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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이야기/프랑스 시월드

무뚝뚝한 프랑스 시아버지의 표현

by 낭시댁 2023. 3. 17.

오전에 시어머니로부터 문자메세지가 왔다. 
 
[피꺄에서 정말 맛있는 생선을 사왔는데 네것도 샀단다. 너 편할때 가지러 오렴.]
 
두번의 걸친 보쥬여행과 필리핀 친구네 음주가무 홈파티의 피로가 아직 좀 남아있긴 했지만 맛있는 생선이라고 하시니 바로 달려갔다.
 
[저 지금 갑니다!]
 

 
차를 마시며 시부모님께 보쥬여행과 친구들과의 파티에 대한 이야기들을 들려드렸다. 
 
"이번에 제 친구 알마가 프랑스내 대학 교수직 qualification을 획득했다고 하더라구요. 그거 엄청 어려운거래요. 제가 crous(대학식당)에서 파트타임으로 근무하게 되면 매일 그녀를 위해 생선을 남겨놓겠다고 약속했어요! 알마! 여기 생선있어!! 요거트 하나 더 줄까? 이렇게요 ㅋㅋㅋ 저희반 세네갈 친구가 말하길, 거기서 일하면 먹고 싶은것도 마음대로 먹을 수 있고, 집에 갈 때 요거트도 챙겨갈 수 있대요!" 
 
내 말에 시부모님 두분 다 빵 터지셨다. (사실 진심으로 대학식당 알바에 관심이 있음ㅋ) 
 
"저는 이번에 보쥬 여행중에 카린이랑도 몇번 얘기 했던건데요, 보쥬가 한국인들에게 그리 알려진 관광지는 아니거든요. 하지만 제 기준에서 너무 아름다운 곳이라 소그룹 관광상품을 개발하면 좋겠다 싶더라구요. 대도시나 유명한 여행지는 가이드 없이도 쉽게 갈 수 있잖아요. 낭시 올드타운에 들렀다가, 보쥬 산장에서 묵으면서 호수 피크닉도 가고, 등산도 하고, 파티마네 마을 농장에 들러서 유기농 제품들도 구경하고요... 저처럼 이런 여행을 더 좋아할 사람들이 꽤 많을것 같아요." 
 
 
"미슈, 우리 얘 좀 자주 데리고 다녀야겠어요. 프랑스에 낭시나 보쥬보다 좋은데가 얼마나 많은데... 가만.. (휴대폰으로 날짜를 확인하시더니) 너 5월 중순에 우리 따라 뚜르에 다녀오자. 5일간 있을건데 그때 수업이 있어도 빠지고 가는게 좋겠다. 파리에 살던 마리네 가족이 뚜르로 이사했잖니. 그집에서 묵으면서 여기저기 구경다닐거야. 너도 분명 마음에 들거야." 
 
 
"ㅋㅋㅋ 네 꼭 따라갈게요. 근데 뚜르는 알려진 큰 도시잖아요. 저는 퐁타무쏭에 갔을때도 너무 좋았어요. 바로 이게 진정한 프랑스구나 싶은 분위기요! 알려진 관광지에서는 절대 느낄 수 없는 정취였거든요." 
 
 
내 말에 아버님께서 묵직하게 한마디 하셨다. 
 
 
"나쁜 생각은 아닌것 같아. 개인 사업자로 등록해서... 소그룹으로..." 
 
 
"자서방은 안된대요. 대부분 프랑스내 외국인 게스트하우스도 불법으로 운영되는데 이유가 합법으로 하기엔 세금이나 따라야 할 코드가 너무 많아 흑자를 보기가 어렵다는거죠. 그럴바에야 개인사업자 보다는 여행사에 취업하라는거죠... 혼자 운영하기엔 책임과 리스크가 너무 크다구요."

 
"변두리에 있는 전원주택을 빌려서... 아직 운전은 네가 서투니까... 그리고... 음..." 
 
이제 시부모님께서는 내 사업구상에 대해 진지하게 의논을 시작하셨다.

"실비한테 상담해보는게 좋겠군..." 
 
"참 그렇지! 그녀라면 도와줄거야. 그녀는 은퇴하고 나서 주변 사람들에게 다양한 조언을 해 주고 있단다. 인맥도 넓고..." 
 
그때 마침 어머님의 휴대폰이 울렸다.

"오! 실비네!" 

참 기막힌 타이밍이었다.
 
"...그건 그렇고... 내 며느리가 오늘 멋진 아이디어를 냈는데 말이야..." 
 
아... 설마 일이 커지는건 아니겠지... 우리 어머님 추진력을 내가 과소평가하고 있었다... 그냥 해본 말인데... 
 

 
통화가 끝난후 내가 말했다.
 
"그분 목소리가 젊으신데요?" 

"은퇴했는데 여전히 쌩쌩하고 멋져. 그래서 우리 미슈가 실비를 그렇게 좋아하는거지." 

우리 시아버지 갑자기 웁! 하시며 커피 뿜으실 뻔 했다. 보기 드물게 빵터지셨다🤣🤣

"그분 엄청 예쁘신가봐요! 아버님 저렇게 웃으시는거 처음 봐요!" 

울 시엄니, 예상치못하신 아버님의 반응에 같이 웃으시며 놀리셨다.

"여보, 이해해요. 예쁘지 실비.. 나도 실비 좋아.. ㅎㅎㅎ"  

"아빠가 환하게 웃으신다..."
 
 

"이 생선은 안에 소스까지 들어있는거니까 뜨거운물에 담궜다가 그대로 먹으면 돼. 정말 맛있어! 우리는 또 사먹으면 되니까 두개 다 네가 가져 가거라." 

생선을 받아서 나오는데, 오늘은 아버님까지 배웅을 해 주시며 따라 나오셨다. 
 
"오늘 방문해 주어서 고맙구나."
 
"저 자주 안온다고 그런 말씀 하시는거 아니지요?" 
 
"아니야 아니야. 오늘 아침 네가 가져다준 신선한 공기가 나를 기분 좋게 해줬어. 진심으로 고맙다고 말하는거야." 

무뚝뚝하신 아버님의 섬세한 표현에 어머님도 놀래셨다. 

"오 미슈! 정말 자상도하셔!!"
 
"아버님 제가 더 감사합니다. 생선까지 얻어가는 걸요ㅎㅎ"  
 
나도 표현은 제대로 못했지만 내심 아버님의 표현에 엄청 감동받았다. 집으로 걸어오는 내내 심장이 몽글몽글해지는 기분이랄까!  
 
(오늘따라 아버님이 많이 웃기는 하셨다. 물론 어머님도 원인 제공을 크게 한번 하셨지만 ㅎㅎㅎ) 

어머님이 주신 생선은 말씀하신대로 뜨거운 물에 30분간 해동한 후 밥위에 부어서 브로콜리랑 맛있게 먹었다. 나중엔 김치를 꺼냈지만-

 
저녁때 자서방에게 오늘 아버님께 너무 감동받았다고 했더니 자서방은 별로 놀래지 않은 얼굴로 이렇게 말했다. 
 
"예전에는 아빠가 와이프 앞에서, 내가 본 적 없는 자상한 모습을 보이셔서 많이 놀랬었는데 이제는 놀랍지가 않네. 한가지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건 말이야, 아빠는 우리 형제들한테는 그런 모습을 보인적이 없으시다는 점이지. 우리가 이미 알고 있듯이 우리 부모님께 너는 그냥 딸이야."
 
아 몽글몽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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