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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이야기/프랑스 살이

프랑스에서 이사하기 2탄

by 낭시댁 2023. 10. 4.

이삿짐을 싸다보니 우리집에 이런게 있었나 하는 물건들이 꽤 많았다. 사거나 얻어다놓고도 그 존재를 까맣고 잊고 오랫동안 방치되어있었던 물건들. 이 참에 안쓰는 물건들을 과감하게 정리할수 있으니 그나마 힘든 이사의 작은 장점이었다.  
 
새집 주방에 빌트인 냉장고가 있어서 (사이즈가 그리 크지 않다는게 단점이기는 하지만) 기존 냉장고에 있던 음식들만 차에 실어다 새 냉장고에 바로 수납을 했다. 기존 냉장고에는 직원들과 자서방을 위해 생수를 4병을 남겨두었다.
 
새집에 1차 이삿짐을 내려놓고 직원들과 자서방이 다른 짐을 가지러 2차로 돌아갔을때 나는 새집에 혼자 남았다. 점심시간이 다돼서 배가 고픈데 다행히 자서방이 전날 저녁에 볶음면을 다 먹지 않고 남겨놨네ㅎㅎㅎ
데우지도 않고 대충 포크를 찾아(이상자 저상자 한참을 뒤져야만 했다) 대충 혼자 끼니를 때웠다. 자서방은 원래 점심을 안먹어서 상관이 없는데 다른 직원들은 어쩌려나... 
 
한참 후 나머지 큰 가구들을 실은 트럭이 돌아왔다. 
 
며칠전 내가 구운 오트밀 초콜렛쿠키를 꺼내 바쁘게 오가는 직원들에게 일일이 권해보았다. 
 
"쿠키 드실래요? 제가 구운거예요."
 
"고맙습니다 마담." 
 
"아주 맛있어요! 진짜 직접 구우신거예요?" 
 
자서방은 그다지 잘 안먹던데 이 사람들이 잘 먹어주니 너무 뿌듯했다. 냉동실에 넣어놨더니 초콜렛이 더 바삭해져서 더 맛있어졌다. 

쿠키봉지를 아예 입구근처에 올려뒀더니 직원들이 오며가며 하나씩 계속 꺼내먹으며 맛있다고 말했다. 
 
어린 청년은 거의 말이 없었고 나머지 두 직원은 아주 살가웠다. 그 중 한 남자는 우리집에 고양이 물건들이 많은것을 보고는 자기도 고양이를 키운다며 우리 고양이에 대해 이것저것 물어보며 웃었다. 역시 프랑스에는 애묘인이 정말 많다. 그리고 고양이 얘기하는걸 참 좋아한다. 나도 이제 그 중 한사람이다ㅎ
 

쿠키는 빠르게 줄어들었고 급기야 마지막 3개가 남았을때 자서방이 쿠키봉지를 치워버렸다. 
 
"당신은 그거 잘 먹지도 않잖아! 저 사람들 배고플텐데!" 
 
"남은거는 내가 먹을거야. 아껴먹은거라고... 그리고 저 사람들은 점심 먹었어. 그래서 늦게온거라고..." 
 
아 다행히도 점심은 미리 싸와서 먹은 모양이다. 혹시 우리 남편 혼자 옆에서 그들이 식사하는걸 구경하고 있었으면 불쌍해서 어쩌나 싶었는데 다행히 직원들은 밖에서 먹었단다. 대신 자서방은 집안에 가구가 다 빠져서 앉을곳이 전혀 없어 창가에 멍하게 서서 기다렸다고한다. 그나저나 쿠키를 아껴먹고 있는건줄은 몰랐는데...? 그냥 다른사람들이 맛있게 먹으니까 갑자기 아까워진게 아닌지 ㅡㅡ; 
 

 

발코니가 3개나 있어서 너무 좋다! 드디어 나도 발코니를 제대로 활용할수 있게되었구나. 나 맨날맨날 여기서 커피마시고 점심먹어야징! 

창문으로 주변을 둘러보니 앞쪽과 뒷쪽에 수영장이 있는 집이 각각 한집씩 보였다. 기온이 떨어진 요즘에는 플라스틱으로 덮어둔 모양이었다.  

 

집주인이 발코니에 화분을 하나 두고 갔다. 꽃을 보니 기분이 좋아진다. 깻잎과 부추로 모든 화분을 교체하려고 했는데 한번더 생각해봐야겠다. 

서랍장에서 집주인이 두고간 철제바구니를 발견했다. 과일바구니라고 생각했는데 자서방 말이 샐러드를 씻어넣고 빙빙 돌려서 물기를 빼는 용도라고 한다. 집안에 물기를 막 뿌리느니 그냥 과일 바구니로 요긴하게 사용할 생각이다. 

직원들은 돌아가면서 휴식을 취하는것 같았다. 세명이서 짐을 옮기다가 한명만 띄엄띄엄 올라오길래 내려다보니 트럭에 앉아서 쉬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하긴 이런 일은 정말 체력소모가 엄청날 것 같다. 

 

가장 어린 직원은 침대매트리스를 혼자서 조립했다. 성실히 일한 청년에게는 미안한 말이지만 그가 나간후에도 그의 진한 땀냄새가 방안에 꽤 오래 베어있었다. 창문을 열려고 보니 이미 열려있었네... 그런데도... 
 

소파와 티비설치까지 모두 마치고 직원들은 저녁 7시가 넘어서야 돌아갔다. 거의 12시간이 걸린것이다! 

이전 집에 쌓여있던 상자들이 이제 새집을 꽉 채우고 쌓여있다. 
 
짐은 직원들이 다 옮겼는데 우리는 왜이리 힘든걸까 ㅡㅡ; 우리는 소파에 뻗어버렸다. 

우리 초식남 남편은 양쪽 무릎에 타박상과 멍이 크게 생겼다. 가구에 쓸렸단다. 정작 이삿짐 센터 직원들은 멀쩡해보이던데...
 

 

한국이었으면 이런날 간단하게 짜장면을 시켜먹었을텐데... 나 진짜 짜장면 좋아하는데... ㅠ.ㅠ

프랑스에서는 그런 호사를 누릴수 없으니 오늘도 볶음면을 후다닥 만들었다. (피자를 시켜도 세월아 네월아 기다려야 할테니 직접 요리하는게 제일 빠르다.) 
 

막상 만들고나니 짜장면보다 맛있네ㅎㅎ 

사실 자서방은 요리하지말라고 빵으로 간단하게 샌드위치를 만들어먹으면 된다고 했지만 내가 대충먹는게 싫었음... 이런날일수록 스스로를 기쁘게 해줘야징. (우리엄마는 내가 이해가지 않는다고 하신다ㅎㅎ)
 

걱정했던것 보다 빠르게 적응하는듯한 무스카델

무식아 이제부터 여기가 우리집이야. 네 짐은 네가 정리하도록 해... 너 자꾸 버릇나빠지는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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