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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이야기/프랑스 시월드

시어머니께서는 경로잔치가 싫다고 하신다.

by 낭시댁 2021. 12. 24.

며칠전에 시댁에 놀러갔던 날이었다. 

항상 시댁에가면 모웬과 이스탄불의 행방을 먼저 찾곤 하는데 요즘따라 잘 볼 수가 없는 이스탄불은 이날도 지하실에 꼭꼭 숨어있었다. 

"기분이 안좋아보이는데요...?"

내 물음에 시어머니께서 말씀하셨다. 

"응, 어제 백신 맞고왔는데 아직도 기분이 별로인가봐."

평소같았음 나를 보자마자 반가워서 쪼르르 다가왔을텐데 기분이 많이 안좋긴 안좋은가보다. 그래 넌 혼자 있어라-

 

벽난로앞에서 차를 마시는데 시어머니께서 작은 철제상자를 보여주셨다.

"낭시에서는 매년 이맘때쯤에 노인들을 식사에 초대한단다. 그런데 올해는 코로나때문에 이렇게 집으로 선물상자가 왔더라구."

낭시에서도 경로잔치를 하는구나... 경로잔치라고 표현하니 꽤 정겨운 느낌이다.

"코로나때문에 취소되지 않았더라도 우리는 한번도 그 행사에 가 본 적이 없어. 나이든 사람들만 한데 모아놓고 노인잔치라니 기분이 별로 안좋아. 우스꽝스러워지는 것 같아."

그나저나 낭시의 모든 어르신들을 한자리에 초대한다면 규모가 얼마나 크려나...?

"음... 혼자 계신 외로운 분들은 그런기회에 친구도 사귈 수 있지 않을까요? 연애도 하고요 ㅎㅎ"

"거기가면 아주 나이많은 할머니들이 대부분이라더라."

"그러면 잔뜩 꾸미고나가서 연하남을 유혹해야지요!"

내 말에 시어머니께서 손뼉을 치며 웃으셨다.

"열어보거라, 안에 쿠키, 초콜렛같은게 들어있어. 좀더 일찍 받았다면 너희 언니에게 보내는 소포에 같이 넣어보냈으면 좋았을텐데... 보관했다가 다음에 언니 만나면 줄래? 그 꿀도 이 지역에서 나온거란다."

낭시 무료 관광 가이드를 받을 수 있는 티켓이다.

"프랑스에서는 매년 Monument Préféré를 선정하는데 올해는 낭시 스타니슬라스광장이 선정되었단다. 아주 영광이지."

쿠키하나만 내가 먹을테니 나머지 초콜렛과 과자는 두분께서 드시라고 말씀드렸다.

프랑스 올해의 모뉴멍 프레페헤-

"식사초대는 매년 안가시는데 차라리 이렇게 선물로 받는게 차라리 낫겠어요."

"아니야, 이것도 싫어. 너무 쓸데가 없잖니, 세금만 아깝지. 차라리 문화생활을 할 수 있는 극장 티켓같은 걸 주면 얼마나 좋아. 정말 마음에 안들어..."

Fiers! 자랑스러운! 스타니슬라스 광장이 프린팅된 에코백도 들어있었다.

나는 시골에 살던 어린 시절에 마을에서 경로잔치에 대한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저가 어릴적에 살던 시골 마을에서는요, 경로잔치는 온 마을사람들이 다같이 참여하는 축제였어요. 저희 엄마 아빠는 동네이웃들이랑 야외 잔디밭에다 테이블들을 세팅하고 음식을 차리셨고요, 저는 동네 친구들이랑 가서 저희 할머니도 찾아보고 또 그 옆에 같이 앉아서 밥도 먹고 음료수도 마시고 놀았어요. 어르신들을 위한 축제였지만 다같이 준비하고 먹고 나누는 마을행사였지요."

"정말 즐거웠겠구나. 그런 이벤트라면 정말 환영이지."

아주 어릴때였지만 나는 그때 야외에 설치된 커다란 솥에서 육계장이 온종일 끓고 있던게 생각난다. 떡과 과일 그리고 돼지편육에 찍어먹던 새우젓 냄새까지도 기억난다. 가장 그리운 건 그 시절 동네 친구들과... 옆에 나를 앉혀놓고 계속 이것저것 챙겨주시던 우리 할머니. 내가 중1때 돌아가셨는데 동네 어르신들께 손주들 자랑을 그렇게나 하셨었다.

결국 나는 시부모님께 나의 두 할머니(친가,외가) 자랑을 실컷하고 돌아왔다.

요즘 시골 경로잔치는 어떤 모습이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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