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덧 반년이 흘렀네요. 인사가 늦어서 죄송합니다.
그동안 블로그는 저의 아픈 손가락이었습니다. 다시 돌아가야하는데 이곳에는 제가 돌아갈 수 없는 과거가 가득한데다 여러분이 기대하시는 포스팅을 더이상은 쓸수가 없는 상황이 되어 댓글조차 읽어볼 자신이 없었답니다. 실수로라도 휴대폰에서 티스토리 앱을 누르게되면 소스라치게 놀래서 얼른 닫아버리곤 했습니다. 무슨일이 있었는지 털어놓으면 다들 고개를 끄덕이며 이해해 주실거라 믿지만 또 한편으로는 어떤식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가야 할지 막막해서 꽤 오랜기간 고심했습니다.
수개월 전, 마지막 포스팅을 작성하던 무렵 제 세상의 하늘이 와르르 무너져내렸습니다. 신중하게 최선을 다해 쌓아올린 삶이라 쉽게 무너질 것 같지 않았는데 말이지요. 어느분께서 댓글로 말씀하셨듯 어떤일이 있어도 의연하게 대처할 수 있을줄 알았는데 삶은 정말 한치앞을 알 수 없는 거더라구요.
세상이 뒤집히고 있는데 홀홀단신으로 맞서는 기분이랄까요... 태어나서 느껴본 적 없는 슬픔과 두려움이었습니다. 블로그에라도 털어놓고 도움을 받아볼까 하는 마음이 들기도 했지만 이곳은 누구나 다 들어와서 읽을 수 있는 공간인지라 그러지를 못했습니다. (오랜기간 댓글로 소통해온 분들만 따로 골라서 글을 공개할 수있는 기능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해보았습니다.) 무엇보다 제 글을 읽고 제 주변사람들에 대해 함부로 말할까봐 걱정되기도 했습니다. 친정부모님이나 친한 친구들에게도 한동안은 제 상황을 털어놓지를 못했답니다. (물론 친정 부모님께는 근심을 드리고 싶지 않은 이유가 컷지만요.)
아 저는 이제 새로 태어났습니다.
비가 와도 바람이 불어도 이제는 모두 삶의 선물로 받아들일 준비가 된 기분입니다.
두달쯤 밤낮으로 울기만 하다가 어느순간 거짓말처럼 눈물이 뚝 그치고 모두 내려놓기로 결심을 한 계기가 있었는데 그때부터 인생이 가벼워지고 걱정근심이 사라져버리더라구요. 작은시련들은 여전히 끊이지 않지만 적재적소에 짠하고 필요한 도움이 나타나는 것을 보고 이제 앞으로는 큰 욕심없이 순간순간에 집중하며 더 많이 웃으며 살기만 하면 되겠구나 하고 느끼는 중입니다. 제 인생을 항해함에 있어 목적지를 정하지 않고 바람이 데려다 주는 곳으로 기꺼이 따라가다가 삶이 던져주는 크고 작은 선물을 기대하며 살겠다는 뭐 그런 마음가짐이랍니다.
늦었지만 근황을 간략히 전해드리자면-
제 사업의 꿈은 사정상 접어야했습니다. 대신 저는 저의 절친이자 든든한 지원군인 고용주 SK와, 사랑하는 동생M과 셋이서 즐겁게 일하며 김밥도 말고 닭강정도 열심히 튀기고 있습니다. 게살버거를 만드는게 좋아서 월요일이 기다려진다고 외치는 스폰지밥을 떠올리시면 딱 일치합니다! (제가 닭강정을 튀기거나 심지어 빠른속도로 당근을 썰어도 옆에서 손뼉을 쳐주는 환경에서 근무합니다ㅋ) 손님이 많으면 많아서 좋고 손님이 없을땐 한가해서 또 좋다고 하면서요. (손님들과의 재미난 에피소드들이 참 많답니다! 프랑스 손님들은 정말 친절해요.)
학점은행제로 공부하던 교원자격증 과정도 드디어 모두 끝났고 오늘 최종 성적을 받았는데 성적이 너무나 후해서 기분이 참 좋습니다. 그동안 일과 병행하며 빡세게 공부한 보람이 있네요.
블로그는 계속해서 작성하겠지만 많은 분들께서 기다리시던 예전과 같은 일상이야기는 더이상 쓰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궁금한 것이 많으시겠지만 저는 저의 방식대로 저의 이야기를 풀어나갈 예정입니다. 댓글에 일일이 답변을 드리지 못하는 점도 양해부탁드립니다. (그래도 모든 댓글은 꼼꼼히 읽을것입니다. 예전에는 제 활력소였는데 지금은 솔직히 댓글이 좀 두렵기도 하네요ㅎㅎㅎ)
제가 블로그를 다시 쓴다고 했더니 친정언니와 동생M은 저를 말리더라구요. 한국인 정서로는 받아들이기 어려울수있는데다 저를 아끼는 사람들만 읽는 것이 아니라서, 저를 깍아내리려는 사람들에게 좋은 가십거리가 될 뿐이라나요. 하지만 저는 지금의 제 자신이 너무 자랑스러워서 여러분께 제 이야기를 꼭 들려드리고 싶은걸요. (실망하시는 분들께는 미리 사과드리겠습니다.)
폭풍이 세차게 몰아치고 난 후 무지게가 떠올랐습니다.
파란하늘에 햇빛이 짱짱하다가도 우울한 비가 가끔 내립니다. 하지만 이제 저는 그 비가 오래오래 지속되지 않는 다는 것을 알고 있으니 괜찮습니다.
오랜 공백에도 저를 걱정해 주시고 기다려주신 분들께 너무너무 감사드립니다.
삶의 의미는, 그리고 행복은, 함께 울고 웃을수 있는 사람들과 자주 교류하며 사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하아... 그럼 이제 어디서부터 이야기를 시작해야 하려나요.
오늘밤은 잠 좀 설치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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