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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이야기/프랑스 살이

프랑스 시부모님을 따라서 영화관에 다녀왔다.

by 낭시댁 2023. 11.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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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시부모님과 함께 있으면 배고플 틈이 없다.
 
생각보다 상영시간이 꽤 남은 탓에 우리는 근처 커피숍으로 갔다. 
 
그런데 갑자기 비가 쏟아지네!? 
 
실내에는 자리가 없어서 파라솔이 쳐진 테라스에 셋이 옹기종기 앉아서 커피를 주문했다. 
 

나는 디카페인 까페올레- 
 
비오는 야외에서 뜨거운 커피를 마시니 또 운치가 좋군. 
 
하나 남겨서 가방에 넣어둔 샌드위치를 꺼내서 조심조심 반땅을 한 후 아버님 앞으로 밀어드렸다. 
 
"고맙구나. 하지만 나는 생각이 없는걸..." 
 
"이거 엄청 맛있어요. 아버님 연어 좋아하시잖아요. 저 벌써 한개 먹었어요." 
 
 
그때 한 중년남자가 비를 피해 급하게 우리 옆테이블로 뛰어들어왔다. 그 사람은 로제와인을 주문했는데 저렇게 예쁜 병에 담겨서 잔과 함께 나왔다. 

우리 어머님은 갑자기 무료하셨던지 아버님을 향해 농담을 하셨다. 
 
"혹시 담배 가진거 없어요?" 
 
그런데 옆 테이블에 서있던 아저씨가 대신 대답하셨다. 말을 걸어줘서 반갑다는 듯 환한 표정으로 "안타깝지만 없네요." 라고. 
 
하지만 빗소리때문에 어머님은 듣지를 못하셨고 머쓱해하시는 그 아저씨를 향해 내가 대신 웃어드렸다. (우리 시부모님은 두분 모두 담배를 안하신다.)
 
어머님은 영화관에서 가져온 팜플렛을 꺼내 오늘 우리가 볼 영화를 소개해 주셨다. 

"제목은 une année difficile(어려운 한해)이란다. 빚이 많은 두 남자가 공짜 맥주를 마시려고 갔다가 환경단체 활동을 하게되는 이야기라고 하는구나."
 

상영시간이 가까워오자 걸음이 느린 아버님께서는 먼저 일어나서 극장을 향해 출발하셨고 내가 드렸던 샌드위치는 다시 고대로 돌려주셨다. 그래서 나는 급하게 마저 먹어치웠다. 남기면 아까우니까. 
 
어머님, 같이가요!! 
 
빗방울이 굵지는 않았지만 가방에서 우산을 꺼내 펼친 후 어머님의 팔짱을 꼈다. 어머님은 우산이 필요없다고 하셨지만 내가 팔짱을 놔드리지 않았다. 
 
잠시 후 아버님께서 저만치 앞에 걸어가시는 모습이 보였다. 어머님을 버리고(?) 아버님이랑 우산을 쓴다면 어머님이 삐치실까 잠시 고민하는 사이에 우리 세사람은 극장에 다함께 도착했다.  

 
 
"오, 이거 한국영화구나!' 

오잉! 
 
어머님께서는 안내책자를 살피시더니 11월 8일 개봉이라고 알려주셨다. 프랑스에서 한국영화를 보게되는구나! 
 

 
 
"영화표 10개를 한번에 사면 60유로밖에 안하거든. 큰 영화관에 비하면 반값도 안하는 가격이지. 상영되는 영화도 별 차이가 없어. 이렇게 한번에 사뒀다가 재미있는 영화가 나오면 친구들을 초대할 수도 있으니 좋아." 
 
오늘은 내가 초대를 받았다.
 

 
우리가 들어간 상영관의 이름은 미야자키였다. 
 
그런데 상영관 문을 열었을때 칠흙같이 어두워서 우리는 당황했다. 희미한 불빛이 단 한 점도 없었고 완전한 암흑이었다. 
앞서 들어가시는 시부모님을 위해 서둘러서 휴대폰을 꺼내고 있었는데 상영관 맨 뒷자리에 앉아있던 누군가가 친절하게도 휴대폰을 켜서 우리 앞을 밝혀 주셨다. 살가운 농담과 함께.
 
“호호 전기세를 안냈나봐요.”
 
"호호 그런가봐요. 참 친절하시네요."


암흑같은 상영관에는 이제, 우리에게 불을 비춰주신 친절한 할머니와 우리, 네명이 앉아 있었다. 
 
"거봐 내가 이 시간에는 사람이 없을거라고 했지." 

속닥속닥 

"전기세를 아껴서 영화표도 싼가봐요."  

"이럴줄알았음 차라리 화장실에 더 있다 올 걸. 거기는 환하게 밝았는데!"
 
속닥거리다가 어머님의 농담에 웃음이 풉하고 터졌다.  

"저한테서 연어냄새나는거 같아요." 

"뭐라고?" 

"저한테서 생선냄새난다고요." 

"생선냄새난대." 
 
어머님이 계속 못알아듣고 계시니 우리 사이에 조용히 앉아계시던 아버님이 대뜸 통역을 해 주셨다. (생선 냄새 안난다고 한마디 해 주실지 알았는데...)
 
"누가?"
 
"저요 저! 저한테서 연어냄새난다고요." 
 
아 답답한 마음에 나도 모르게 목소리가 높아져버렸네 ㅡㅡ;;
 
 
갑자기 저쪽 어딘가에서 어느 여성의 작은 비명 소리가 들려왔다. 

"오 마담 죄송합니다. 아무것도 안보여서요..."  
 
암흑속에 목소리만 들려오는 상황이 묘하게 재미있었다. 
 

 
잠시 후 스크린이 켜졌다. 
 
"거봐, 나이든 사람들 뿐이라고 했지. 호호" 
 
어머님께서 앞에 앉은 관객들의 뒷통수들을 가리키시며 소곤거리셨다. 😂

 
영화는 그냥 가볍게 보기 좋은 코메디였다. 대사들을 전부다는 이해하지 못했지만 그래도 예전에 비해서는 꽤 많이 알아들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차안에서 우리는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프랑스에는 환경운동가들에 대한 인식이 어떤가요? 저는 좀 이해가 안되는게, 영화 후반부에서 환경운동가들이 공항 활주로를 막고 이륙하는 비행기를 중단시키는 장면이 있었잖아요. 그 과정에서 크게 다치는 사람도 있었고요.  마치 큰 감동을 유도하는 듯한 연출이었는데, 실상은 큰 피해를 유발하는 상황 아닌가요? 비행기 이륙을 중단시켜서 환경에 도움되는것도 없을거고... 그 비행기는 어차피 다시 이륙할거잖아요?" 
 
"맞아. 요즘 프랑스 환경운동가들이 점점 과격하고 우스꽝스러워지는 것 같아. 그들은 대단한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우리집앞에 도착하는 순간까지 나는 시부모님과 너무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배불러서 저녁 안먹어도 되겠다ㅋ
 
오늘도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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