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전에 살짝 푸른빛이 도는 바나나를 샀는데 며칠만 지나면 노랗게 변하겠지 싶었는데 집이 너무 추워서 영원히 색깔이 변할것같지가 않았다. 해독주스에 잘 숙성된 바나나의 맛이 중요한데 요즘은 계속 푸르스름한 바나나를 넣고 있네. 검은반점이 난 바나나야 그립구나. 집 전체가 냉장고가 된 것 같다. 석빙고에 살고 있는거니 나...

주말에 버거씨가 정원표 사과를 몇개 갖다줘서 해독주스에 요긴하게 먹고 있다. (그 외에 감, 석류, 무화과도 가져왔다.)
아무튼 나는 오늘도 노란 바나나를 찾아 퇴근 후 마트에 들렀다.
하지만 오늘도 푸른 바나나밖에 없는것을 확인하고 ㅠ.ㅠ 계란만 사서 나오려고 하는데 뒤에서 누군가 나를 부르는 소리가 났다. (사실 노이즈 캔슬링을 끼고 있어서 잘 안들렸는데 이 분은 나를 여러번 부르신것 같다;)
"마담, 익스큐제모아 마담..."
에어팟을 빼고 돌아봤더니 30대쯤으로 보이는 시각장애인 흑인 여성이 나에게 말을 건네고 있었다.
"600그람 다진 소고기가 필요해요... "
(사실 그녀는 더 많은 말을 했는데 내가 알아들은 말은 이것 뿐이었다.ㅋ)
"아, 네 마담. 600그람 다진 소고기요? 제가 찾아볼게요."
냉장코너로 가서 이것저것 살피던 나는 그녀에게 말했다.
"여기 종류가 여러개 있는데요... 350그람 짜리가 있고 250 그람짜리가 있어요..."
나는 가격을 포함한 각각의 정보를 읽어주었다. 그녀는 선뜻 결정을 못내리고 나에게 여러가지를 되 물었다.
"우리는 다섯명이에요. 그걸로 충분할까요?"
"글쎄요... 어떻게 요리하실건데요?"
"볼로네제를 만들거예요."
"흠... 600그람이 필요하다고 하셨으니까 이걸 하나씩 구입하시면 600이네요. 저라면 이걸로 다섯명분 볼로네제 괜찮을것 같은데요?"
그녀는 확신이 없는듯 했지만 알겠다고 둘 다 담아달라고 했다. 그리고는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미리 준비를 했어야 했는데 너무 정신이 없어요. 샐러드도 필요한데..."
"제가 샐러드도 봐드릴까요?"
"아니예요. 괜찮아요. 도움 주셔서 감사해요. 그냥 가셔도 돼요. 좋은 저녁 되세요 마담."
샐러드도 필요하다고 분명히 들었는데... 자꾸 가라고 하니까 가긴 가는데...
뭔가 더 도움이 되고 싶었던 나는 멀리 떠나지 못하고 그녀를 잠시 지켜보고 서 있었다. 그녀는 근처에 있던 다른 여성에게 가더니 이내 "마담, 샐러드가 필요한데요..." 라고 말을 걸고 있었다. ㅋㅋㅋ 역시 내가 답답했던가보다ㅋㅋㅋㅋ ... 처음에 그녀도 내 목소리를 듣고서 하필 외국인이네 하며 당황했으려나.
다른 여성이 그녀를 돕는 모습을 본 나는 그제서야 안심하고 미련없이 계산대로 향할 수가 있었다. 나는 최선을 다했다며 스스로를 칭찬하면서 말이다ㅋ

저녁이 되자 온 도시에 안개가 짙게 내려앉았다. 뭔가 낭만적이고 신비로운 분위기네.
온 세상 모든 사람들이 건강하고 행복하고 많이 웃는 저녁이 되게 해 주소서.

나도 조금만 버티면 추운 석빙고 집 탈출이다.
그때 되면 삶의 질이 훨씬 더 좋아질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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