 하고 있대."
버거씨는 세계 지도까지 꺼내서 짚어주면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짧은 시간에 벌써 별별 얘기를 다 나눴구나.
잠시 후 사장님께서 우리가 주문한 음식을 내 오셨다.
와우! 기대 훨씬 이상으로 너무너무너무너무 맛있었다!!
꼬소하고 포실한 쿠스쿠스를 한 입 먹으니 환상이다! 그때 야채 스프를 한 입 떠먹으면 우와...!!
쿠스쿠스에 닭고기랑 소고기를 둘다 넣어달라고 했는데 소고기 볼은 그냥 그랬고 닭고기는 엄청나게 연했다. 오븐에 구운듯 기름기는 쭉 빠지고 속에 고기는 엄청 연했다.
타진이라고 하는 이 소고기는 더 환상이었다.
대체 어떻게 익히면 이렇게 소고기 식감이 쫀득하고 연하게 변하는걸까. 우리 둘은 그냥 눈이 하트로 변했다.
쿠스쿠스랑 타진을를 반반씩 나눠 먹었는데 야채 스프와 함께 세가지 요리의 조화가 너무너무 좋았다. 우와...
비주얼에 그 맛의 느낌이 잘 안담기네... 진짜 맛있었는데.
이 야채스프로 말할것 같으면 조미료는 느껴지지않고 야채 본연의 깊은 맛이 아우러진 맛이었다. 속이 편안하고 따뜻해지는 맛. 호박의 맛이 진해서 가을이 느껴지기도 했다. 이 국물만 온종일 퍼먹어도 좋겠다. 버거씨는 쿠스쿠스위에다 이 국물을 끼얹어서 먹었는데 나는 개인적으로 포실하고 꼬소한 쿠스쿠스의 식감은 따로 느끼라고 추천하고 싶다.
"진짜 별 기대 안했는데 이렇게나 맛있을줄은 몰랐어."
버거씨의 표정은 그냥 기분 좋은 정도가 아니라 감동의 수준이었다. 아무런 기대 없이 찾은 곳이 숨은 맛집이었네.
"나 원래 쿠스쿠스 굉장히 좋아했거든. 그런데 이 맛은 정말 오랜만이다."
쿠스쿠스를 좋아한다는 말은 또 처음 듣네.
"우리 부모님이 이혼하시기 전에 우리 네식구가 단란하게 외식을 했던 적이 있었어. 내 유년시절 가장 행복했던 기억중의 한 장면이야. 쿠스쿠스를 맛있게 하는 집이었는데 정말 행복했던 날이야. 그날 후식으로 내가 아이스크림을 골랐다? 그런데 아이스크림이 엄청 딱딱하게 얼어있었던거야. 길다락 쇠숟가락으로 무리해서 푸다가 아이스크림 조각이 옆 테이블로 날아갔지뭐야. 누나랑 엄마 아빠 다들 그거때문에 온종일 웃었어."
버거씨는 그 시절 가족 외식을 떠올리며 행복한 표정을 지었다. 맛있는 음식이 행복한 기억을 소환했다.
"우리 여기 꼭 다시 오자. 알마네 부부를 여기로 초대할까?!"
내 친구 알마 부부를 초대하자는 말을 먼저 해 주다니. 감동인데?
잠시 후 손님들이 들어와서 총 4테이블이 찼다. 다른 손님들이 오다니 정말 다행이다. 이 맛있는 음식을 50%나 할인받고 먹기 정말 미안해지려던 참이었는데.
마침 실내에서는 이국적인 아랍 음악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야외는 엄청 추운데 이 가게안은 어느새 후끈한 아랍 국가에 온 듯한 분위기였다.
"우리 여행온 거 같지않아? 아랍음악, 이국적인 인테리어, 친절한 모로코인 사장님. 우리는 지금 모로코에 와 있는거야."
내 말에 버거씨가 크게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레스토랑을 가는 의미 중 큰 한 가지가 바로 간편하게 여행자의 기분을 낼스 있다는 점이 아닐까 해. 이렇게 친절하고 사교적인 사장님이 있는 경우 그 나라의 문화나 역사에 대해서 들을수도 있잖아. 짧은 여행이나 마찬가지지.
흠... 하지만 대부분 프랑스에 있는 한국식당 사장님들은 중국인들인뎅ㅋ
아무튼 맨날 똑같은 것만 먹다가 새로운 시도를 하길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더포크앱이 아니었다면 와 볼 생각도 안했을것 같은데 이 레스토랑 덕분에 우리가 얼마나 큰 행복과 기쁨을 느끼고 있는지 이 사장님은 아실까. 갈 때 잊지말고 팁 넉넉히 남겨야겠다.
"다음에 우리 꼭 다시 오자. 쿠스쿠스가 이 정도 퀄리티에 14유로라니 말이 안되게 싼거야. 티옹빌이었음 30유로는 할거야."
이렇게 맛있는데 가게 위치가 변두리라 홍보가 잘 안되었다는 사실이 너무 안타까웠다. 이런 집은 잘 돼야 해! 나는 식사를 하는 도중에 구글 리뷰를 올렸다. 태어나서 난생 처음으로 올리는 리뷰였다. 서비스 맛 가격등에 모두 별 5개를 찍었다.
행복한 식사기 다음 포스팅에 이어집니다. (할 말이 또 넘쳐나서요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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