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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이야기/프랑스 시월드

시어머니의 배 타르트와 함께 한 2021년 마지막 밤

by 낭시댁 2022. 1. 2.

2021년 12월 31일 저녁. 나와 자서방은 시댁에서 저녁을 보냈다.

시어머니께서는 따로 요리하신건 없다(?)고 하시며 가볍게 샴페인과 안주를 즐기자고 하셨다. 그거면 충분합니다요! 😋

자서방은 맥주를 마시고 있어서 시동생을 포함한 우리 넷만 샴페인을 마셨다. (동서는 친정오빠네서 식사를 하고 온다고-)

시어머니께서 푸아그라와 함께 바삭하게 구워진 토스트를 내오셨다. 😍

푸아그라맛을 느끼는데는 이런 얇은 빵이 제격인것 같다.

문득, 샴페인과 푸아그라에 행복해 하는 내 모습을 보니 프랑스에 잘 적응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도 모웬은 이 무릎 저 무릎, 자기를 불러주는 곳이면 어디든지 폴짝 폴짝 뛰어다녔다. 반면 이스탄불은 그저 얌전히 앉아서 누군가가 먼저 쓰다듬어주길 소심하게 기다릴 뿐이다.

푸아그라를 한두조각씩 먹었을때 시어머니께서는 뚜르뜨 (Tourte: 프랑스어 발음으로 뚝뜨에 가까운것 같다.)와 하몬(Jamon)을 내 오셨다. 푸아그라부터 오늘은 죄다 자서방이 좋아하는 음식들 뿐이네. 남편의 크리스마스는 아직 끝나지 않았나보다.

하몬은 시부모님께서 세비야 여행중에 많이 사오셨던 그거라고하셨다. 나는 하이라고 불렀는데 다들 하이라고 발음했고 자서방 말로는 그냥 프랑스에서 말하는 정봉 (jambon)이랑 같은건데 스페인에서는 하몬이라고 부를 뿐이라고 알려주었다. 프랑스식, 스페인식 발음에 한국식 발음까지 머릿속에서 뒤죽박죽이 되는 중이다ㅋ

처음에는 조금만 마시겠다고 했던 샴페인을 결국 내가 두잔가득 마셨을때 자서방이 레드와인을 오픈했다.

샴페인파 시어머니께서는 프랑스에서는 샴페인을 즐길 줄 알아야 된다고 하시며 (물론 나는 "자서방은 샴페인 안마시는데요?" 라고 말대꾸를 따박...) 시동생에게 샴페인을 한병 더 오픈하라고 시키셨다. 하지만 다들 표정을 보니 자서방의 레드와인으로 대세(?)는 기울어져 있었다.

샤또 라뚜르 까르네 Château La tour Carnet- Grand gru classé

시아버지께서 리들에서 30유로쯤 주고 사셨다는데 한국에서는 50유로가 넘을 것 같다. 자서방은 만족스러운지 고개를 끄덕끄덕했고 샴페인을 마시던 우리는 레드와인 잔을 가져와서 곧 다함께 고개를 끄덕끄덕했다.

보르도와인을 유독 좋아하는 자서방 말로는 그랑크뤼 클라세라고 써져있으면 맛있는 확률이 높다고 말했다.

고양이들이 벽난로 앞에서 점점 녹아내리고 있을 무렵 시어머니께서는 직접 구우신 배 타르트를 자르기 시작하셨다.

우와 이 비주얼은 무엇인가요?! 나는 직접 구우신게 맞냐고 두번이나 여쭈었다.

"그럼, 당연히 내가 구웠지! 배랑 밤크림을 넣었단다. 분명 모두들 좋아할거야."

구운 배의 식감이 상상이 안가서 긴가민가했는데 한입 먹어보니 부드러운 밤크림과 아주 잘 어울렸다. (그러고보니 유럽의 배는 한국배 처럼 아삭거리지 않는다.)

배와 밤이 만나서 이런 맛이 나올 줄이야! 너무 맛있었고 자서방은 심지어 배부르다더니 큼직하게 한조각을 더 잘라와서 먹기도 했다.

떠들고 마시고 먹다보니 어느새 밤 11시가 다 되었다. 친정오빠네서 저녁을 먹고 돌아온 동서(킄 동서라니 어감이 어색하네)와도 반갑게 인사를 나누었다. 모두 같이 둘러앉아서 티비에 나오는 특집 방송도 보다가 자서방과 자고갈까 말까를 잠시 갈등했지만 결국 우리는 무거운 배를 부여잡고서 시댁을 나섰다.

"본 아네, 본 성떼!" 하고 서로 인사를 나누며 헤어졌는데 직역하면 좋은 해, 좋은 건강이라는 말이다.

자서방과 손잡고 집으로 돌아오며 2021년의 마지막 밤 공기를 기억속에 꼭꼭 저장했다.

2022년에는 부디 코로나 걱정없이 한국에 놀러가게해주세요....

모두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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