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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이야기/DéFLE-Lorraine 다국적 친구들

프랑스식 등산, 내겐 너무 살벌했다.

by 낭시댁 2022. 9. 14.

지난 포스팅에 이어집니다.

프랑스 보쥬, 산과 호수를 한번에 즐길 수 있는 곳!

 

앞서가던 마갈리는 이제 모습조차 보이지 않았고, 내 뒤로는 여전히 바닥에 주저앉아있는 가브리엘과 그를 바라보는 카린이 있었다.  

 

혼자 부지런지 발길을 옮겨보지만 정녕 이길이 등산로라는 말인가... 

가도가도 계속 돌길이 끝없이 펼쳐지고 있었다. 앞에 마갈리가 가는걸 못봤다면 이길은 지날 수 없는 길이라고 단정지었을것이다. 

시엄니께서 주신 키높이 운동화 칭찬해ㅋㅋ 오늘 참 고생이 많다.  하지만 이건 그저 시작이었다. 

등산로를 가득 채우고 있던 큰 돌들이 좀 잦아지나 했더니... 

이제는 미끄러운 모래길로 바뀌었다. 

 

경사가 심한데다 운동화가 모래에 쭉쭉 미끄러져서 결국 네발로 기어올라갔다 ㅡㅡ; 체면이고 뭐고 내 목숨이 중하니까..

네발로 덜덜 떨다말고 혼자 갑자기 웃음이 났다.

 

만일 돌아올때도 이 길로 다시 와야 한다면 나는 축지법을 써야만 하겠구나...

진심 평범한 속도로는 절대 못내려올 경사였다. 

이길은 절대 아닐거야...라고 믿고싶었건만 우리가 따라가던 빨간 세모가 선명하게 표시돼 있었다.

 

사진으로 당시의 긴박함이 느껴지질 않아서 너무 아쉽지만... 나무 뿌리를 보면 심한 경사가 어느정도 느껴진다.  

발을 쭉쭉 미끄러지고, 잡을곳은 하나도 없고... 한번 미끄러지면 어디까지 굴러 떨어질지 가늠이 되질 않았다. 최소 한두군데는 부러질 각오를 해야 했다. 

 

진땀을 빼면서 네발로 살금살금 기어서 결국 한 나무뿌리위에 앉아서 쉴수가 있었다. 

카린이 챙겨준 물통을 꺼내서 목을 축이며 한숨을 돌렸다. 

 

과연 가브리엘이 포기하지 않고 뒤따라오고 있으러나... 그렇다고 해도 이 길을 보는 순간 다시 주저 앉을것 같은데... 어른도 힘들고 위험천만한 길인데 안전장치 하나 없는 이 길을... 어린이에게는 절대 힘들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드디어 평지로 올라왔다. 땀한방울 흘리지 않고 간단한 차림으로 물한병씩 손에 쥐고 지나가는 사람들을 보니 좀 허탈했다. 나는 죽음의 고비를 넘어왔는데... 

내가 빨간 세모를 따라 부지런히 전진하고 있을때, 일행들은 반대편에 있는 전망대에서 상봉을 한 상태였다. 

화살표만 보고 온 나는 저 멋진 광경을 놓친것이다.. OTL

 

가브리엘은 포기하지 않았고, 내가 지나온 그 길을 용감하게 지나왔다. 더 놀라운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다고... 일전에 왔다가 힘들었던 코스라서 하기 싫어했던 거라고 한다. 그래도 엄마의 설득에 포기하지 않고 뒤따라온 가브리엘이 참 대견했다. 

그후로 힘든 코스가 나올때마다 가브리엘은 몇번이나 자신이 쥐고 있던 등산스틱을 나에게 내밀었다.

 

"이거 사용하면 훨씬 쉬워요."

 

한번 받아써봤지만 익숙하지 않은 나에게는 무용지물이었다. 아무튼 가브리엘 눈에도 내가 꽤 걱정되었나보다ㅎㅎ

바로 이곳은, 아주 오래전에 이용하던 광산의 입구라고 한다. 

그리고나서 얼마후 우리는 작은 호수를 발견했다. 

엄마앞에서 멋지게 포즈를 잡아보는 가브리엘.

우리도 한명씩 호수앞에서 저마다 포즈를 잡아보았다. 

땀에 흠뻑 젖은 등이 느껴진다.

좀전에 네발로 기어올라왔는데 지금은 또 좋다고 포즈를 취하는구나ㅎㅎㅎ

이곳에서 우리는 잠시 목도 축이고 과자도 먹으면서 기운을 충전했다. 

그리고나서 호수 옆으로 난 길을 따라 다시 등산을 이어갔다. 

여전히 길을 험했다. 머리위로 나무가 내려앉아있고 길은 자갈길...

처음에 안한다고 주저앉아있었던 가브리엘은 어느새 엄마와 노래를 흥얼거리고 있었다. 

 

"너 지금 노래하는거야? 등산 안한다고 불평하더니 완전 바꼈네??" 

 

내 말에 가브리엘은 머쓱하게 대답했다. 

 

"과자 먹었잖아요." 

 

"사실 나도 그래. 과자먹고 기분 좋아졌어."

 

사실이었다. 

그리고 우리 눈앞에 나타난 200살먹는 고목! 

저마다 나무를 끌어안고 기념사진을 찍었다. 

언제 힘들었나 싶을정도로 기분이 다시 좋아졌다. 

 

다행히 하산하는 길은 경사가 심하지 않았고 나는 축지법을 쓰지 않고도 무사히 내려올 수가 있었다. 

 

이제 우리는 물놀이 하러 호수로 go 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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