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어이 퇴사를 해버렸다.
오래오래 고민하고 망설이고 미루다가 큰 결심을 한건데 막상 관두고 생각하니 잘 한 결정이었다. 회사일로 몸과 마음이 피폐할때는 온 세상이 다 피폐해보였는데 막상 저지르고나니 뭐 별것도 아니었다. 잦은 출장과 업무로 예민하게 굴어서 우리 자서방이 그동안 맘고생이 참 많았다. 더 좋은 직장을 못구하면 어때, 사람답게 좀 살아보자.
오래전 한국에서 일하던 어학원에서 퇴사하겠다고 했더니, 맨날 참신한 방법으로 꾸준히도 괴롭게하던 이실장님이 말씀하셨다.
"너가 아직 세상물정을 모르는구나. 요즘 취업이 쉬운줄 아니? 철이 없어... 세상에 칼퇴하는 회사가 어딨어. 나중에 후회하지말고 정신차리고 그냥 있어"
그때 살짝 겁먹은채 퇴사했는데 다른데선 다 끼니도 제때 챙겨주더라. 나는 칼퇴하는 외국회사로 들어갔다. 하마터면 다들 그렇게 사는줄 알고 체념할뻔 했다.
싱가폴에서 근무하던 외국계 회사에서 서울로 발령나서 갔을때 갑과을이 무엇을 말하는지 난생 처음 뼈저리게 체험을 했다. 힘든 하루하루를 보내던 당시 리더쉽교육을 위해 외부에서 오셨던 강사님과 친해져서 고민상담을 한 적이 었었는데 그분이 내게 말씀해 주신게 아직도 잊혀지지가 않는다.
"아무리 힘들어도 무조건 참으세요. 이정도 나이에 이런 회사 이런 포지션을 얻을수 있다면 뭐든 각오할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아세요? 업무도 적성에 맞다면서요? 고작 사람때문에 힘든거라면 그냥 삼년만 죽었다고 생각하고 버티세요. 하루씩 버티다보면 내가 장담하는데 분명히 언젠가는 지금 내 충고가 고마워질 날이 올거예요. 냉정하게 들리겠지만 다른 이유도 아니고 사람때문에 힘든건 무조건 참아야 해요. 왜냐면 다른 회사를 간다해도 또 사람때문에 힘들거거든요."
우리 시어머니께서는 나에게 달리 말씀해주셨다.
"그 누구도 너를 함부로 대하도록 놔두지말거라. 어쩔수 없을때는 그사람들을 니가 떠나서 새로 출발해. 너를 인정하고 고마워하는 사람들과 일해야지. 인생은 짧은데 멍청한 사람들한테 시간을 낭비해서는 안돼"
우리 남편도 자주 하는 말이 있다.
"한국에서는 표현하지 말고 그냥 조용히 참으라고 교육을 시키는게 아닌가 싶을때가 있어. 내가 너였다면 그 회사는 한달만에 관뒀을거야. 나는 그런 점에서 너의 인내심이 배울만 하다고 생각해. 그렇지만 너 자신을 헤치면서까지 참지는 마. 내가 말했지? 첫직장에서 선배하나가 하도 나를 갈구길래 참고참다가 아무도 없을때 그녀석 멱살을 잡고 욕을 해버렸어. 나도 내가 어디서 그런 용기가 나왔는지 몰라. 속으론 엄청 떨렸지. 그런데 그 선배가 다시는 나를 갈구지를 않더라고. 너도 한번씩은 발톱을 드러낼 필요가 있어."
이번회사도 실패다. 구구절절 사연은 많지만 어디 힘들지 않은 직장이 어디에 있던가- 뭐 일단 다이나믹하게 배운점이 많아서 완전 실패는 아니다.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는 사람은 세상에 몇이나 될까? 없는건 아닐까?
잠시 휴식을 위해 한국에 와보니 이곳에는 마음이 안아픈 사람이 하나도 없어보인다.
가족, 친척, 친구들 혹은 티비에 나오는 유명한 연예인들까지도.. 우울증 공황장애와 수면제등은 마치 유행처럼 번지고있나보다.
내가 아끼던 동생이 오래간만에 연락이 왔는데 퇴근중 지하철에서 갑자기 숨이 막혀서 응급실에 갔더라는것이다.
우리 집안에도 같은 증상으로 수년간 고생했던 사람이 있어 아는대로 이야기를 해 주었다. 그 동생은 실은 회사 스트레스때문에 오래전부터 퇴사를 고민중인 상태라고 했다. 사는게 힘들다며... 그래서 내가 말했다.
"이것저것 다 헤아리고 참다가 내 건강을 잃고나면 정작 고민하던 것들이 별게 아니라는걸 알게 돼. 일단 나먼저 챙기자. 쉬고 바람도 쐬고 가능하면 짧은 여행이라도 하면서 내가 원했던 인생이 어떤거였는지 스스로 정리 해 보면 좋겠다. 화나면 화내고 큰소리도 가끔 치면서- 참다가 병된다는 말 사실은 굉장히 무서운거야. 내 주변사람들까지 힘들어지고"
직장때문에 힘들때는 남편의 고마움이나 내가 가진 사소한 것들에 감사할 마음의 여유가 별로 없었다. 불면증이 생기고 예민하게 굴어서 남편을 힘들게 하면서까지 참고 버텼던 이유는 돈이나 커리어때문이 아니었다. 그냥 고생한 결실을 보고싶었고 또 인정을 받고 싶어서 집착했던것 같다.
자서방은 나더러 이번에 한국에서 푹 쉬고 다시 기분 좋아져서 예전처럼 웃으며 살자고 한다. 원래 잘 웃지도 않는 츤데레 남편이 화상통화를 할때마다 어색하도록 환하게 웃어준다. 내가 웃음이 전염된다고 강조했더니 이제 좀 먹히나보다.
잠시 방황하는 기분이 들긴 하지만 소중한 내 인생을 가치없는 곳에서 조금이라도 더 낭비하지 않은것에 감사한다.
4년전 한국에서 퇴사하고 태국으로 떠날무렵 내가 썼던 글과 사진을 발견했다. 용기가 필요한 지금 나에게 딱 필요한거다.
이른 아침 산책중 맞딱드린 안개속 끝없이 이어진 다리
바로 아래는 아찔한 바다
드센 아침바람까지 더해져 아찔했지만 한발한발 걸으니 묘한 운치가 있더라.
끝이 보이지 않는다고 그 끝이 없는 법은 없다.
어디로 가느냐 보다는 어떻게 가느냐가 더 중요하고
얼마나 빨리 가느냐 보다는 언제 도착할 지 모르지만 좀 더 즐거운 길로 가는게 나는 더 좋다.
얼마를 걸어왔건
이 길이 아니다싶으면
언제든지 포기하고 다시 시작할 용기가 나는 있으니까.
이 용기가 언제든 있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같은 용기가 필요한 누군가에게도 행운을 빌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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