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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이야기/시부모님과 다녀온 테네리페 여행

나만 맛있었던 스페인 현지 빠에야

by 낭시댁 2022. 7. 1.

시어머니께서는 나에게 제대로된 빠에야를 스페인 현지맛으로 보여주신다며 낮 내내 테네리페에 있는 빠에야 맛집을 검색하셨다. 그렇게 후기가 좋은 한 군데를 골라 예약까지 완료하셨고 우리는 저녁때 그곳으로 택시를 타고 찾아갔다.

스페인 광장에서 멀지 않은 골목이었는데 분위기가 너무나 좋은곳이었다. 뭔가 젊음의 열기가 느껴지는(방콕의 카오산 비슷한?) 느낌이랄까...

오늘도 우리는 시원한 맥주잔을 먼저 부딪혔다.

어머님께서는 특히 빠에야에 대한 기대가 크셨는데 셋이서 먹을 큰 빠에야 하나와 전채요리로 토마토 샐러드를 주문하셨다.

"스페인에서는 토마토가 맛있어. 어느 레스토랑이든 메뉴에 없더라도 이렇게 토마토 샐러드를 주문할 수 있단다."

토마토 샐러드는 당연히 맛있었는데 난 테네리페에 온 후로 양파가 왜이리 맛있는지 모르겠다.

토마토 위에 검은색은 깨나 후추가 아니라 다름아닌 소금이었다! 화산의 영향으로 바다가 온통 검은색이니 검은소금도 생산이 되나보다. 맛은 별 차이 없지만 굉장히 독특하게 느껴졌다.
기념품으로 검은 소금을 좀 사갈까...

그리고 토마토 샐러드보다 내가 더 열광했던 것은 바로 저 갈색 버터였다. 달달한데다 맨 위에는 고소한 마늘 플레이크까지 뿌려져 있어서 빵과 먹으니 환상적이었다. 시부모님께서는 나에게 모두 몰아주셨는데 나는 빵에 발라서 말끔하게 비웠다. 나중에 직원에게 물어보니 이 버터는 카라멜을 섞어서 만든거라고 한다.

잠시후 도착한 빠에야-

물기가 있어보이지만 쌀에 금새 다 흡수된다.

나는 환호했지만 어머님의 표정은 어두워지셨다.

색깔과 냄새... 저는 좋은데 이런게 아닌가요 어머님? (스페인 현지 빠에야가 깐깐한 프랑스인에게 평가당하는 중)

첫술을 뜨신 어머님의 표정에 실망감이 무겁게 드리워졌다.

난 맛만 좋다고 계속 먹으며 말했다.

"아버님은요? 아버님도 이거 맛없으세요?"

"음.... 아주 나쁘지는 않지만… 맛있는 편도 아닌것 같네."

어머님께서는 몇술만 뜨시고는 결국 숟가락을 내려놓으셨다. 잠시후 아버님도 숟가락을 내려놓으셨지만 나는 여전히 맛있다고 혼자서 계속해서 퍼먹었다.

"너두 억지로 먹지마라. 억지로 먹다가 탈난다."

"전 맛있는데요? 물론 어머님이 만드신것보단 훨씬 못하지만요."

"이건 빠에야가 아니야…"

바로 그 순간 눈치없이 나타난 점원이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맛이 어때요?" 하고 물어왔다.

울 엄니는 정색하시며 맛이 없다고 하셨다. 스페인어로 말씀하셔서 다는 못알아들었지만 호감형이던 점원은 화난얼굴을 한 채로 돌아갔고 다신 우리 테이블 근처로 고개조차 돌리지 않았다.

"점원이 불친절하네요?"

내 말에 어머님께서 피식 웃으시며 말씀하셨다.

"아, 그건 내가 말을 심하게 해서 그래." 😂😂

"😂 저 가엾은 젊은이에게 뭐라고 하셨나요?"

"나는 사실을 말했을 뿐이야. 이건 빠에야가 아니다. 데자스트흐(재앙:désastre)다. 관광객 상대라고 대충 만든거냐. 뭐 그 정도...(본인이 말씀하시면서도 웃으심) 근데 다 말하고 나니까 기분이 좀 풀렸어. 저 젊은이를 위한 팁은 남겨줄거야. 꽤 놀랬을거다." 😂

역시 우리 어머님은 하실 말씀은 다 하시는 분이다.


“이거 2-3인분이라고 하지 않았나요? 양 엄청 많은데요?”

“이거는 열명이 와도 다 못먹어.”

“맛이 없어서요? 🤣🤣🤣”

“그렇지!”

나는 배부를때까지 혼자 계속 퍼먹었고 특히 해산물은 쏙쏙 다 골라먹었다.

이때 강아지 한마리가 우리 테이블에 다가왔는데 우리가 눈길을 살짝줘서 그런지 떠날 생각을 안하고 우리만 하염없이 빤히 바라보며 서 있었다. 그 맑은 두눈을 거부하지 못하신 어머님께서는 결국 빠에야에 있던 작은 닭고기 조각을 닦아서 건네주며 강아지에게 말씀하셨다.

"이거 맛없는거라 안먹는게 좋을텐데… 그래도 먹을거야?"

맛있게 받아먹은 강아지는 점점 더 애절한 눈빛을 보냈고, 어머님께서는 어쩔수 없으시다는 듯 강아지를 위해 닭고기살을 몇개 더 골라내셨다.

결국 나랑 강아지만 만족스러웠던 저녁식사였다.

시부모님은 거의 안드셨기때문에 어떻게든 내가 계산하고 싶었는데 이번에도 실패했다. 그래도 시원한 저녁공기를 맞으며 호텔로 걸어가는 길은 너무나 아름다웠다. (나는 배가 불렀기때문에 더 좋았던것 같다. 강아지도 같은 기분이었을것 같다.)

천천히 시아버지 걸음에 맞춰서 한 20분간 걸었는데 골목들 분위기도 좋고 밤공기가 시원해서 지루하거나 힘들지 않았다.

이런곳에 사는것도 참 좋겠다... 유러피안들이 사는 동남아느낌…

아버님께서는 도중에 젤라또집앞에서 멈추셨다. 저녁이 부실하셨던 것이다 😅

나는 빠에야 맛만 좋던데 뭐가 잘못됐는지 잘 모르겠다😂 (우리 친정엄마는 내 입에 쓴건 하나도 없다고 하셨다. 워낙 다 잘먹어서.)

어머님 말씀으론, 빠에야 소스를 잘 만드는게 중요한데 이 레스토랑에서는 인스턴트 가루를 썼을거라고 하셨다. (점원에게도 그렇게 말씀하셨다고- )


다음날 아침. 어머님께서는 아침을 드시다가 혼자서 갑자기 웃으셨는데 왜 웃으시냐 여쭈니, 어제 빠에야집 점원이 떠올랐다고 하시는 것이다. 그 청년은 영문도 모르고 말로 따귀를 몇대나 맞은 기분이었을거라고...😅 실제 그 점원은 우리가 계산서를 달라고 불렀을때도 계속 꽁한 표정이었다.

"난 그저 사실을 말했을 뿐이야. 그건 빠에야가 아니라 데자스트흐(재앙:déastre)였어."

나는 데자스트흐라는 단어를 또 하나 배웠다. 귀에 쏙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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