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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이야기/DéFLE-Lorraine 다국적 친구들

여행지에서의 반가운 서프라이즈

by 낭시댁 2023. 3. 15.

 
 
나는 보쥬 2박 3일 여행에서 돌아오자마자 이틀후에 나는 다시 보쥬 당일여행을 떠나게 되었다. 
 
반친구들과 다녀온 것인데, 카린의 초대를 받기 몇일전에 결정되었던 것이다. 보쥬에 미리 여행을 가 있는 동안 친구들에게 사진을 보내줬더니 그녀들은 오히려 잘 되었다며, 자기들 중 누구도 보쥬에 대해 아는 바가 없으니 나더러 가이드를 하면 되겠다고 했다. 나 길치라서... 자신이 없어... 

막판에 콜롬비아 친구가 나타나지 않아 결국 아시아소녀들 5인이 알마가 운전하는 차를 타고 여행길에 올랐다.
한국, 필리핀, 카자흐스탄, 홍콩, 일본- 국적도 제각각이다.
 
친구들은 정말 아무 계획없이 나만 믿고 따라나섰다. 차안에서 나는 머릿속으로 동선이며 갖가지 계획을 세워보았다. 비록 내가 길치긴 하지만... 
 
날씨 흐려도 흥이 넘치는 친구들과 함께라 마냥 즐거웠다. 

내 가이드에 따라(풉ㅋ) 시내에 주차를 한 후 우리는 우선 점심식사를 위해 레스토랑을 찾기로 했다. 
 
그런데 정말 세상 좁기도 하지... 시내 한복판에서 우리는 예상치 못한 지인을 마주치게 된 것이다! 
 
횡단보도를 건너는데 웬 할머니 한분이 내 옆에 바짝 다가오더니 "왜이리 빨리 걷는거요?!" 라고 소리를 치는 것이었다. 내가 황당해서 돌아보니 울 쌤!! 꺅!!! 내가 비명을 지르며 반가워했더니 앞서 걷던 친구들도 놀래서 다시 돌아왔다. 그분은 내가 반을 바꾸기 전에 우리반 선생님이셨는데, 그 옆에는 지난학기때 우리에게 델프 강의를 해 주신 또다른 선생님도 함께 계셨다. 두분다 연세가 있으신데 농담도 잘하시고 유쾌하셔서 (살짝 우리 시어머니 스타일이랄까ㅋ) 내가 너무 좋아하는 분들이었다. 
 
우리처럼 보쥬에 지금 막 도착하셨는데 점심식사할 곳을 찾고 계시다길래 우리와 같이 가시자고 제안했더니 흔쾌히 승낙하셨다. 와 이런 우연이 다 있나!! 
 

멀리 갈 것 없이 근처에서 맛있는 냄새를 풍기며 그릴을 굽고 있는 레스토랑으로 바로 들어갔다.  

 
"이곳 보쥬에 처음 왔는데 너무 예뻐요. 만화 알프스의 하이디에서 본 듯한 풍경이예요." 
 
21살인 일본 소녀의 말에 우리는 전원 공감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20대부터 60대까지 전원이 하이디를 알고 있는 것이었다. 
 
내친김에 나는 일본 소녀에게 혹시 플란다스의 개를 아냐고 물었는데 그녀는 "나는 잘 모르지만 우리 엄마는 아실 것 같아." 라고 대답해서 내가 뒷목을 살짝 잡는 시늉을 했다. 세소녀가 웃을때 내 또래인 알마가 나를 다독여주었는데 그 모습을 보신 두분 선생님께서는 본인들 앞에서 나이얘기 하지 말라며 깔끔하게 서열정리를 끝내셨다. 네 언니ㅋ
 
식전주로 내가 빠나셰를 주문했더니 선생님들을 포함해서 전원이 똑같은걸로 주문했다. 가볍게 식전주로 마시기에 이만한게 없는것 같다. (선생님말씀으로는 여름에 주로 마시는 음료라고 하셨다.) 
 
"건배를 할때는 상대방의 눈을 이렇게 적극적으로 맞춰야 하는거예요." 
 
우리는 선생님을 따라 눈을 희번뜩하게 치켜뜬채 잔을 차례로 부딪히고 살벌하게 한명한명 시선을 교환하며 깔깔 웃었다. 정말로 유쾌하신 분들이시다! 
 

메인 메뉴로 한국, 홍콩, 일본인은 버프 브루기뇽(사실 이름은 달랐는데 맛은 딱 그거였다)을 시켰고, 나머지는 모두 피쉬앤칩스를 주문했다. 대륙별로 뭔가 식문화가 갈리는 순간이었다. (국물 좋아하는 동북아ㅋ)
 
 

"불법 복제 및 불펌 금지! 단호하게 대응 하겠습니다. "

 
 
 

 
식사 후 우리는 선생님들과 헤어졌는데 길에서 한번 이상 또 마주칠게 뻔하므로 "이따봐요" 라는 인삿말로 웃으며 잠시 헤어졌다. (실제 시내에서 두번을 더 마주쳤는데 알고보니 우리 동선과 순서만 다른채 정확히 일치했던 것이다.)
 
 
원래 우리는 산속에 눈이 남아있는 호수 주변을 산책하고 싶었는데 세 소녀(필,홍,일)들의 복장이 너무 불량이라ㅋㅋ (본인들에게는 가장 걷기 편한 복장이라고 함) 우리는 바로 근처에 있는 제하흐메흐 호수로 갔다.   

만사 느긋하게 뒤쳐져서 따라오는 세 소녀들과 달리 알마는 혼자서 산을 정복하러 나온 야심찬 복장이라 네사람은 도저히 일행으로 느껴지지 않았다. 
 
"항상 앞장서서 걷는 알마는 혼자 등산 나온 사람, 너희 셋은 그냥 관광객들. 그리고 그 중간에 있는 나는 가이드 겸 사진사."
 
내 말에 친구들이 빵터졌다. 너무나 딱 맞아 떨어지는 표현이었던 것이다.   

아 이틀만에 이곳을 다시 찾다니ㅎㅎㅎ 
 
친구들은 내 안내에 따라 걸으며 내가 이곳 지리를 참 잘안다고 칭찬했다. 나 그저께 여기 다녀갔다고 ㅋ

호수는 여전히 아름다웠고 함께 있는 일행들이 바뀌니 여행의 느낌도 180도 다르게 느껴졌다. 

호숫가 나무도 괜히 멋지게 보였다. 

역시 맨 앞에서 파워당당하게 걸어가는 알마와 그 뒤를 따라가는 세 관광객 소녀들. 

특히 필리핀 친구의 신발은 유독 아슬아슬해 보여서 내가 자꾸 놀렸다. 
 
"네가 미끄러져 넘어진다면 나는 그 장면을 놓치지 않고 찍을거야. 그래서 나는 지금 이렇게 네 뒤를 걷고 있는거지.🤣🤣" 
 
그녀는 몇번 발이 미끄러지긴 했지만 다행히 넘어지지는 않았다. (워낙 친해서 서로 농담을 많이 한다.)
 

어설픈 가이드 역할을 하는 와중에도 나는 열심히 모두에게 인생사진을 찍어주었다. 모두들 내 사진에 흡족해 하며 고마워했다. 
 
"응. 한장에 1유로." 
 
 

한시간에 걸친 산책을 끝냈을때 알마가 무언가를 발견하고는 혼자 웃음이 빵 터졌는데, 그 이유는 바로- 

과로로 지친 귀신이었다. 🤣🤣🤣
 
세 소녀도 저 귀신 못지않게 지친 표정이었지만 알마는 "한바퀴 더?"를 외치며 혼자서 쌩쌩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우리는 시내로 다시 돌아왔다가 향긋한 뱅쇼향에 이끌려 가게로 다가갔다.  

빨간 옷을 입은 친절한 사장님께서는 나에게 "시식하게 조금 드릴까요?" 라고 제안하셨고 나는 화이드와인 뱅쇼를 맛보고 싶다고 대답했다. 인심좋은 사장님은 거의 반잔을 따라 주셨고, 우리는 한모금씩 같이 맛을 보았다.  
 
"화이트와인이랑 레드와인이랑 달기는 똑같나요?" 
 
"네 둘다 똑같이 달아요. 화이트와인에는 미라벨이 들어가고 레드와인에는 오렌지를 넣는답니다." 
 
"저는 화이트와인으로 주세요." 
 
"저두요." 
 
"저는 레드와인 뱅쇼루요." 
 
친절한 사장님의 매력에 빠진 우리는 모두 한잔씩 주문해서 빈 자리에 앉았다. (아직도 기운이 팔팔한 알마는 혼자 서 있겠다고 말했지만 결국 내가 의자에 앉혔다.ㅎㅎ) 

흐린날씨도 우리의 기분을 가라앉히지 못했다.

평소엔 다들 각자 조용한 아시아 여성들인데 한데 모아놓으니 흥이 폭발한다. 

잠시후 친절한 사장님께서 우리에게 오시더니 "사진 찍어 드릴까요?" 라고 먼저 제안해 주셨다. 우리 모습이 좋아보이셨나보다. 총 세장을 찍어 주셨는데, 세장 모두 그분의 손가락이 크게 찍혀있어서 또 한번 우리는 빵 터졌다. 
 
"다행히 얼굴은 하나도 안가리셨어 ㅋㅋㅋ" 
 

뱅쇼를 마신 후 내가 친구들을 데려간 곳은 특산품 가게였다. 
 
이곳에서 내가 친구들에게 적극적으로 소개한 제품은 바로 이것- 

"le gueule de bois는 숙취라는 뜻이지. 숙취나 멀미등으로 속이 안좋을때 먹으면 도움이 되는 사탕이야. (술을 좋아하는) 너희들에게 아주 유용한 제품이 아니겠니." 
 
내가 아는척을 하며 하나 집어들었더니 필리핀, 홍콩 친구도 따라 집었다. 
 
(사실 그저께 보쥬에서 돌아오던 날 차 멀미가 좀 났었는데 그때 카린이 준 이 사탕을 얻어먹고 도움을 받아서 알게된 것이다.)
 
 
그다음에 나는 친구들을 야외시장으로 데려갔다. (알차게 가이드함ㅋ) 

시장 무대 앞에서는 로데오 대회가 한창 진행되고 있었는데 진행자의 박진감 넘치는 말투 때문에 나는 마치 월미도 디스코팡팡을 구경하는 느낌이었다. 

이 사랑스러운 꼬마소녀도 겁없이 로데오에 도전했다. 
 
바로 옆에서는 맛있는 냄새가 풍겨오고 있었는데 생각없이 맨앞에 서서 구경하던 우리는 얼떨결에 공짜로 하나씩 받아먹었다ㅎㅎ

알고보니 레스토랑 홍보차 나온 가족인듯 했다. 

달콤한 바닐라크림에 블루베리와 고소하게 튀긴 빵이 담겨있었는데 알마는 엄지를 치켜세우며 엄청 맛있다고 감탄했다.
쎄봉!! 쎄트헤봉!

어느새 시간은 오후 5시반을 가리키고 있었고, 우리는 이제 낭시를 향해 차를 돌렸다. 

오는 내내 길에는 안개가 자욱했고 빗방울도 조금씩 떨어지면서 몽환적인 장면이 연출되었다. 
 
하도 떠들었더니 그새 배가 꺼졌는지 우리는 차안에서 과자와 과일을 나눠먹으며 계속해서 수다를 떨었다. 
 
"우리집에 가서 아페로하자! 내 남친이 지금 준비하고 있대." 
 
길고 긴 하루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아니, 그 다음에 이어진 필리핀 친구의 한마디에 오늘 하루는 이제부터 시작이라는 걸 느꼈다. 
 
"우리집에 가라오케도 있다구!ㅋㅋ" 
 
 
 
 
 
다음편에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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