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에 티옹빌에 가야 하는데 하필이면 주말동안 철도 파업이란다 ㅠ.ㅠ
아 진짜... 파업의 나라 프랑스. 철도는 왜 자꾸 파업하는거지. 이렇게 자주 파업해도 개선이 안되는건지 아니면 요구 사항이 자꾸 늘어나서 이러는건지.
그런데 기차 예약 앱에서 블라블라카 옵션을 보여주네?
블라블라카는 카풀 앱인데 지금까지 딱 두번 이용해 보았다. 기차보다 저렴하긴 하지만 극 F들 사이에서 힘들었던 기억이 있어서 어쩔수 없는 경우 빼고는 타고싶지 않았는데... 지금이 그 어쩔수 없는 경우였다.
아무튼 운좋게도 내 퇴근시간과 픽업 위치에 딱 맞는 기사가 딱 한 명 있길래 얼른 예약했다.
19살 초보운전 대학생이란다. 그래도 블라블라카 경험이 꽤 있으니 믿어도 되겠지.

낭시는 거처가는 도시 중 한 곳이었고 그녀는 이미 이전 도시(이름 모름)에서 승객을 한 명 태우고 도착했다. 역시 이번에도 그들의 화기애애한 자기 소개와 수다가 정신없이 시작되었다.
예쁘게 생긴 운전자 소녀는 지금 벨기에에 살고 있단다. 그러니까 이 차는 이전 도시에서부터 벨기에로 가는 머나먼 길에 낭시, 퐁타무쏭, 메츠를 거쳐 총 네명의 승객을 태워간다고 한다. 학생 신분에 블라블라카 수입이 꽤 도움이 되긴 하겠다. 어차피 가는 길이니까 말동무도 할 겸.
그녀의 첫 승객은 20대 청년이었는데 문신과 터프한 수염과는 다르게 꽤 섬세한 성격이었다. 병원에서 간호조무사로 일하는데 메츠에 친구들을 만나러 가는길이라고 했다. 이 친절한 두 사람은 내가 혼자 외롭도록 내버려두지를 않았다. 계속해서 나에게 질문을 했고 자신들에 대한 이야기도 열심히 들려주었다. 내가 프랑스어를 잘 못한다고 했지만 그들은 그렇지 않다고 내 귀에 많은 이야기들을 쏟아부었다...
기빨려..ㅠ.ㅠ

비가 잠깐 내리더니 금방 게었다. 차안은 너무 습하고 더웠다.
"나 어제 잠을 못잤어..."
처음 만난 사이지만 다들 반말로 대화를 했다. 원래 알고 지내던 사람들처럼.
나는 핑계를 살짝 대면서 눈을 붙이려고 했지만 간호조무사 총각은 자기도 어제 못잤다며 못잔 이유를 또 열심히 말해 줌 ㅋㅋ
그런데 정말 블라블라카를 자주 타고 다니면 (성격이 외향형인 전제하에) 프랑스어가 많이 늘수밖에 없겠다. 나는 노땡큐..;;
잠시 후 퐁타무쏭에서 20대 아가씨 한명이 더 탔다. 그녀도 메츠에 친구들을 만나러 간다고 했는데 화려한 파티복장과 메이컵을 한 상태였다. 그녀로 인해 차안의 분위기가 더 화기애애해졌다. 블라블라카에는 정말 내향인은 없는걸까.
잠시 후 메츠에 도착했을 때 승객 두 명이 내렸고 새로운 여성 승객이 탔다.
새로 탄 여성은 영어로 말했다.
아... 영어로 말해도 되는거였구나. 나 또 열심히 프랑스어 한다고 피곤했는데... 그녀 덕분에 편하게 영어로 말했다.
그녀는 세르비아 사람인데 벨기에 페레로로쉐에서 근무하고 있고 주말에 메츠에 놀러온거라고 했다.
일하면서 페레로로쉐와 킨더 초콜렛을 많이 먹는다는 그녀의 말에 괜히 반가워서 나역시 싱가폴 네슬레에서 근무한 적이 있어서 초콜렛을 꽤 먹었다고 말했다. 그때부터 차안에는 완전히 다른 주제의 대화가 시작되었다.
각 나라별 근무시간에 대해 이야기를 할 때 세르비아 여인이 말했다.
"우리나라에서는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야근을 하곤 해. 누가 시켜서 하는게 아니라 스스로 일을 제대로 마치고 싶어서 일욕심이 있어서 하는거지. 나는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아."
프랑스 운전자가 그 말을 듣고 말했다.
"프랑스에서는 그런 상황을 예방(?)하기 위해서 일주일 35시간으로 제한하고 있는거야. 근무시간이 끝나면 각자 개인 시간을 가지라고 말이지. 삶의 발란스는 중요하고 모두 공평하게 누려야 해."
역시 프랑스인 다운 발언이다. 세르비아 여인은 "프랑스는 일주일에 35시간 밖에 일 안한다고?? 세상에! 너무 적다!" 라고 깜짝 놀랬다.
"좀전에 세르비아에서는 자발적으로 야근을 한다고 했잖아? 한국은 하기 싫은데 하는거야ㅋ 퇴근시간이 다 됐는데 보스나 동료중 아무도 퇴근을 안한다고 생각해봐. 혼자 일어나기 어려운 분위기...;; 그러다 내가 싱가폴에서 근무할 때 놀랬던게, 야근을 너무 많이 한다면서 저녁 7시에 사무실 불을 아예 꺼버리더라? 좋은 의미의 충격이었어."
야근 이야기가 나왔으니 또다른 일화를 들려주었다.
"미국회사에 근무할 때 보스랑 분기마다 한국에 출장갔거든. 파트너사에서 미팅일정을 저녁 6시에 잡는걸 보고 우리 보스가 놀래더라? 한국은 대체 몇 시까지 근무를 하냐고 말이야. 가서 직접 보시라고 했는데, 과연 그날 미팅 끝나고 나갈때까지도 그 회사 건물에 불이 꺼진 사무실이 하나도 없더라. 우리 보스가 정말로 놀래더라고."
프랑스인 운전자가 말했다.
"아, 시험공부하면서 불평할 때마다 한국 이야기를 종종하곤 해. 한국 학생들은 공부를 그렇게나 많이 한다며?"
"응 한국은 학생들도 공부를 많이 하고 근로자들도 야근하고 거기다 술도 한국이 제일 많이 마신다더라 하하 그러니까 일하고 술마시고 다음날 다시 출근하고 참... 거기다 너희들이 한달씩 휴가가는 여름에 한국인들은 딱 일주일 다녀오는 사람들이 수두룩해. 요즘에는 그나마 조금씩 바뀌는 추세라고 하더라."

잠시 후 프랑스인 운전자가 화제를 바꾸며 말했다.
"벨기에는 맛있는게 참 많아. 비싸긴 해도 초콜렛도 맛있고 맥주도 맛있고..."
운전자의 말에 세르비아 여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그리고 치즈도 맛있지."
이부분에서 세르비아 여인이 갑자기 그건 아니라고 언성을 높였다.ㅋㅋ
"벨기에 치즈는 맛없어. 진짜 벨기에 살면서 맛있는 치즈는 먹어본 적이 없다고! 종류도 너무 없고!"
그녀의 갑작스런 발진에 우리는 빵터졌다.
나는 한국살면서 치즈라고는 체다랑 모짜렐라밖에 몰랐는데ㅋㅋ 처음으로 스위스 본사 출장갔을때 호텔 조식으로 나온 생전 처음 보는 온갖 치즈들에 홀려서 호기롭게 접시에 종류별로 다 담았다가 얼마 못먹고 우엑 할 뻔했던 이야기를 했더니 그녀들이 웃었다.
프랑스 살면서 이제 치즈맛을 조금씩 알게 되는 중이다.
차를 타고 오는 동안 나 자신도 믿기 어려울 정도로 너무나 재미있는 대화를 나누었다.
티옹빌에서 내릴때 아쉬울 정도로-
살갑게 인사를 나눈 후 주차장에서 기다리고 있던 버거씨를 만나 차안에서 주고간 대화들을 들려주었다.
"너도 이제 나처럼 되는구나. 후후"
아, 그 정도까진 아니고.
처음에는 기가 좀 빨렸는데 관심있는 주제들에 대해 대화를 나누니까 또 다르네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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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카풀 앱(Blablacar)을 써봤다.
공원에서 심장어택 당함
그냥 다 삼키라는 프랑스 치과
이 커다란 빵! 알뜰하게 다 먹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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