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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이야기/연애결혼

내 생일에 초대받지 못한 남편

by 낭시댁 2023. 5. 3.

내 생일이 일주일 앞으로 다가왔을때, 자서방이 물었다. 

 

"생일선물 뭐 해줄까?" 

 

"우리 서로 안주고 안받기로 했잖아. 저축해야지... 대신에 나 한가지 원하는게 있어." 

 

돈이 안드는 간단한 선물 한가지를 요구했다. 

 

"생일전 토요일에 한국인 친구들 몇명만 집으로 초대해서 내가 한국음식 만들어 주고싶어. 다들 한번씩 아프고 맘고생도 하더라고. 한국음식 먹으면서 한국어로 수다떠는 자리가 필요할 것 같았어." 

 

"그거야 어려운일이 아니지. 그걸 왜 선물이라고 말하는거야?" 

 

"그날 당신이 먹을만한 음식이 없을것 같아서..." 

 

자서방은 이해가 안간다는 듯 몇초간 허공을 응시하다가 말했다. 

 

"나는 신경쓰지마. 와이프 원하는대로 해. 그래도 내가 먹을수 있는게 있을거야. 와인 마시면서 앉아 있으면 돼." 

 

자서방은 내가 원하는걸 아직 눈치채지 못한 모양이다. 아무대답을 못하고 있는 나를 보며 자서방이 물었다. 

 

"그날 음식은 어떤걸로 할건데?" 

 

"떡볶이, 김밥, 김말이... 그리고 친구들이 미역국이랑 치즈케잌을 가져온댔어." 

 

어묵, 김, 매운음식, 치즈... 세상 까다로운 우리 남편이 먹을수 있는 음식은 하나도 없는것이다. 자서방은 헛웃음을 지으면서도 내가 원하는대답이 무엇인지 갈피를 못잡고 있었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해야겠군. 

 

"그날 점심때 친구들을 만나러 나가는게 어때?" 

 

그러자 자서방의 표정이 환해졌다. 

 

"아, 정말 그래도 돼?" 

 

말이 안통하고 음식이 입에 안맞아도 옆에 같이 있어야 되는건줄 알고 긴장했었나보다.

 

"응 그게 내가 원하는 선물이야. 우리끼리 한국음식 먹고 한국어로 실컷 수다떨수 있게 자리를 피해줘." 

 

"대신 친구들이랑 마실 샴페인 사다줄게"

 

"아니야, 나도 그렇고 다들 샴페인 별로 안좋아할 것 같애. 다들 술 자체를 거의 안마시더라고."  

 

자서방은 그래도 생일파티인데 샴페인이 필요하지 않겠냐며 몇번이나 물었는데 나는 거절했다. 

 

 

한편 자서방은 친구들에게 연락을 해서, 토요일날 비디오게임 약속을 잡았다. 

 

"컴퓨터 다시 조립해야겠다. 원래 노트북만 가져갔는데 이번에는 제대로 해봐야겠어." 

 

그렇게 남편은 컴퓨터 부품을 주문하고 일주일내내 틈틈히 조립을 했다. 뭔가 더 신나보이는건 내 느낌이겠지... 

 

*자서방과 친구들은 학창시절부터 동네 사무실을 임대해서 일주일에 한번씩 모여 컴퓨터게임을 했다고 한다. 지금은 멤버들이 늘었고 아들딸들까지 데려와서 친목을 다지는 사랑방이 되었다. 

 

남편의 오랜 취미 중 하나가 바로 이 컴퓨터 조립인데 한동안 잊고 지내다가 이번에 오랜만에 다시 시작했다. 한번은 타는 냄새가 나서 나는 얼른 무스카델을 안고 침실로 도망갔다. 자서방의 무사를 빌며... (부품이 중국산이라고 하길래 터지는건가 싶어서...)

 

금요일 저녁에 돌아온 자서방의 손에는 화이트와인 두병이 들려있었다. 시댁 지하실에서 가져온건가?    

"웬 와인이야? 사온거야?" 

 

"아니, 와인가게에서 공짜로 주더라." 

 

우리 남편의 유머스타일이다. 충청도식 이랄까... ㅡㅡ; (가령 남편이 욕실에서 나오는데 내가 뭐했어? 라고 물으면 욕실에서 테니스쳤어. 이런다.ㅋㅋ 당연한걸 물어본다고 생각할때 저렇게 대답하는데 요즘엔 나도 똑같이 갚아준다ㅎㅎ)  

 

"우리 술 잘 안먹어서 와인 필요없다니까 뭐하러 사왔어..." 

 

"술은 안좋아해도 다들 이건 좋아할거야. 내가 우리 와이프가 달달한 무스카와인 좋아한다고 말했더니 와인가게 직원이 이걸 적극 추천하더라고. [아내분이 이걸 드시면, 와! 내가 원하는 바로 그 맛이야!] 라고 말할거래.ㅎㅎ 나중에 정말 그렇게 느꼈는지 꼭 알려줘 😆" 

 

 

비록 본인은 초대받지 못했지만 와인까지 챙겨주고 참 고마운 남편이다. 

 

 

"무식아, 내일 엄마 친구들 오는데 너도 눈꼽 좀 떼자."

귀찮아...

 

 

"낯선 손님들이 두명 이상이면 어차피 꽁꽁 숨어서 안나올텐데 뭐..." 

 

하긴 그러네. 한명이면 몰라도 여자들 넷이 모여서 한국어로 수다가 폭발하면... 무식이는 절대 안나오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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