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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이야기/프랑스 시월드

시부모님 없는 외국인은 서럽겠다...

by 낭시댁 2021. 3. 5.

일요일 오후. 

시어머니께서 잠깐 올 수 있냐는 메세지를 보내오셨다. 

이유는 말씀 안하셨지만, 일단 얇은 자켓을 걸치며 거실에서 티비를 보는 자서방에게 외쳤다. 

"나 시댁 간다!"

"또?"

그러게... 넌 왜 안가니... 이쯤되면 누가 친자식인지 한번씩 생각하게 된다.   

 

바로 이런게 시리도록 파란 하늘!
"또 왔냥? 매일 오냥?"

 

시댁 거실로 들어가자 시아버지께서 그곳에 간이 사무실을 차려놓으신 풍경이 펼쳐졌다. 내 서류들이 소파며 탁자며 여기저기 흩어져 있었고 시아버지께서는 열심히 한손으로 타자를 치고 계셨다. 

"네 비자때문에 경시청 디렉터에게 이메일을 쓰고 있단다. 같은 내용으로 오늘 편지도 보낼거야." 

아... 코가 찡... 

잠깐 오라고 하셨을때 나는 내 비자 관련일이라고는 생각 하지 못했다.

내가 얼떨떨한 표정으로 서 있으니 시어머니께서 말씀하셨다. 

"미셸이 같은 내용을 우편으로도 보낼건데 거기에 네 서명이 필요하다고 하더구나. 그래서 불렀지." 

시아버지께서는 곧 이메일의 내용을 보여주셨다. 

내 비자가 다음달이면 만료가 되는데 온라인으로 경시청에 헝데부를 잡으려고 해도 안되고 (예약이 꽉 찼다는 메세지만 뜬다), 헝데부 없이는 방문도 안받아준다고 하니 부디 헝데부를 잡아달라는 내용을 아주 정중하게 쓰신거였다.

정작 내 남편은 집에서 방구뀌면서 티비 보고 있는데 우리 시부모님께서는 이렇게 까지 마음을 쓰고 계셨던 것이다! (물론 자서방도 이미 이메일도 보냈고 전화도 시도했는데 안돼서 시부모님 지인 찬스를 위해 상황을 알렸던 것이다.)

시어머니께서는 또 휴대폰 메세지를 하나 보여주시면서 말씀하셨다.

"파티마가 경시청에서 일하는 친구에게도 도움을 요청했단다. 그런데 그 친구도 온라인으로 헝데부를 잡는 방법 뿐이라고 하더구나. 다만 자정이 넘어서 시도하다 보면 예약 가능한 날짜가 열릴 확률이 높다고 하네. 너 혼자 매일 자정까지 기다리려면 힘드니까 나랑 격일로 자정까지 대기하는게 어떠니?"  

왜 자꾸 감동시키세요...;; 

"아니예요. 제가 자정까지 매일 확인해 볼게요. 혼자 확인해도 괜찮아요."

시아버지께서는 이메일을 전송하신 후에 우편으로 보낼 레터를 위해 타이핑을 다시 이어가셨고, 시어머니께서는 옆에서 정보들을 확인해 주고 계셨다. 

그 사이 할일이 없던 나는 내 집마냥 부엌에 가서 어슬렁 거렸다. 

 

 

간식거리가 있길래 통채 들고와서 하나씩 집어 먹었다. 

"아, 그거 마리 필립이 직접 구웠다며 가져왔단다. 하얀 머랭은 레스토랑에서 그녀가 음식을 테이크아웃해 올 때 같이 온건데 너무 달아서 다 못먹었어. 맛있으면 너 다 먹거라..." 

내가 먹는 모습을 보시더니 시어머니께서는 갑자기 손뼉을 탁 치시며, 핫초코를 만들어 주시겠다며 일어나셨다. 

"아니예요. 저 벌써 이 쿠키 세개째라 그만 먹어야 해요! 마리필립 아주머니께 전해주세요. 이거 너무 맛있어요!!"

그래도 시어머니께서는 최고의 핫초코라며 꼭 맛보아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음... 그럼 먹어야지요."

 

 

나를 위해 한참 집중해서 타이핑을 하시는 시아버지를 뒤로 한 채 나는 시어머니께서 '최고의 핫초코'를 만드시는 장면을 구경하러 갔다.

먼저 에어로치노를 꺼내시더니 정말 맛있는 초콜렛이라며 그 안에 가득 부으셨다. 그리고는 냄비에 끓인 우유를 초콜렛위에 붓고 돌리셨다.   

 

 

그사이, 새로 구우신 시나몬 브리오슈라며 한덩이 잘라서 싸주셨다. 그리고 나 주려고 아시아마트에서 김밥 발이랑 주걱도 사셨다며 그것도 꺼내주셨다. 

으... 오늘은 감동주는 날인가요...

집에 있는 자서방을 떠올리며, 대체 누가 이집 친자식인지 한번 더 생각해보았다. 

 

 

"찬장에서 잔 하나만 꺼내다오."

"왜 잔이 하나예요!? 이렇게 많이 만드셨는데요!" 

"이거 다 너 혼자 마실거니까. 호호호~" 

그렇게 말씀하시며 잔이 찰랑찰랑 하도록 가득 부어주셨다.;; 

 

 

엄청 진~ 한 핫초코!!

내가 잔을 처음으로 입에 가져갈때 시어머니께서는 숨죽이시며 내 반응을 기다리고 계셨다. 

"지~인짜! 최고맞네요!! 핫초코는 이 집이 프랑스에서 최고예요!!" 

쌍엄지를 치켜 세우며 감탄하자 시어머니께서는 소녀처럼 좋아하셨다. 그리고 남은 핫초코는 다른 잔에 마저 부어오셔서 시아버지와 두분이서 나누어 드셨다. 

 

 

 

 

이스탄불! 넌 언제 거기로 가있었던거니?

나도 놀랬는데 얘도 내가 온걸 이제서야 발견했나보다. 눈을 땡그랗게 뜨고 나를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ㅋㅋㅋㅋㅋㅋㅋ 

 

 

오늘따라 둘 다 낮잠을 자네... 밖에 날씨도 좋은데!! 

 

 

모웬은 절대 안들어가는 캣타워 바닥. 내성적인 이스탄불은 꼭 이런 구석을 좋아한다. 

 

 

편지를 완성하신 후 프린트를 해 오신 시아버지께서는 나에게 서명을 하게 하셨다. 그리고 그 편지는 내 주요 서류들 몇장과 함께 시어머니의 도움을 받아 고이 접혀서 우편봉투로 들어갔다. 

"제가 가는길에 우체통에 넣을게요." 

"아니야. 이건 등기로 부칠거라 내일 오전에 내가 우체국에 갈거야. 그쪽에서 등기를 받으면 너희 집으로 영수증이 갈테니 그것도 서류들과 함께 잘 보관하렴. 이걸로 헝데부를 잡는데 도움이 안 될수도 있지만, 나중에 네 비자가 만료 되었을때 우리가 접촉을 시도했다는 증거로 제출할 수는 있지않겠니." 


자상하게 설명해 주시는 시아버지께 진심으로 고개를 숙여서 감사의 인사를 연신 반복했다.

"아무걱정 하지 말거라. 이래도 안되면 또 다른 방법을 시도해 볼테니..."

솔직히 저보다 두분이 더 많이 걱정하시는것 같은데요...

인터넷을 검색해보면 같은 문제로 고민하는 외국인들이 굉장히 많다. 인터넷으로 헝데부도 못잡게 했으면서 헝데부가 없으면 경시청에서 받아주지도 않는다. 그렇게 애간장만 태우다가 비자가 만료돼 버리기도 하는것이다. 정말 생각할 수록 어이가 없다. 그런데 오늘 시부모님을 뵙고나니 비록 뭔가 해결된 게 없는데도 굉장히 든든하고 다 잘 해결될 것만 같은 기분을 느꼈다. 

 

 

시어머니께서 주신 시나몬 브리오슈랑 김밥 발을 들고 집으로 돌아오면서 생각했다. 

아... 이걸 들으면 시부모님 없는 외국인들은 서럽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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