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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이야기/프랑스 시월드

시어머니의 다국적 식재료 찬장속에는...

by 낭시댁 2020. 7. 8.

한번씩 집안에서 작은 나방이 날아다니는걸 볼때가 있다. 

그럴때마다 시어머니께서는 그 나방을 원수 대하듯 단단히 응징을 하곤 하신다. 

그러던 어느날 오후, 시어머니께서는 안되겠다며 찬장을 대청소 해야겠다고 하시며 나를 부르셨다. 

시어머니의 부엌에는 정말이지 모든 찬장과 서랍칸칸마다 너무나 많은 식재료들이 쌓여있다. 

여행을 좋아하시는 시어머니는 여행을 가실때 마다 수집하듯이 현지의 식재료들을 사오곤 하신다. 

"내가 너무 많이 사서 미셸이 항상 뭐라고 하는데 고쳐지지가 않아. 여행가면 나는 맨 먼저 보는게 음식재료란다." 

내가 구석구석 찬장을 열어보고 서랍을 뒤지다가 식재료가 이렇게나 많냐며 놀랬더니 시어머니께서는 두손을 휘저으시며 낮은 목소리로 말씀하셨다. 

"쉿! 그런건 영어로 말하거라. 오늘은 프랑스어 연습 안해도 돼. 미셸이 들으면 또 뭐라고 하거든..."

시아버지께서 계신 거실쪽을 가리키며 계속 은밀한 목소리로 말씀하셨다. 그것도 영어로.

"이거도 이거도 다 버려야겠네... 이거 혹시 밖에 쓰레기통에 좀 버리고 와주겠니?"

사다리에 올라가 계신 시어머니를 대신해서 몇번 대문에 있는 큰 쓰레기통으로 왔다갔다 심부름을 했는데, 나방들이 알을 까고 왕국(?)을 건설해 놓은 두 곡물 상자를 찾아내었다.

물건들을 모두 꺼내서 버릴건 다 버리고, 찬장바닥은 청소기로 밀고 행주로 한번 더 말끔하게 닦은 후에 물건들을 다시 정리했다. 

모든 봉지나 종이상자에 든 곡물류들은 뜯어서 공기가 통하지 않는 유리병으로 옮기셨다.  

쌀만해도 종류가 워낙 다양해서 이름표를 오려서 유리병에 같이 넣으셨다. 

정말 다양한 식재료들이 있다-고 말할때 마다 내 입을 막으시는 시어머니 ㅋㅋㅋㅋ 

찬장 정리를 마치고 서랍에 있는 곡류들을 병에 옮겨담고 있을때 시아버지께서 에스프레소를 마시러 오셨다가 멈칫하시고는 우리를 말없이 지켜보셨다. 

시아버지께서는 곧 조용히 어디론가 사라지셨고 시어머니께서는 살짝 당황하셨다. 하지만 곧 돌아오신 시아버지의 손에는 빈 우유병들이 가득 든 자루가 쥐여있었다.

진공유리병보다는 우유병이 세로로 길기때문에 서랍에 보관하기가 용이할 것 같다는 의견과 함께 자루를 내려놓으셨다. 시아버지로부터 그거보라며 왜 물건들을 자꾸 샀냐는 핀잔을 들을 줄 아셨던 시어머니는 굉장히 기뻐하시며 남은 곡물들은 우유병에 담겠다고, 참으로 훌륭한 아이디어라며 폭풍 칭찬을 하셨다. 귀여우셔 ㅎㅎㅎ

장시간이 걸린 찬장과 서랍의 정리를 모두 마친 후 시어머니께서 말씀하셨다. 

"아~ 너무 행복하다. 혹시 나중에 너희집에서 이런 청소 필요하면 나를 부르렴. 그때는 내가 도와주러 갈테니." 

네~ 라고 대답은 했지만 나는 그럴일은 없을것 같다. 일단 식재료 모으는 취미는 별로 없기 때문에 ㅎㅎㅎㅎㅎ

문제는 아직 남은 찬장들이 있다는 사실....ㅠ.ㅠ 

저쪽에서는 나방이 안나오는것 같은데요... 며칠 더 있어보고 나방이 더이상 나오지 않는다면 저쪽은 그냥 둬도 될 것 같아요.... 라고 설득하는데 성공했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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