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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이야기/DéFLE-Lorraine 다국적 친구들

쭈구리 승!

by 낭시댁 2023. 2. 6.

나는 요즘 최고급 레벨인 우리반의 수업을 부지런히 따라가고 있는 중이다.

수업내용이 심하게 어려운건 아닌데 항상 두명씩 짝을 지어서 자꾸 뭔가를 하라고 하시는데 일단 나는 프랑코폰 친구들의 악센트가 너무 낯설어서 몇번이나 다시 말해달라고 양해를 구해야 하고, 무엇보다 그들의 필기체를 알아보기가 너무나 어려워서 곤란한 순간들이 있다.  

수업 첫날의 주제는 "프랑스 유학" 이었다. 외국인 학생들이 프랑스로 많이 오는 이유, 프랑스 유학의 장점등에 대한 비교적 가벼운 주제였다.


"자 이제는 옆사람과 짝을 지어서, 외국인 학생들에게 프랑스로 유학을 오라는 내용의 전단지를 만들어 봅시다."

뭐 전단지는 이전 학기때도 한번씩 해봤기때문에 가벼운 마음으로 옆에 앉아있던 콩고 여학생과 함께 작업을 시작했다.

그녀는 24살이고 대학입학을 위해 프랑스에 왔는데 한달 늦게 들어오는 바람에 순전히 비자 목적으로 어학당에 온거라고 했다. 쉬는시간에 나는 이미 그녀와 친해지려고 바나나도 주고 대화를 나눈 상태였다. 

나는 필기가 느리니까 대신 좀 써달라고 그녀에게 양해를 구하며 펜을 내밀었고 그녀는 알겠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아... 근데 진짜 그녀의 글씨를 알아보기가 너무 어렵다... ㅡㅡ;

문제는 그것뿐이 아니었다. 내가 아무리 의견을 제시해도 그녀는 내가 하는 말은 하나도 반영하지않고 자기 마음가는대로만 쓰는것이었다.
자유 평등 박애는 왜...


자기가 쓰고 싶은것만 쓰다가도 내가 아무말을 안하면 또 볼펜을 탁탁 두드리며 다그쳤다. 😐

"또! 뭘 적을까? 응? 말을 좀 해봐!"

헐 무섭...

그래... 문화 차이일거야. 승부욕이 강해서 다른 팀보다 빨리 하고 싶어서 다그치는거겠지...😐
나는 열심히 마인드 컨트롤…
하지만 내가 의견을 낼때마다 마음에 안드는 표정으로 갸우뚱하는 그녀…😐

와중에 나는 그녀가 적은걸 빤히 쳐다보며 읽으려고 애썼다.

 

"왜, 뭐가 잘못 됐어?" 

"아니, 나는 사실 이런 글씨를 잘 읽지를 못해서... 여기 이 부분 뭐라고 쓴거야?"

"아, 내 글씨가 문제라고?"

그녀는 분명히 불쾌해하는 표정이었다.

"아니아니, 내가 문제야. 네 필기가 문제가 아니라고. 이렇게 적는 글씨에 익숙하지 못해서 나는 연습을 할 필요가 있어. 하지만 그건 시간이 걸리는 일이야."

"그럼 이제부터는 네가 써!"

그녀는 볼펜을 탁 소리나게 책상위에 세개 내려놨고 나를 쳐다보며 무섭게 ㅠ. ㅜ 말했다.

"글쓰는게 느리면 연습을 해야지. 자, 직접 쓰라고. 써야 늘거 아니야! 맨날 못한다고 하기 싫다고 하면 언제 늘겠어? 자 어서..."

엄마야... 24살이 나를 막 야단친다 😐

😐 자기가 쓰고싶은것만 다 써놓고 여기서 내가 뭘 더 쓸수 있나...  (글씨도 못알아보겠구만…😐)
내가 말없이 오만가지 생각에 잠겨있는 동안에도 그녀는 내 얼굴을 향해 무섭게 랩을 하고 있었다. 나는 못들은척 꿍하게 앉아있는 상황ㅋㅋ

 


"엇! 이제 끝날 시간 다됐네..."

"아, 그럼 집에서 써오려고?"

하… 

"...그래, 내꺼는 집에서 써올게."

정말 무서운 순간이었다... 😑

마지막에 그녀가 종이를 나한테 주길래 사진만 찍고 다시 돌려줬다. 왜 주는건지는 모르겠지만 ㅡㅡ;  


집에와서 나는 내가 생각했던대로 전단지를 간단하게 만들었다. 내 글씨... 언제쯤 예뻐지려나..  ㅡㅡ;

문법 실수가 좀 있음..


다음날 선생님께서는 완성된 전단지 6개를 앞에 늘어놓고 각자 가장 마음에 드는 전단지에 투표를 하라고 하셨다.

내 전단지가 1번이었는데 6명이나 손을 들어주었다. 나머지는 모두 1표씩-

프랑스에서는 숫자 1을 저렇게 쓴다. 처음 봤을때는 7인가 하고 헷갈렸음...

 

쭈구리 승!! 😀🤓🤓

 

뒤에 앉아있는 그녀를 의식하며 나 혼자 회심의 미소를 씨-익 ㅋ

 

무식아 엄마 칭찬해줘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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