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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이야기/프랑스 살이

조금은 황당한 프랑스 10년 체류증 인터뷰 후기

by 낭시댁 2023. 3. 27.

며칠전에 우편물을 하나 받았는데, 내 체류증 심사를 위해 사흘후에 시청으로 오라는 꽁보꺄시옹이었다. 
이렇게 중요한 내용을 일반 우편으로 그것도 (주말포함)사흘전에 통보를 하다니... 
 
그냥 기다리고 있다가 체류증을 찾으러 가면 되는 건줄 알았는데 갑자기 나오라고 하니 긴장이 되기 시작했다.  
 
하긴 경시청에서 일이 너무 간단하게 끝나서 어리둥절하기는 했었다. 그래도 10년짜리 체류권을 주는데 우리 두사람의 신분증만 확인하다니...
 
"위장 결혼인지 확인하려는거겠지?" 
 
"걱정마, 그냥 절차상 랜덤으로 하는걸꺼야. 우리 두사람의 얼굴만 보여주면 되는거라고 봐." 
 
"인터넷으로 보니까 직접 집으로 불쑥 찾아와서 실제 같이 살고있는게 맞는지 확인하는 경우도 있대." 
 
"차라리 그게 나는 더 편하겠네. 일부러 찾아가느라 스케줄을 바꾸지 않아도 되잖아. 와이프도 수업 빠질 필요 없을거고..." 
 
아 그런가ㅋ
 

우편물에는 시청이라고 적혀 있었지만, 자서방의 설명을 들으니 우리나라 구청과 같은 곳인듯 했다.

 
긴장하지 않기로 했지만 당일날 나는 꽤 긴장했다. 혹시 모를 질문에 대비하여 속으로 프랑스 국무총리의 이름까지 외우고 있었음;
 
깐깐한 외모의 중년 여성이 우리를 맞아 주었다.
 
"10년 체류증을 신청하셨네요. 이 자리는 당신을 돕기위햐 마련된 것이니 긴장하실 필요 전혀 없어요. 그냥 있는 그대로 말씀해 주시면 돼요."
 
하지만 그분은 근엄한 표정으로 폭풍같은 인터뷰를 시작하셨고 우리가 있던 작은방은 긴장감으로 꽉 채워졌다.  
 
둘이 몇년도에 어디서 어떻게 만났나, 태국에서 각각 무슨일을 했나, 학위는 어떻게 되나, 한국에서는 무슨일 했나, 결혼식은 왜 한국에서 했나, 프랑스는 언제 들어왔나, 지금까지 뭐했나... 숨가쁜 취조가 빠르게 이어졌다.  
 
아침에 오는 길, 차안에서는 나더러 혼자 알아서 대답하라고 하던 자서방이, 분위기를 감지했던지 옆에서 나대신 빠르게 대답하기 시작했다. 스피트 게임이냐고...ㅋ
 
"코로나 봉쇄가 시작되자마자 들어오셨네요. 2020년 4월이라... 그때 아주 난리였죠..." 
 
그때부터 그녀는 갑자기 자신의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했다. 
 
"......코로나 직전에 제가 많이 아팠거든요? 주치의는 감기라고 하는데, 자꾸 토하고, 열나고, 숨이 안쉬어지고... 감기는 아닌것 같고, 마치 죽을것 같이 아파서 이틀째에 응급실에 갔더니 글쎄 그냥 감기니까 집에 가라네요? 그러다가 8일차에 또 한번 죽을것 같다고 주치의에게 연락했더니, 이번에는 앰뷸런스를 보내주더라요. 아무래도 이건 심각한것 같다면서... 그래서 드디어 병원에 도착해서 치료를 받는구나 안도했는데, 이번에는 병원에서 하는말이, 코로나 환자들이 많으니 집이 더 안전하다고 그냥 집으로 가래요. 그때 정말... 여기가 프랑스가 맞나 싶었어요. 코로나 환자들이 병원에 넘치는데 의료진들이 마스크랑 장갑도 없이 일하고 있었어요. 심지어 의료진들도 부족했어요. 집으로 돌아가면 죽을것 같다고 나 좀 치료해 달라고 애원했지만... 결국 아무 치료도 못받고 돌아왔어요. 나는 그때 프랑스에 더이상 살고싶지 않아졌어요." 
 
갑작스러운 온도변화에 우리 부부는 살짝 당황했다. 
그녀는 점점 흥분해서 울분을 마구 쏟아내고 있었다. 코로나라는 단어가 그녀의 어떤 버튼을 건드린 모양이다. 
 
"아, 하던 얘기로 다시 돌아와서... 아무튼... 이런말은 좀 실례지만 프랑스에 온 건 좋은 결정이 아닐지도 몰라요. 저는 그때 뼈저리게 느꼈어요. 프랑스를 사랑하지만, 건강하지 못할땐 이 나라가 지옥이 될 수도 있다는 걸요." 
 
아... 뭐라고 대답해야 하나...

그녀는 혼자서 계속 계속 말했다. 
 
"제가 빨리 말을 해도 이해하시는 걸 보니 프랑스어를 참 잘하시네요. 지난주에는 일본여성이 혼자 왔는데 말을 한마디도 못하더라구요. 결국 그녀가 전화로 남편을 불렀는데, 글쎄 남편이 옆에 있으니까 갑자기 프랑스어를 술술 하는거 있죠? 깜짝 놀랐어요. 아마 남편이 없어서 무서웠나봐요." 
 
"문화차이도 있을거예요. 대신 우리 와이프는 해외 근무를 오래해서 낯선 만남에도 꽤 개방적이랍니다." 
 
"그런것 같아요. 저는 이 일이 저의 주 업무는 아닌데 이렇게 다양한 문화를 접할 수 있어서 참 재미있어요. 두분처럼 흥미로운 인생을 살아온 사람들을 만날때가 가장 즐거워요. 그리고 제가 어딜가서 한국인을 만나보겠습니까. 그런데 남한에서 오신거... 맞지요?" 
 
"하하, 제가 북한사람이었음 더 흥미로웠을텐데 말이죠." 
 
"그건 그렇네요! 요즘엔 러시아인들도 발길이 뚝 끊어졌어요. 아, 어제는 중국 남성을 만났는데, 어떤 서류도 일체 못보여준다는거 있죠! 그런경우는 처음 봤어요!! 그럴거면 왜 온걸까요." 
 
"우편물에 학위나 경력관련 서류를 지참하라고 명시가 돼 있는데도요?"
 
"그러니까요. 결국 제가 할 수 있는 건 더 없으니 그냥 가라고 돌려 보냈어요. 별별 사람들 다 있죠." 
 
초반에 내가 뭐하러 긴장을 했었나 싶을 정도로 그녀는 혼자서 계속 떠들었고 우리 부부는 열심히 맞장구 치고 호응했다. (미팅은 한시간이나 걸렸다. 거의 수다였지만...)

 
마지막에 그녀는 내가 챙겨간 서류들중에서 필요한 것들 (경력증명서, 졸업장, 프랑스어 자격증, 거주 증명서, 신분증 등등)을 복사한 후 우리에게 작별 인사를 건넸다. 
 
"필요한 서류도 모두 구비되었고, 아무 문제 없네요. 오늘 참 즐거웠어요." 
 
사실 저희가 더 즐거웠답니다.ㅋ
 
좀 황당하기도 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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