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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이야기/프랑스 살이

의도치않게 버스로 낭시 투어를 했다.

by 낭시댁 2022. 2. 12.

학교를 마치면 항상 대만인 친구와 함께 트램을 타곤 했는데 오늘 그녀는 시민교육에 가느라 결석을 했다. 이참에 버스를 타 보기로 했다. 아침에는 항상 버스를 타고 학교에 가지만 집으로 돌아올때는 한번도 안타봤던 것이다.

뭐 똑같은 번호를 타면 되겠지 하고 학교에서 가장 가까운 정거장만 검색해서 무심코 탔다.

그런데 버스가 언덕을 오르더니 자꾸만 자꾸만 시내와 멀어지고 있었다. ㅠ.ㅠ

분명 학교 근처 정류장에서 버스에 오를때에는 학생들이 한가득 있었는데 어느새 버스에는 나혼자 남아버렸다. 기사님 어디로 가시나요... 집에 걸어갔다면 벌써 도착하고도 남을 시간인데... 엉엉...

7정거장만 가면 되는 거리였는데 어플리케이션을 다시 확인해 보니... 47정거장이 남았단다. 귀신에 홀린기분... 이게 무슨 조화지...

결국 버스는 한적한 곳에 정차를 했고, 기사님은 시동도 꺼버리셨다. 저기요...? 여기 사람있어요...

기사님도 내심 나에대해 궁금하셨을 것 같다.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용기를 내서 기사님께 말을 걸었다.

"익스퀴제모아... 여기가 종점인가요... 저 내려야되지요...?"

"네, 여기가 종점인데요, 마담은 어디로 가시나요?"

"XXX이요..."

"아하, 10분후에 출발할테니 그냥 기다리시면 됩니다."

아... 47정거장이나 남았...🤭

"혹시 더 빨리가는 다른 버스가 있는지 아시나요?"

"아 방금 요 앞에서 떠나더라구요. 이제는 이 버스가 가장 빨라요."

친절도 하시지... ㅡㅡ; 그 와중에 나는 또 내 프랑스어 실력이 늘었다며 속으로 깨알같은 뿌듯함을 느꼈다. ㅋㅋㅋ

친절한 기사님과 단둘이서 10분동안 전광판도 라디오도 모두 꺼진 적막한 버스안에서 어색하게 앉아있었는데 하도 조용해서 내 배에서 나는 꼬르륵 소리도 크게 울리는것 같았다.

버스는 다시 출발했고 지나왔던 길을 다시 거슬러서 돌아가기 시작했다. 엉엉... 배고프다...

지겹게 버스에 앉아있었더니 버스안의 모든 것들이 하나둘씩 눈에 익숙해 지기 시작했다. 내리는 문 양쪽 기둥에 있는 버튼은 하차할때 누르는 용도가 아니라, 직접 문을 열 수 있는 버튼이었던것이다. 버스문 바깥쪽에도 직접 문을 열 수 있는 버튼이 있어서 기사님이 정차후 문을 열어주지 않으면 직접 눌러서 문을 열고 탈 수가 있다.

결국 버스가 학교 근처로 다시 돌아갔을때 나는 드디어 버스를 탈출해서 다른 버스로 갈아탔다. 계속 앉아있었으면 그 버스는 또 시내를 빙빙 돌게 될 모양이었다. 집에서 학교에 올때 매일 타는 버스라서 의심없이 탄건데 돌아갈때 노선은 완전히 달랐던 것이다 ㅡㅡ;

갈아탄 버스는 종점이 동네 근처였고 그곳에서 또 집까지 걸어야만 했다. 그래도 그 버스에서 뒤늦게라도 탈출한 건 잘한 결정이었다.

평소 30분이면 돌아왔을 거리를 오늘 버스타고 헤메다가 1시간 30분이나 걸려서 집에 돌아온 것이다. 집에 오자마자 배고파서 급하게 라면을 끓여먹었다.

그 와중에 우리 시어머니께서는 딸기 타르트를 가져가라며 메세지를 주셨는데, 너무 진이 빠져서 먹고 싶은 마음이 전혀 들지 않았다. 저는 오늘 디저트 패스할랍니다...

저녁에 남편에게 오늘의 모험을 들려주었더니 새삼 놀랍지도 않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방콕에서도 와이프는 출퇴근할때 딴생각하다가 몇정거장 지나친적이 많았던걸로 기억하는데...?"

... 다른건 돌아서면 다 까먹으면서 그런건 잘도 기억하지.

그렇다. 나는 세상 둘도 없는 길치다. 나에게 모험이란 사치인 것이다...

다음부터는 모르는 버스는 타지말아야지. 아오 지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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