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은 안마시지만 가무를 사랑하는 버거씨는 한 달 전에 룩셈부르크에서 열리는 어느 프랑스밴드의 콘서트 표를 두 장 예매해 놓고 그 날이 오기를 손꼽아 기다리고 있었다. 솔직히 나는 음악을 좋아하긴 하지만 전혀 들어본 적이 없는 밴드라 큰 기대는 없었다.
콘서트가 있는 토요일, 퇴근 후 티옹빌 역에서 버거씨를 만나 저녁을 먹고나서 룩셈부르크로 갔다.
공연장 앞에 도착했을때 안에서 들려오는 음악소리를 듣고 나서야 나는 가슴이 뛰기시작했다. 오 신난다!!
공연장 앞에 있는 푸드트럭이나 바에는 맥주나 스넥을 구매하려는 사람들로 붐비고 있었다.
우리도 뭐 마실거를 사들고 들어가야 하나. 이따 다시 나오기는 힘들것 같은데... 아니다. 지금 뭘 마시면 화장실에 가고싶어질테니 참자...
자켓이랑 가방을 맡기고 느지막히 공연장 안으로 들어갔는데 역시나 예상대로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었다.
시간 딱 맞춰서 오늘의 밴드 랑페라트리스: l'impératrice가 몽환적인 선률의 음악과 함께 등장했다.
처음 듣는 사람들도 편안하게 감상할 수 있는 음악이었다. 보컬 목소리가 너무 편안하고 아름다웠고, 기타 연주에 편안하게 입혀지는 느낌이랄까.
이 공연장은 의자가 없고 서서 관람하는 곳이었다. 다행히 나랑 버거씨는 키가 작은 편은 아니라서 나름 관람이 가능했다.
앞에 두 떡갈나무(사이즈의) 두 남자가 나타나기 전까지는 말이다. 2미터는 족히 넘어보이는데 신나서 이 떡갈나무들이 점프라도 하면 뒤에서는 아무것도 안보였다. 그래도 나는 그 두 남자 사이로 어찌저찌 관람을 하고 있었는데 잠시 후 또다른 키 큰 남자가 내 바로 앞에 자리를 잡았을때 버거씨는 도저히 못참겠다는 듯 그 남자를 불러서 정중히(?) 따지고야 말았다.
"익스큐즈미, 이러시면 안되지요. 바로 뒤에 이 여성이 서있잖아요. 그렇게 바로 앞에 서계시면 뒤에서는 하나도 안보인다구요."
나는 버거씨를 말렸고 그 남성은 알겠다는 듯 옆으로 한 발자국 물러났다. 하지만 그 남성은 금새 내 앞으로 슬금슬금 돌아왔다. 앞에 두 떡갈나무 때문에 이 남성도 어쩔수가 없었던 것 같다.
사람들이 점점 몰려들고 있었다.
우리는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 바로 앞에 있었는데 난간에 사람들로 꽉 막혀있어서 올라갈 엄두도 나지 않았다.
2층 난간 안쪽을보니 저기 깊은쪽에는 자리가 널널한데... 저기까지 어떻게 뚫고 올라가나...
바로 그때 2층에서 젊은 남자하나가 사람들 사이로 빠르게 내려오는게 보였다. 화장실에 가는것 같은 느낌적인 느낌인데...?!
내 예감이 맞았다. 잠시 후 볼일을 마친 그 남자가 돌아 왔을때 나는 다급하게 버거씨를 돌려세우며 "저 남자를 따라가!" 라고 시켰다. 처음엔 말귀를 못알아 듣던 버거씨는 내 손짓을 보더니 빠르게 그 남자 뒤에 바짝 붙었다. 그리고 나는 버거씨 뒤에 붙었다. 낯선 남자가 길을 터 준 덕분에 우리는 쉽게 2층까지 무사히 따라 올라올 수가 있었다. 그 남자는 자기 뒤에 꼬리가 붙은줄은 몰랐을 것이다ㅋ
2층에 올라왔더니 자리가 널널하네?? 1층이랑 계단에만 사람들이 바글바글 몰려있었던 것이다.
버거씨는 나를 돌아보며 어린아이처럼 행복한 표정을 지었다.
"오 세상에 우리가 해냈어! 넌 천재야!!"
하하 내 이럴줄 알았지.
"근데 목마른데 마실거리를 사러 다시 내려갈 생각을 하니까 끔찍하다. 그냥 마시지 말아야지."
내 말을 들은 버거씨가 손가락으로 앞을 가리키며 소리쳤다.
"오! 저기를 좀 봐!!!"
오 세상에나...! 2층에도 바가 있었네! 심지어 손님이 없어서 줄을 설 필요도 없다. 직원이 심심해보일 지경이었다. 우리는 또다시 신나라 방방 뛰면서 좋아했다. 마치 사막을 헤매다 오아시스를 찾은 사람들처럼 말이다.ㅋㅋ
나는 오렌지쥬스를 한 잔 시켰다. 얼음도 가득 넣어달라고 했다. 6유로나 돼서 좀 놀랬지만 다 마시고나서 컵을 돌려주면 2유로를 돌려준다고 했다. (나중에 카드결제에 오류가 나서 환불이 안됐다능... ㅠ.ㅠ)
으아... 저기를 좀 봐... 우리가 방금전까지 저 곳에 있었다니... 아찔하다.
무대도 훨씬 잘 보이고 밀치는 사람도 없었다. 시원한 음료까지 마시면서 여유롭게 감상할 수가 있었다.
심지어 내 앞에 서 있던 키 큰 남자는 자리를 떠나기전에 나한테 손짓으로 이리 오라라고 부르더니 자기 자리를 주고 갔다. 그 후 부터 우리는 앞에 시야를 가리는 장애물 하나없이 2층 난간에 서서 신나게 춤까지 추면서 공연을 즐겼다. vip석과 다름없는 곳!
공연의 열기는 점점 더해갔다.
"랑페라트리스(l'imperatrice)는 무슨뜻이야?"
내 질문에 버거씨는 이렇게 대답했다.
"여자 황제를 말하는거야. 황제의 부인이 아니라 제국의 여왕."
밴드의 홍일점인 여성보컬은 과연 카리스마가 넘쳤다. 신비롭고 아름다운 목소리와 아름다운 춤선으로 청중을 사로잡았다. 우리는 한마음으로 열광했다. 작은 공연장이라 열기가 더 대단했던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2층으로 올라오고 나서는 밴드의 얼굴도 자세히 보였고 거기에 더해 청중들의 얼굴도 잘 보였다. 인상적이었던 점은 청중들의 연령층이 특정층에 몰린것이 아니라 10대부터 60대까지 그야말로 다양했다는 점이었다! 그 다양한 연령층의 사람들이 남들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환호하고 춤을 추면서 공연을 즐겼다. 나랑 버거씨도 신나게 방방 뛰면서 소리치고 춤을 췄다. 땀이 나도록 말이다.
공연이 끝났을때 관객들은 일제히 앵콜을 외쳤다. 사실 앵콜을 어떤식으로 외칠까 궁금하던 차였는데ㅋㅋ 내 귀에는 프랑스어 발음으로 엉꼬오오오~ 엉꼬오오오~ 라고 하는것 처럼 들렸다.
밴드는 곧 무대로 다시 올라왔고 세곡 정도를 더 신나고 열정적으로 들려주었다. 앵콜때는 보컬이 시키는대로 앉았다 일어나거나 하는 동작들을 따라하면서 엄청 많이 웃기도 했다.
공연이 끝난 후 사람들은 오랫동안 뜨겁게 갈채를 보냈다. 밴드는 진심으로 감격한 표정이었고 그 표정을 본 우리는 더더욱 크게 환호를 했다. 진심 너무 멋진 공연이었다! 우리도 옆사람들처럼 목이 터져라 환호했다.
멤버중에 동양인이 있어서 나중에 검색했더니 성이 권씨라고 나왔다. 한국계인듯 해서 뿌듯했다.
2층에서 편하게 관람을 했지만 나올때는 한참을 기다려야 했다.
1층에서 사람들이 빠져나가는 모습을 난간에서 지켜보며 버거씨가 말했다.
"진짜 놀라운게 뭔지 알아? 연령층이 정말로 다양하다는 점이야. 어린 10대부터 60대까지 골고루 다 섞여있어."
"응 나도 안그래도 그 생각을 하고 있었어. 그 다양한 연령층들이 한마음으로 점프를 하고 환호를 했잖아. 놀라운 경험이었어."
내가 공연을 신나게 즐기는 모습이 너무나 보기 좋았다는 버거씨는 앞으로 더 자주 콘서트를 관람하자고 말했다.
"오늘 네 기지덕분에 2층에서 정말 편하게 관람할 수 있었어! 정말 잘했어!"
오늘은 정말로 운이 좋았다. 1층에서 봤다면 사뭇 느낌이 달랐겠지.
아무튼 신나게 환호하고 점프하고 오랜만에 제대로 스트레스 푼 날이었다.
오늘부터 나는 랑페라트리스 팬이다~!!
혹시 궁금하신 분들을 위해 라이브 한 곡 링크 첨부합니다~ 이 노래 후렴구 늠늠 좋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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