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2월
마닐라공항에서 한국으로 돌아오던날 겪은 일이다.
티켓팅을 위해 줄을 섰는데
앞에 서계시던 나이든 한국인 할머니한분이 나를 보자마자 얼른 반기며 한국인이냐면 물어오셨다. 맞다고 하자 눈물까지 글썽이며 이 티켓으로 오늘 한국에 갈 수있는지 확인좀 해달라고 하셨다.
1년짜리 오픈티켓이었는데, 날짜 컨펌을 받아오신건지는 확인이 안되었고 스케줄이 적힌 작은 메모지만 갖고 계실뿐이었다.
일단 확인해 보자고 안심시켜 드렸다.
일로일로에서부터 이미 혼자서 비행기를 타고 오셨단다.
생전처음 혼자서 타보는 비행기였다는데 어째서 이런 위험을 감수하고 오신 것일까-
일로일로에 사는 딸 사위네를 방문해서 열달쯤 머물다 가시는 길인데 원래 다음주에 다같이 귀국하기로했다가 갑자기 자식들이 사정이 생겼으니 혼자 떠나시라고 했단다.
할머니께서는 싫다고 대답도 못하시고 그저 두려움과 걱정에 잠도 못주무시고 며칠동안 기도만 하셨단다.
제발 누군가를 만나서 한국 집까지 무사히 당도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그렇게나 간절히 하셨다고 하셨다.
일단 티케팅은 무사히 끝냈다.
문제는 이민국.
6개월이상 체류하셨기때문에 거기에 따르는 Special clearance가 있어야 통과가 된단다. 결국 내가 사정사정해서 이분은 나가시면 가실데가 없으니 어떻게 여기서라도 해결할 방법이 없겠냐고 물었지만 먹힐리가 없었다.
그냥 돌아가란다.. 일로일로로 가서 받아오는수 밖에 없다는..
할머니께서는 벌써부터 잔뜩 겁을집어드시고는 심사관에게 사위가 돈을 많이 줘서, 무슨일 있으면 돈주고 들어가면 된다더라며 본인의 두둑한 가방을 두드리셨다.
결국 통과못하고 내가 사위라는사람이랑 통화를 해서 사정설명을 했더니 이 양반 태연하게, 미리 예상하고 있던일이라며 나더러 이민국 캐셔가서 페이하면 되는걸 뭐 그러냐는 식..
사실은 정말 어이가 없었다.
영어한마디도 못하시는 할머니를,
그것도 본인들도 몇 주후에 한국들어갈거라면서 굳이 날짜 여유가 있는 오픈티켓을 갖고 비자도 처리 안된채 할머니 혼자 그리도 급하게 보내다니..
영어도 못하시는데 혼자 계셨으면 완전 큰일 날뻔했는데도..
혼자 마닐라공항 도착해서도 어디로 가야할지 몰라서 지나가던 필리핀사람한테 돈줘서 티켓팅하는 줄까지 무사히 오셨다고 하셨다. 이 얼마나 위험천만한 일인지 과연 10년 필리핀 살았다는 사위라는 사람은 몰랐을까..
아무튼 본인 자식들을 의심하는 내 머릿속을 읽으셨는지 할머니께서는 연신 우리 사위 내 걱정 얼마나 많이 하는데.. 바빠서 그렇지.. 비서가 더 나쁘다고만 하셨다.
결국 이민국 캐셔 찾아가서 불쌍한 표정으로 사정했더니 의외로 운좋게 돈 하나 안들이고(아무래도 행운ㅋ) 무사히 도장받아서 다시 줄 설 필요도 없이 구석으로? 무사통과했다.ㅋ
사실 그사람들이 자기네끼리 굉장히 잼는 얘길하면서 깔깔거리고 있었는데 내가 불쑥 불쌍한 얼굴로 다가갔더니 자세히 살펴보지도 않고 그냥 대충 도장만 찍어준것이다.ㅎ
할머니께서 김밥을 2인분을 싸오셨다며 같이 먹자고 하셨다.
내가 그렇게 그리워 하던 김밥~~ㅋ
드시면서도 여전히 불안하신지 근처에 누가 쳐다만 봐도 고개를 떨구셨다 혹시 다시 나가라고 할까봐..
원래 비용 이외에도 엄청난 패널티가 있었으나 정작 돈 한푼 안내고 아무 절차도 없이 스템프만 후다닥 받아서 옆문으로 대충 들어왔으니 걱정할 법도 하지..
나도 걱정돼서 할머니 여권의 스템프를 몇번이나 확인하고 날짜도 확인했는데 문제는 없었다.
이해가 안되지만 운은 엄청나게 좋았다고 믿었다.
그리고나서 할머니께서 말씀하셨다.
" 나 정말 하나님이 기도 들어주셨나봐..!
내가 아가씨 안만났으면 어떻게 혼자 비행기를 타겠어. 갑자기 자식들이 나혼자 가야된다는 바람에 며칠동안 잠도 못자고 먹지도않고 기도만했어. 나 꼭 한국 집까지 무사히 갈 수 있게, 좋은사람 만나게 해달라고 기도했더니 정말 들어주셨어 "
할머니는 그렇게 말씀하셨다.
근데 정말 놀라운건 거기서 부터였다.
"근데 할머니 한국 어디 사세요? ^^"
"나? 안산."
"안산어디요?"
"안산 XX"
바로 우리동네, 우리 집 근처 사시는 분이셨던 것이다.
정말 전율하지 않을수가 없었다.
난 그때까지도, 할머니께서 나를 만나지 않으셨더라면 큰일날뻔했을거야 하고 맘속으로 으쓱해 하고있었다.
헌데 정말..
이 모든것이 이미 정해진대로 일어난 사건이었다면..?
"God has a way of allowing us to be at the right place, at the right time"
이 얼마나 경이롭고 멋진 세상인지 새삼 느꼈다.
당신이 예수님을 믿건 부처님을 믿건 또는 알라를 믿건간에 그것이 우리 삶에서 집중할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하는 기도를 온 우주가 귀기울이고 있으며, 우리는 아무리 발버둥쳐도 그 안에, 그 계획안에 언제나 존재할 수 밖에없다는.
또한 누군가 내 도움이 필요하다면 적재적소에 내가 짠 하고 나타나 줄 수도 있다는..
그것은 일종의 진리였다.
이 순간 당신이 극한 어려움에 처해 절망적이라고 생각한다면
이 순간 당신이 절대적으로 혼자라 느낀다면
절대 그럴 필요가 없다고 말해주고싶다.
당신이나 나나 온 우주가 낳은 수많은 자식중 하나일 뿐이며 더 특별할 것도 더 못할 것도 없이 그저 하나이다.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도 우리는 서로 충족시켜주고 보완해줄 수 밖에 없는 존재들이라고 생각한다.
희망을 가지기를..
당신을 위한 멋진 계획들이 지금도 진행중이라 확신한다..
아무리 지금 이순간 모든게 꼬이고 엉망이고 헝클러진것 같아보여도 사실 우리는 그저 진리대로 흘러가는 중이며 앞으로도 이 우주는 우리 한사람 한사람의 기도에 귀 기울여 줄 것이며 당신을 이끌어 줄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내 옆에 당신이 있는 이유가 있을것이고,
당신곁의 그사람을 위해서 당신이 해 줄수있는 일이 있을것이다.
이 우주가 우리를 그렇게 인도해주고 있다고 나는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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