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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이야기/프랑스 시월드

시어머니 생신인 줄도 모르고 있었다......!

by 낭시댁 2021. 3. 16.

토요일 아침- 

오전에 시어머니께서 차마시러 놀러 오시겠다고 하셨다. 자서방과 무스카델을 보신지도 꽤 되셨으니 보고싶으셨나보다 싶었다.

잠시후 도착하신 시어머니께서는 역시 빈손으로 오지 않으시고 뭔가를 가져오셨다. 

 

 

 

"누아 (호두)는 파티마가 마당에 있는 나무에서 수확한거 나눠준거고, 호일안에 든거는 내가 만든 감자빠떼란다. 너희가 좋아하길래..." 

이 외에도 네스프레소 캡슐을 세줄 가져오셨는데 그건 자서방이 바로 봉지에 담아서 돌려드렸다. 우리집에 캡슐이 얼마나 많은지를 직접 보여주면서...

 

 

 

 

시어머니와 콜라를 마시는데 어느새 무스카델이 슬금슬금 와서는 시어머니를 관찰하기 시작했다. 예전같으면 멀리멀리 도망가서 근처에도 안오더니 이제는 꽤 편해졌나보다. 

 

 

 

자서방도 커피를 뽑아와서 시어머니의 맞은편에 앉았고, 무스카델은 캣타워에 앉아서 시어머니 얼굴을 뚫어져라 살피고 있었다. 누구더라...... 하는 표정으로.  


"아빠는 왜 같이 안오셨어요?"

"호호호~ 내가 자주가는 단골 파티세리에서 공짜 갸또 쿠폰을 하나 받았단다. 아침에 내가 너희 아빠더러 쿠폰을 가져가서 갸또를 받아오라고 보냈지." 

그리고 시어머니께서는 시아버지의 성대모사를 하셨고 그걸 들은 자서방은 뒤로 넘어가도록 웃었다. 

"[이...이걸... 내밀기만 하면 공짜 갸또를 주는거라고...? 줄서서 기다리다가 아무것도 안사고 공짜 갸또만 받아오는건 좀... 미안하지 않나...] 하면서 안가려고 하는데 내가 억지로 보냈단다. 어차피 그집 단골이라서 받은 쿠폰인데 미안할게 뭐 있냐고 했지. 호호호~ 진짜 받으러 갔으려나 모르겠네."

"아빠가 받아오셨는지 이따가 꼭 알려주세요. 하하하~"

"어제 아침에는 마리필립이 코로나 백신을 맞으러 간대서 내가 운전해 줬단다. 점점 더 기운이 없어서 필요할 때마다 내가 달려가서 도와줘야 해. 예전에는 우리가 그녀한테 신세를 더 많이 졌는데 이제는 내가 도와줄 수 있게 돼서 좋아."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시더니 시어머니께서는 이만 가야겠다고 하셨다. 

"너희 아빠가 갸또를 받아왔으려나~" 

말씀은 그래도 별로 떠나고 싶지는 않으신것 같았다. 여전히 빈 컵에 콜라를 리필하고 계셨던것이다.

눈치빠른 자서방이 말씀 드렸다.

“더 계시다가세요. 어차피 바쁜일도 없으시잖아요.”

"그럴까~? 나 여기 같이 있으면 너희들도 좋니? 나는 좋거든."  

"그럼요! 그리고 무스카델도 좋대요." 

그렇게 믿기엔 무스카델의 표정이 너무 가관이었다. 시어머니 얼굴을 의심스럽게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어서 우리를 또 넘어가게 만들었다. 


 

 

시어머니께서는 오후 한시가 넘어서야 떠나셨는데, 떠나시고 몇분 후에 나에게 한문장의 짧은 문자메세지를 보내오셨다.

 

 

"오늘 내 생일이다."

으악.................!!!!!!!!!!!!!!!!!!!!!!!!!! 

농담하시는거라고 믿고 싶었다.

"오늘... 어머니 생신이셔...?" 

나의 이 말 한마디에 테이블을 치우던 자서방은 얼어 붙었고 그 표정을 보고서야 나는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았다.

자서방은 바로 전화를 드렸다. 손이 살짝 떨리는것 같았는데 그건 내 기분탓일까...

"엄마, 일주일전까지만해도 계속 생각하고 있었어요. 근데 요즘 너무 정신이 없어서 그새 깜빡했어요. 엄마, 죄송해요. 생신 축하 드려요!"

내가 옆에서 시키는대로 자서방은 저녁에 아버님과 식사하러 다시 오시라고 말씀을 드렸지만 시어머니께서는 이미 베르나르 아저씨네로 저녁식사 초대를 받았다고 하셨다.

베르나르 아저씨도 기억하시는 시어머니의 생신을... 친자식과 며느리는... ㅠ.ㅠ 

자서방은 전화를 끊고도 한동안 아무말을 하지 못했다. 금방이라도 울것 같은 표정으로 두손으로 얼굴을 몇번이나 쓸어내렸다.

"멍청하게 그걸 잊어버리다니... 내가 어떻게 그걸 잊었지...하아... 잊을게 따로 있지..."

"다시 전화드려서 내일 점심때 식사하러 오시라고 한번 더 말씀드려봐. 내가 알아서 준비할테니..."

자서방은 내가 시키는대로 다시 전화를 드렸고 흔쾌히 초대에 응하시는 시어머니의 기분 좋은 목소리가 전화기 밖으로 쩌렁쩌렁하게 들려왔다.

휴... 다행이다.  

“내일 제가 맛있는 와인도 준비할게요! 내일 봬요, 엄마!”

자서방의 표정도 한결 밝아졌다. (참고로 자서방이 말한 와인은 시댁 지하실에 있는거고 시아버지께 오실 때 가져오시라고 부탁드림;;)



나는 점심 메뉴로 스테이크를 준비하려고 했는데 자서방이 비빔밥을 적극 추천했다. 스테이크는 자주 해드실수 있지만 맛있는 비빔밥은 내가 해 드리지 않는 한 못드신다며... (그리고 분명 본인도 먹고 싶었던 듯...?)

"그래 그럴게. 디저트로는 브라우니를 구워서 크렘 앙글레즈를 얹어서 내야겠다."  

그리고나서 나는 조용히 혼자서 동네 슈퍼에 다녀왔다. 소고기랑 야채들을 샀고 보라색 오키드도 샀다. 꽃다발을 사려고 했지만 별로 마음에 드는게 없었다. 시어머니께서 오키드를 좋아하셔서 시댁에 이미 오키드가 몇개 있지만 보라색은 못 본것 같았다. 

 

 

보슬비를 맞으며 장바구니와 함께 레옹처럼 화분을 끌어안고 집으로 돌아왔다. 

 

 

내가 슈퍼에 간 줄도 모르고 있던 자서방은 보슬비를 맞은채 이것저것 사들고 돌아온 나를 보더니 어쩔줄을 몰라하며 몇번이나 고맙다고 했다.

"우리에게 어머니께서 베푸신게 얼만데... 아마도 세상에서 우리에게 가장 잘해주시는 분인데... 오늘 오셨다가 우리가 생신인 줄도 모르고 있었으니 얼마나 서운하셨겠어. 부족하겠지만 내가 최선을 다해 볼게!

자서방이 꽤 감동한 것 같았다. 

"아참, 어머니께 내일 오실때 비빔밥 소스 좀 갖다달라고 해줘." 

"아, 안그래도 아빠한테 내일 오실때 와인이랑 샴페인좀 갖고오시라고 말씀드렸어."

"근데 우리 와인잔도 없는데..."

"음... 엄마는 와인보다 샴페인을 더 좋아하시니까 아빠한테 내일 와인잔 대신 샴페인 잔으로 빌려달라고 해야겠다." 

"차라리 이럴거면 그집에서 아뻬리티브를 하고 여기로 오는게 낫지않아?" 

우리는 다시 웃음을 되찾았다. 

한 시간전만 해도 눈앞이 캄캄했는데 말이다.  

시어머니께서 늦지 않게 알려주셔서 정말 다행이다;;  그렇지 않았다면 상황이 더 심각해질뻔했다. 나도 달력에 표시를 해 놓고 내년에는 잊지않고 먼저 챙겨드려야지. 올해는 처음이니 봐주시기를 바라며... 

 

저녁때 자서방이 말했다. 

"아빠가 내일 케잌도 가지고 오신대. 디저트도 준비 안해도 되겠다!" 

이쯤되면 그냥 장소제공이 아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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