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사는 이야기/DéFLE-Lorraine 다국적 친구들

프랑스에도 마을 빨래터가 있었다.

by 낭시댁 2022. 8. 23.

보쥬여행기, 지난 포스팅에 이어집니다.
프랑스 친구의 고향집에서 맞는 아침 풍경

아침식사를 마친 후 나는 샤워를 하고나서 카린을 따라 에피날 Épinal 시내투어에 나섰다.

욕실 천창으로 햇빛이 아늑하게 쏟아졌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에피날 시청.

이곳에서 사진을 찍을때 앞에 한 아주머니께서 지나가고 계셨는데, 뒤늦게 카메라를 보시더니 너무너무 미안하다며 사과를 해 오셨다. 낯선 사람이 카메라를 들이밀면 오히려 불쾌하게 느껴지기 마련인데... 내가 오히려 민망한 표정으로 괜찮다고 말씀드렸다.

저 강너머에 있는 구역은 원래 섬이었다고 한다.

"여학교라고 써져있네?"

"아, 오래전 프랑스에서는 남학생 여학생의 학교가 분리돼 있었거든. 저건 그냥 글씨만 남겨놓은거야."

여중과 여고를 졸업한 나는 학교다닐때 남녀공학이 아니어서 오히려 재미있는 일들이 많았다고 말해주었다.

여긴 소 물주는덴가...?

"여긴 옛날 빨래터야. 더이상 사용되진 않지만 관광목적으로 남겨둔거지."

"와... 프랑스에도 마을 빨래터가 있었구나! 내가 어릴적에도 우리마을에 빨래터가 있었어. 개울이었는데, 학교 마치고 돌아올때면 항상 우리엄마가 안계신지 꼭 확인했어. 엄마가 계시면 개울에 앉아서 놀다가 같이 집에 걸어갔지. 마을 아줌마들이 여럿이 모이니까 다들 남편흉 보고 웃고 그랬어ㅋ"

[밤 10시 이후에는 빨래 금지]라고 천장에 써져있다.

마치 그 옛날 이 동네 아낙들의 빨래하는 소리가 들려오는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좀더 걷다보니 노천까페들이 늘어선 번화가가 나왔다.
휴가철인데다 날씨도 너무 좋아서 사람들의 표정마다 여유가 느껴졌다.

오래된 성당이 보이는 골목길로 들어섰다.

카톨릭신자는 아니지만 성당에 들어오면 항상 뭔가 성스러운 기운이 느껴진다.

 

성당을 빠져나왔을때 작은 골목에서 발견한 안내문.

이 구역 저택들은 13세기부터 정착한 신실한 유럽 귀족가문들인데 수녀들이기도 했던 그들이 이곳에서 저택을 짓고 신실하게 살았다고 한다. 집집마다 해당 귀족의 가문 문장이 정면에 붙어있었다.

중세시대 귀족 수녀들을 풍자하는 그림이 벽화로 그려져있었다.

이것은 바로 에피날 성벽이다. 우리가 서있는 공간이 바로 성의 내부이다.

쌩뚱맞게도 중국타워가 있다는 안내판을 보고 따라갔다.

이런 좁을 골목들은 그 옛날 특유의 모습이 그대로 남아있다고 한다. 아침이면 창밖으로 요강을 비우기도 했다며... ㅋ

바로 이것이 중국 타워이다. 오리엔탈 문화가 유행이던 시기에 지어졌다고 한다. 뒷쪽 절벽 지형을 그대로 이용해서 지어졌다.

내부에는 별거 없다. 그냥 뒤편 산으로 올라가는 회전계단일 뿐-

올라갔더니 에피날 시내의 전경이 시원하게 펼쳐졌다. 올라오길 정말 잘했다!!

이 공원은 두 구역으로 나누어져있는데, 한쪽은 동물과 레져공원, 또 한쪽은 역사공원-

우리는 역사공원으로 발길을 돌렸다.

언덕위에 성모양 문장이 그려진 빨간 깃발이 휘날리고 있었다.

나에게 마을을 소개시켜주느라 카린이 고생이 많았구나..

에피날 꼭대기에 있던 성은 이제 다 허물어지고 터만 이렇게 남아있다.

시원한 시내 전경을 두눈에 꼭꼭 담고 다시 내려왔다.

역사과목은 어릴적에도 좋아했지만 커서 직접 여행을 다니며 이것저것 구경하다보니 역사에 대한 시각이 바뀌게 된 것 같다. 학문으로서의 역사가 아니라, 실제 이 곳에서 살았던 그 시대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을 엿보고 머릿속에 장면을 떠올려볼 수 있는 이러한 경험들이 이제는 그저 즐겁다.

이곳은 한때 분수대였던것 같다. 커다란 나무그늘아래 마을사람들이 모이곤 했을테지.

우리는 시원한 숲길을 통해 산을 다시 내려오면서 수다를 떨었다.

이 마을 주민들의 그 옛날 생활상을 내 머릿속에 상상할 수 있도록 도와준 카린은 최고의 가이드였다. 👍👍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