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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이야기/한국

손칼국수 장인 금자씨 이야기

by 낭시댁 2022. 1. 23.

재작년 프랑스 오기전 친정집에서 머물때였다.

엄마아빠 두분다 일을 하셔서 식사준비는 내 몫이었다.
한날 나는 집에있는 밀가루가 유통기한이 다 된 것을 보고는 마음이 급해져서 갑작스럽게 만두를 만들기로 다짐을 했다. 뜨거운 물로 익반죽을 하고, 만두소도 만들고, 홍두께까지 내 놓고나서 엄마가 오시기만을 기다렸다.ㅋ

엄마는 갑자기 이게 다 무슨일이냐 하시면서도 홍두께를 잡고 전문가 포스를 풍기시며 익숙하게 반죽을 밀기 시작하셨다.

리듬을 타면서 쭉쭉 밀어주고 반죽을 펼치고를 몇번 반복하다보면 반죽이 점점 얇게 펼쳐진다.

어릴때부터 나는 엄마가 이런 식으로 칼국수를 만드시는걸 보고 자라서 세상의 모든 엄마들은 다들 손칼국수를 만드는 줄로만 알았다.

오늘은 칼국수가 아니니까 채로 자르는 대신에 주전자 두껑으로 동그랗게 만두피를 잘라주셨다. 어느새 집에 돌아오신 아빠까지 모두 함께 둘러앉아 만두를 빚기시작했다.

노인정에서 퇴근(?)하시다 우연히 들르셨던 외할머니까지 합류하신 후 우리집은 어느새 만두 공장이 되었다.

만두소가 부족해서 나중에는 김치만두까지 급하게 추가했는데 저녁 시간이 늦어졌음에도 불구하고 모두들 오랜만에 만들어 보는 만두가 꽤 즐거웠던지 내내 웃는 얼굴이었다.

할머니께서 옛 생각이 나시는지 말씀하셨다.

"반죽 참 잘 밀었다. 금자가 참 전문가야."

우리 엄마도 어린시절을 떠올리시며 대답하셨다.

"어릴적에 엄마가 칼국수 만드는 걸 보고 어깨너머로 구경하다가 배웠지. 그게 그렇게나 재밌어보일수가 없더라니까."

할머니께서는 나에게 아주 오래전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한날에는 있지, 니네 외할아버지하고 내하고 들에서 늦게까지 일을 하고 돌아오는데 글쎄 해는 넘어가지... 허기가 너무 지는데... 생각해보니 집에 식은밥도 없고 아무것도 없네... 아 어느세월에 불을떼서 밥을 짓나 한숨이 절로 나더라고... 근데 세상에... 집에 들어와보니까 니네 엄마가... 그때 한 열살이나 먹었을까...? 금자가 칼국수를 만들어 놓고 우리 올때를 바래고 있었던거야! 아이고 금자야 금자야... 어찌나 고맙고 기특하던지… 그때 금자 얼굴을 나는 잊을수가 없어."

"나도 못잊지. 나는 야단맞을 각오를 하고 있았는데 엄마가 그렇게 좋아하는거야. 그 다음부터는 엄마가 ‘금자야, 오늘 칼국수 먹자.’라고 말만 하면 아주 신이나서 만들었지. 칼국수 만드는게 나한테는 놀이였어."

"엄마 진짜 대단하다. 나는 어릴때 그렇게나 구경했어도 아직 흉내도 못내는데 엄마는 처음부터 어떻게 그렇게 잘 만들었지?"

내 말에 할머니께서는 박장대소를 하시며 말씀하셨다.

"아니야, 삐뚤빼뚤 난리났지! 근데 그날 내가 배가 하도 고파서 눈이 뒤집어질때라 모양이 눈에 들어오겠나. 그러더니 나중에는 내보다 더 잘 만들더라. 칼국수 만드는게 대체 뭐가 재밌다는건지..."

한바탕 옛날 이야기를 듣다보니 만두가 금방금방 쌓였다.

할머니께서는 이날 유난히도 우리금자 우리금자 하시며 엄마 이름을 자꾸 부르셨다.

"우리금자가 반죽은 잘 만드는데 만두 만드는건 아직도 할 수 없구나... 이래 생긴것도 만두라고…”

ㅋㅋㅋㅋ할 수없다는 표현은 답이 없다는 뜻인가보다. 저 사진 중앙에 소심하게 오므려진 만두랑 삼각형 만두가 바로 우리 엄마꺼다. 아이고 엄마... 만두는 왜 저런대요...ㅋㅋ

호박 감자넣고 팔팔끓인 엄마의 손칼국수가 먹고싶다. 우리 엄마 겉절이랑 같이.
어릴때는 워낙 자주 먹어서 특별한 줄도 몰랐는데 이제보니 우리집이 맛집이었다.

행복은 별게 아니었다.

가족과 나누는 소소한 순간들이 모두 행복이었다. 그 작은 순간들 마다 바로 이게 행복이라는 것을 인지하면서 살았으면 좋았을텐데…
다행히도 이 행복은 아직 진행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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