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사는 이야기/DéFLE-Lorraine 다국적 친구들

프랑스 연금 개혁 반대 시위때문에 괜히 피해를 본 느낌...

by 낭시댁 2023. 2. 9.

어제였던 2월 7일 화요일.

아침 9시 수업이었는데, 유독 피곤하게 느껴졌지만 애써 일어나 샤워도 하고 단장을 모두 마쳤다. 학교에서 마실 뜨거운 차도 텀블러에 담고 간식까지 챙겨서 집을 딱 나서는 찰라, 문득 휴대폰을 들여다보게 되었다.

학교로부터 새로운 이메일이 하나 와있네. 뭔가 중요해 보이는 느낌...

[봉쥬- 캠퍼스의 blocage로 인해 오늘 모든 수업은 취소되었습니다. 상황에 변동이 생기는대로 공지하겠습니다.]



하... 이게 머선일이고... 일찍일어나서 머리도 감고 말렸건만 나한테 왜 이래...

그래도 집을 나서기전에 확인한게 어찌나 다행인지...


Blocage...? 학교에 못들어가게 막아놨다는건가... 시위구나... 된장!

지난달 31일에도 연금개혁에 반대하는 노조 연합들의 대대적인 시위가 있었다. 이날 낮에는 시내버스까지 전면중단되었고 장거리 통학하는 학생들은 등교를 하지 못했다. 수업중 창밖의 시끄러운 확성기 소리는 말도 못하고...

[연금제도 개혁은 이미 우리 부모님과 우리 조부모님들에게 영향을 끼치고 있다. 하지만 학생들인 우리에게도 영향이 있다. 수년간 공부하고 미래의 직업을 위해 훈련 받는 기간은 고려되지 않았고, 우리 대부분은 뒤늦게 사회생활에 뛰어든다. 64세에 은퇴하는걸 반대한다. 1월 31일 카르노 광장에서 여러분들을 기다리겠다. ]



시어머니께 메세지로 상황을 전달 드렸더니 어머님께서 연급 개혁 반대 파업이 확실하다고 하셨다.

[프랑스에 온 것을 환영한다.]

[그럼 대체 수업은 안해주겠지요...? 등록금 비싸게 내고 다니는 외국인 학생들만 피해자네요...]

[그러게말이다. 기차 파업하는 이기적인 사람들이랑 다를 바가 없어. 아무 잘못없는 시민들을 인질로 삼는 멍청이들이야.]


그나저나 9시 수업인데 이메일 도착시간이 8시 14분이다. 멀리서 오는 친구들은 이미 출발했으리라...

아니나 다를까, 카자흐스탄 친구가 잠시후에 황당한 목소리로 전화가 왔다.

"나는 아침에 이메일 안본단말이야. 학교에 도착하니까 건물들이 죄다 잠겨있는거야... 하아.. 아침에 몸이 안좋았는데 그래도 애써 운전해서 나왔더니, 진짜 화난다... 벤치에 혼자 멍하게 앉아있던 우크라이나 친구는 나보다 더 불쌍해. 기차로 1시간씩 통학하는데 오늘은 남편이 낭시로 출근하면서 아침 일찍 태워다줬대. 엄청 일찍 등교했다가 이제서야 이런 소식을 듣게 된거야. 파업때문에 집에 돌아가는 기차도 없고, 할수없이 저녁때 남편 퇴근할때까지 기다려야 된대... 이게 대체 무슨일이야? 나는 아무것도 이해가 안돼."

"우리 시어머니 말씀이, 학생 노조가 벌인일일거래. 연금개혁때문에... 사실 이 학생들이야 거의 공짜로 학교 다니니 손해볼게 없지. 교직원들도 일 안하니까 좋을거고. 비싼 등록금내고 다니는 우리만 피해자라는 생각이 드네. 학교 책임이 아니니 대체 수업도 안해준다고 하겠지..."

내 말에 황당해 하던 친구는 학교에다 당장 항의 이메일을 보냈고 오래지않아 답변을 받았다고 한다.

[이 상황은 노조의 시위활동에 의한 것이고 우리의 의지와는 상관이 없는 일입니다. 우리로서는 건물들에 진입할수 없다는 사실을 미리 예견할수도 없었으며 상황을 파악하자마자 최대한 빨리 공지한 것입니다.]

그 와중에도 그녀는 농담을 했다.

"정문은 평소처럼 열려있어서 그냥 들어갔는데 캠퍼스에서 노조학생들이 전단지를 나눠주고 있었어. 근데 나만 빼고 줘서 나는 못읽어봤어. 나는 이미 은퇴한 나이로 보였나봐.😭"

집에 다시 돌아갈 걱정에 한숨을 쉬던 그녀는 그래도 아직 웃음이 나오는가보다.

"건물이 죄다 잠겨있어서 우크라이나 친구는 계속 추운 벤치에 앉아있었대. 커페테리아나 학생회관도 다 잠겨있어... ㅠ.ㅠ 이제 그녀는 커피숍을 찾으러 간다네. 저녁까지 남편을 기다릴 만한 곳으로."

우크라이나 친구는 학교측에다 대체수업이나 환불을 요구하는 이메일을 보냈는데 학교측에서는 온라인으로 자습을 하라는 안내만 보내줬을 뿐이라고한다.


저녁에 이 소식을 들은 자서방은 나보다 더 황당해했다.

"프랑스는 진짜 이게 문제야.. 파업을 헌법으로 인정하고 있으니 너도나도 파업... 심지어 고등학교에도 노조가 있다니까? 어느정도선까지는 나도 필요성을 인정해. 하지만 이건 도가 지나치잖아. 헌법에도 파업의 기준은 명시돼 있어. 시민들에게 피해가 가면 안되고, 최소한의 서비스는 유지해야 하지. 무엇보다 48시간 이전에 미리 공지해야 하고."

"우리는 수업 시작 직전에 들었는데?"

"직장인들은 직장을 잃을까봐 미리 보고를 하겠지만 학생들은 겁날게 없는거지."

"너무 이기적이다. 자기네는 사명감을 가지고 정의로운 운동가라고 스스로 믿겠지만 우리같은 피해자 생각은 안하나봐..."

"이 blocage는 자신들의 목소리를 높이는 도구로 쓰인것 뿐이야. 내일 뉴스에 어디어디 캠퍼스가 blocage로 인해 수업이 취소되었다고 뉴스 기사가 뜨기를 원하는거지. 연금개혁에 이만큼 반대하고 있다는 메세지를 보내기 위해서."

저녁에 카자흐스탄 친구에게 한차례 더 전화가 왔다.

"나 라디오에서 완전 웃긴 소리 들었다? 라디오 앵커가 [여러분, 연금개혁 반대 시위를 위해 거리로 당장 나오세요!] 하면서 뭐라는줄 알아? [여름 휴가철이 오기전에는 시위를 모두 끝내야 합니다!] 라더라. 파업은 해도 휴가는 절대 양보하지 않겠다는거지. 진짜 웃겼어!"


아... 정말 웃기는 짬뽕...... ㅡㅡ;


피해는 봤는데 사과하는 이가 아무도 없네...





이전 포스팅 보러가기

외국인 며느리가 말을 배우더니 말대꾸도 늘었다.
프랑스 대학교 방과 후 활동에 빠지다.
프랑스 소도시 낭시에 K-pop 파티가 열렸다.
여름 끝자락- 시댁 테라스 향긋한 시드르 한잔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