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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이야기/프랑스 시월드

명절을 기다리는 시어머니를 보니 친정엄마가 떠올랐다.

by 낭시댁 2020. 12. 21.

얼마전 시어머니의 찬장 정리를 도와드리고 있을때 시어머니께서 말씀하셨다. 

"혹시 한국 가족들에게 크리스마스 선물을 보낼 계획이라면 나에게 예쁜 상자가 있으니 갖다 쓰거라. 네가 없어서 크리스마스때 한국의 가족들이 많이 서운하겠구나." 

 

 



"감사하지만 괜찮아요. 그리고 크리스마스는 한국에서 가족 명절도 아니고 그저 휴일일 뿐이예요. 저희 가족에게 큰 의미는 없어요." 

"뭐라고? 일년에 한번있는 이런 기쁨이 한국에는 없다는 말이니? 나는 일년 내내 크리스마스를 기다리는데... 크리스마스가 없다면 나는 너무 슬플 것 같구나." 

"한국에는 대신에 다른 명절이 두번 있지요. 온 가족들이 다 모이는 명절이요. 그때가 되면 저희도 음식을 잔뜩 준비해요. 가족끼리 오랫만에 모여서 선물세트를 주고받고요, 조상들께 감사를 드리기도 해요." 

대신에 명절마다 가족들이 모여서 많이 싸운답니다... 라고 속으로만 생각했다. 

 

어릴 적, 명절전날이 되면 나랑 언니는 맏며느리인 엄마를 도와 음식을 준비했고 명절 당일에는 방문을 닫고 방안에 꼭 틀어박혀 있곤했다. 5형제나 되는 아빠의 가족들과는 별로 좋은 기억이 없다. 우리엄마는 명절을 포함해서 1년에 열세번의 제사를 준비하셨고 옆에서 돕느라 나 역시 어릴적부터 제사 음식 준비에는 이골이 나 있을 정도였다.

난 정말 이해할 수 없는 풍습이지만 아빠는 아들이 없는 큰집에 제사를 모시기 위해 어릴적에 양자로 가셨다. 이걸로 인해 아빠뿐 아니라 엄마의 인생에도 너무 많은 피해가 있었다. 양쪽 집을 위해 온갖 책임은 온전히 감당해야 하셨고 권리는 요리조리 다 빼앗겼다. 엄격하셨던 두집 조부모님들이 모두 돌아가신 후에야 작은 할아버지께서는 우리부모님께서 억울하게 양쪽 제사를 모두 지내오고 있었던 거라고 목소리를 내 주셨고 우리 부모님은 뒤늦게서야 제사의 부담을 많이 덜 수가 있게 되셨다. 우리엄마의 홧병은 우리 식구들만 안다. 


명절이 스트레스인 가정은 우리집뿐이 아닌것 같았다. 

지난 추석 전날에는 우리 언니네 아랫층 아줌마가 전을 부치다말고 부부싸움이 나서 창밖으로 전을 다 내던지더라는 웃픈 이야기도 들었다.


우리 친정동네에는 명절 후 자살한 며느리도 있었다;;


과연 누구를 위한 명절인지... 이쯤되면 조상들도 하나도 안 고마울 것 같다.


남편을 따라 프랑스로 오게면서 비록 나의 전부치기 스킬을 제대로 써먹지는 못하게 되었지만 그래도 며느리로서 우리엄마가 겪었던 한국명절의 고행(?)을 겪지 않아도 된다는 점에서 나는 너무나 감사하는 마음이다. 물론 한국에도 명절날 화목한 가족들도 있겠지만...

 

크리스마스에 시댁에 가면 우리 시어머니께서는 본인의 음식과 디저트 솜씨를 기꺼이 뽐내시며 즐거워하시고 온 가족들은 함께 음식을 차리고 치운다. 그날은 조상을 위한 날도, 누가 시켜서 고생하는 날도 아니고 그저 가족들과 맛있는걸 먹고 마시고 이야기하고 웃는 날인 것이다. 그러니 우리 시어머니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이다. 


"나는 종교는 없지만 그래도 크리스마스는 나를 행복하게 만든단다. 크리스마스가 없다는건 나는 상상하기도 싫구나.”



나에게도 크리스마스의 의미는 올해부터 바뀔 예정이다. 

우리엄마, 정말 고생 많으셨어요. 토닥토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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