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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이야기/한국

우리 엄마 그리고 외할머니...

by 낭시댁 2022. 3. 9.

우리 언니네 가족은 얼마전 이웃동네에 있는 새 아파트로 이사를 했다.

그리 멀지 않은곳이지만 외할머니께서는 이사 소식에 꽤 충격을 받으셨다. 일부러 이사 소식을 최대한 늦게 알려드렸었는데 괜히 애틋해지셔서 이사전에 언니네 집에 더 자주 드나드시며 반찬등을 갖다주셨다고 한다. 89세 연세가 무색하실 정도로 허리도 여전히 꼿꼿하시고 걷는것도 좋아하시는데 언니네가 이사한 새 아파트는 걸어서 찾아갈 수 있는 거리가 아니라서 그런지 할머니께서는 일종의 상실감을 느끼셨던 것 같다. 그만큼 가까이 살던 큰 손녀에게 많이 의지를 하셨던것 같기도 하다.

언니는 이사 며칠 후 엄마 아빠와 할머니를 초대해서 저녁을 먹는다면서 나에게 화상통화를 걸어왔었다. 화면속에서 온 식구들은 회를 맛있게 먹고 있었다. 아... 나도 회 좋아하는데... ㅠ.ㅠ

그리고 그 다음날 나는 친정 엄마와 화상통화를 했다.

언니네 새 집을 구경한 소감을 엄마에게 물었더니 엄마는 표정이 갑자기 어두워지셨다.

"할머니가... 회를 진짜 잘 드시더라. 회접시를 들더니 본인 앞접시에다 종류대로 덜어 놓고는 초장을 비벼서 정신없이 먹는거야... 다른거는 아무것도 안보이는 사람마냥. 처음에는 우리엄마가 배가 많이 고팠구나싶었는데... 아차... 우리 옥자가... 하늘나라 가고부터는 그 좋아하는 회를 못먹었구나 생각이 그제야 퍼뜩 드는거야..."

우리 엄마는 갑자기 울음이 터지셔서 아이처럼 팔등으로 눈물을 훔치시며 꺼억꺼억 울기 시작하셨다.

섬에 살던 막내이모 덕분에 우리집은 싱싱한 회를 자주 먹었다. 그러다가 재작년 이모가 하늘나라로 떠나셨다. 이모의 부재는 할머니와 엄마에게 여전히 큰 슬픔으로 남아있다.

"우리 엄마가 회를 그렇게 좋아했는데... 나는 그 생각도 못하고... 내가 막 스스로 너무 바보같고 원망이 되니까 그 자리에서 눈물이 왈칵하는거를 간신히 붙들어 참고 앉아있었던 거야 내가... 우리엄마는 회가 먹고 싶어도 옥자 생각이 나니까 회먹자는 말도 한번 못꺼냈던가봐... 내가 미련해서 우리 엄마가 동네 추어탕집을 제일 좋아하는 줄로만 알았지..."

그날 눈물을 간신히 붙들어 참으셨다던 엄마는 나와 통화를 하며 뒤늦게 어린아이처럼 펑펑 우셨다. 우리 엄마가 그렇게 목놓아 우시는걸 처음 본 나는 결국 같이 울었다.

떠나간 이모 생각도 나고, 미처 헤아리지 못해서 할머니께 회 한번 안사드린 자신이 너무 죄스럽다고 몇번이나 말씀하셨다.

"그날 회를 사온 형부한테 진짜로 고맙더라... 우리 엄마가 회를 좋아하는지 알고 사온건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너무너무 고맙고 사위를 참 잘 얻었다는 생각이 들었어. 아참 자서방하고 비교하는거는 아니다. 절대로..."

우리엄마는 실컷 펑펑 우시다가 자서방 얘기를 하시면서 피식 웃으셨다. 울다가 웃으면 안되는거자나...

오래전에 필리핀 친구가 들려준 말이 생각난다.

"우리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직전에 하신 말씀이 뭔 줄 알아? 앞에 자식들 손주들이 줄줄이 서 있었는데 할아버지는 정작 허공을 보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셨대.

...엄마!"

그 말이 잊혀지지를 않는다. 나이를 아무리 먹어도 가장 행복하고 또 눈물나게 하는 단어가 바로 엄마가 아닐까...


우리 엄마 친구분들은 다들 엄마를 부러워하신다고 한다. 우리 엄마 연세에 이렇게 건강한 친정엄마가 가까이 계신것도 복이라고 말이다.

"할머니가 여전히 건강하게 곁에 계시니까 얼마나 좋아. 이제 회 자주 사드려야겠네!"

연신 훌쩍거리시는 엄마 곁에는 세상 무뚝뚝한 우리 아빠가 말없이 앉아 계셨다. 아빠도 말씀은 안하셔도 생각이 많으셨던 것 같다.

아빠, 이제 회 자주 먹읍시다!

하늘나라에서 시크하게 고개를 끄덕이고 계실 막내이모의 모습도 눈에 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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