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여름 어느 저녁 나는 강변 노천 펍에서 에리카와 시원한 맥주를 마시며 강바람을 음미하고 있었다.
그때 링크인을 통해 낯선이가 이메일을 보내온 것을 발견했다.
[당신 남편은 믿을만한 사람이 못돼요.]
이렇게 시작하는 이메일에는 자신이 내 남편과 2016년부터 2022년까지 연인사이였다고 주장하는 내용이 들어있었다. 나는 별 미친 사람도 다 있네 하며 에리카에게 보여주며 같이 웃었다. 우리는 2020년에 프랑스에 들어왔고 남편은 우울증으로 소파에 누워서 지내는데 그건 몰랐나봐 하면서- 심지어 방콕에서 살던 시절에도 남편은 외박 한 번 한 적이 없었고 퇴근하면 집으로 칼같이 귀가하곤 했었다.
나는 남편에게도 이메일의 스크린샷을 보내주었고 별 코멘트는 붙이지 않았다. 그냥 보고 웃으라고 보내준건데-
집에 돌아갔더니 남편이 똥마려운 강아지처럼 내 뒤를 졸졸 따라다니면서 평소와 다르게 횡설수설 아무말이나 이어갔다. 에리카랑 잘 놀았어? 밥은 먹었어? 내가 파스타 해줄까?
이 사람이 오늘따라 왜이리 기운이 넘치나...?
"근데 그 여자는 당신 이름은 어떻게 알고 있는걸까? 혹시 아파트 구입할 때 태국은행에서 송금하면서 정보가 유출된 건 아니야? 아님 당신 누구한테 송금 부탁한 적은 없고?"
무심코 내가 던진 이 한마디에 남편은 그건 아닌것 같다고 대답하고는 쓸대없이 허둥지둥 휴대폰을 꺼내서 태국은행 앱을 열어보기 시작했다.
그때 나는 봐 버렸다. 남편의 손이 덜덜 떨리고 있던 것을.
쿵
내 심장이 떨어지는 소리였다.
나는 아무 내색하지 않았고 더이상 캐묻지도 않았다.
남편은 나를 계속 따라오면서 말했다.
"링크인 계정을 닫는건 어때? 쓸대없는 이런 이메일 또 받으면 신경만 쓰이잖아? 미친사람이 많아. 닫고 새로 계정을 오픈해도 되고."
싫다고 하는데도 남편은 계속해서 링크인계정을 닫으라고 나를 설득했다.
아... 수년전에도 남편때문에 페이스북 계정을 닫았었는데 이제서야 이유를 알것 같았다. 직장 여자동료들이 내 페이스북에서 결혼사진이며 우리 일상 사진들을 보고는 자기한테 자꾸 얘기한다며… 개인정보 유출도 염려된다나… 어차피 sns에 별 미련이 없었으니 부탁하는대로 그냥 닫았다. 지금 생각해보니 그 여자때문이었네.
나는 링크인을 통해 그 여자와 밤새 메일을 주고받았다.
방콕에서 사업을 하는 외국여자였다. 내가 남편보다 10살 어린데 그 여자는 나보다도 5살이나 더 어렸다. 역시나 오래전 내 페이스북에서 결혼사진도 봤고 나에 대해 알고 있었다고 했다. 가장 충격적인것은 그들이 만난 시점이었다. 우리 커플이 가장 행복했던 2016년 4월. 결혼을 코앞에 둔 시점이었는데… 한국 가족들에게 처음으로 인사하러 왔던 그때 남편은 나보다 일주일 늦게 한국에 들어왔었는데 딱 그때 둘은 데이트 앱에서 만났다고 한다. 정황상 보니 그때 몇번 만났고 몇년간 서로 연락을 하지 않다가 2018년 내가 한국에 들어갔을때 또 만나서 베트남 여행도 갔던가보다. 그 여자는 우리 아파트에 와서 내 침대에서여러번 잤다고 말했다. 침착하게 질문을 이어갔더니 결국 그 여자는 나더러 미안하다며 그만 대화하고 싶다고 했다. 자신은 남편이 방콕으로 다시 돌아올 줄 알고 계속 기다렸는데 작년부터 답장이 끊어져서 배신감에 뭍혀 살다가 구글로 내 이름을 검색했고 업데이트 된 내 프로필을 보고서 배신감에 남편의 인생을 망치고싶어 연락을 했던거라고 했다.
이상하게도 나는 그 여자한테는 조금도 화가나지 않았다.
그날 밤 나는 한 숨도 못 잤고 숨도 잘 쉬어지지 않았다.
다음날 아침 남편과 대화를 시작했다. 흥분하면 남편이 말을 끝까지 안할 것 같아서 최대한 침착한 표정으로 물었다.
"나 그 여자랑 밤새 이메일 주고 받았어."
남편의 대답은 내 예상을 벗어났다.
".... 그럼 이제 다 알게되었네."
아니라고 발뺌할 줄 알았는데...
그 여자 때문에라도 태국을 빨리 떠나야겠다고 생각했단다. 한번도 그 여자에게 마음을 준적이 없었음에도 죄책감때문에 우울증이 더 심했다고.
"그 여자는 작년까지도 너랑 연인이었다고 믿더라. 니가 다시 돌아올거라고 믿으며 계속 기다렸는데 연락이 없어서 화가나서 니 인생을 망치고 싶어 나한테 연락 한거래."
"나는 그 여자가 이렇게까지 미친여자인지 몰랐어. 그냥 떠나오면 당연히 잊겠지 싶었는데 자꾸 연락이 오더라. 가끔 답장해준게 전부야. 너도 알잖아. 태국 살 때 나는 외박 한 번 안했잖아..."
"내가 용서할 수 없는건 말이야. 우리가 가장 행복했던 시절에 니가 다른 여자를 만나야겠다고 결심했다는 점이야. 데이팅앱에서. 그것도 우리 가족들을 만나러오기 1주일 전에. 그리고 얼마 후 너는 나랑 결혼을 했지. 넌 우리 가족까지 우숩게 본 거야. 우리 결혼 자체가 거짓에서 시작되었다는게 나는 참을 수가 없어.“
남편은 자신도 그 멍청한 행동에 이유를 잘 모르겠다고 했다. 일회성으로 끝낼 예정이었는데 그 여자가 자꾸만 연락이 왔다나.
나는 잔잔하게 말했다. 이걸로 우리 끝인거 알지...
엎드려서 엉엉우는 남편을 두고 나는 짐을 싸서 집을 나갔다. 호텔과 에어비앤비에서 3일밤을 보낸 후 결국 나는 집으로 다시 돌아왔다. 1년간 기다렸던 정자은행에서 기증을 받을수 있게되었다는 소식을 남편이 보내왔던 것이다. 남편은 자신이 평생 사랑으로 되갚을테니 이 기회를 놓치지 말아달라고 사정했고 나 역시 임신을 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를 놓칠수가 없었다.
연락도 없이 돌아와서 현관 벨을 눌렀더니 문을 열어주던 남편이 내 얼굴을 보자마자 무너져내리며 엉엉 아이같이 울었다.
진짜 미안하다고 자기가 멍청했다고 다시는 실망시키지 않을거라고 돌아와줘서 너무나 고맙고 사랑한다고.
남편은 내가 없는 3박 4일동안 음식은 입에도 안댄것 같았다. 약봉지만 흩어져있었다. 중독된 약이 있어서 그걸 끊기위해 수년간 중독전문의에게 상담을 받고 있었는데 그 약을 다시 손댄 것이다.
나는 그날 저녁 파스타를 요리해서 남편과 마주 앉아 꾸역꾸역 먹었다.
정신이 조금 드는지 남편이 울먹거리며 말했다.
"넌 나를 버리는건 이해하지만 무스카델까지 버리면 안돼지. 무스카델은 데려가야 할 거 아니야."
남편의 말에 내가 말했다.
"무스카델은 여기에 남아있어야지. 나는 혼자서 무스카델을 부양할 자신이 없어."
사실 무스카델은 심장이 안좋아서 경과를 지켜보고 있던 상태였다. 내 한 몸도 감당하기 어려운 마당에 아픈 무스카델까지 책임질 자신이 없다.
"나는 너를 용서하기는 힘들어. 하지만 떠나는건 더 못하겠어. 니 옆에서 같이 늙으면서 평생 널 구박할거야."
남편은 내가 한국으로 떠난줄 알고 무서웠다며 몇 번이나 아기처럼 울었다.
그렇게 우리는 기증받은 정자로 수개월동안 인공수정을 4차례 이어갔다. 아침이면 우울증 증세가 심각해지는 남편에게 매번 이른아침 커다란 탱크를 받아서 정자 센터까지 갔다가 다시 돌아와 인공수정을 받는 과정은 쉬운 일이 아니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편은 최선을 다해서 협조 해주었다.
나는 다시금 아기와 함께 행복한 가정을 꾸리는 꿈을 간절하게 꾸고 있었다. 집착도 점점 커졌다. 아기가 있어야만 행복한 가정을 꾸릴 수 있을것 같았다.
하지만 결국 임신은 되지 않았고 두 번의 인공수정 기회가 더 있기는 했지만 4차 시도 후에는 확률이 더 줄어든다며 남편과 의사가 먼저 고개를 가로 저었다. 헛수고일거라며 나를 설득했다.
그동안 쌓아왔던 커리어도 포기했는데 엄마가 되는 꿈도 사라졌다. 이제는 모아둔 돈도 없다.
나에게도 결국 우울증이 찾아왔는데 남편은 나보다 더 중증 우울증 환자라 내 상태는 안중에도 없는듯 보였다.
방에서 혼자 엉엉 울어도 봐주질 않길래 어느날 저녁 내 눈이 뒤집혔다. 남편에게 막말을 쏟아냈다. 너때문에 내 인생을 망쳤어. 널 만나지 않았으면 좋았을텐데 이런 끔찍한 말들 말이다. 결국 우리 결혼 생활은 빠른 속도로 파멸하기 시작했다.
남편은 내가 영영 자신을 용서하지 못할거라고 했다. 그러니 차라리 나를 놔주겠다고 했다. 남편의 결심은 단호했다.
이런 우울한 이야기 재미없으실텐데 죄송합니다. 다음에 이어질 즐거운 에피소드들을 위해 불가피한 내용이라고 생각되어서 큰 결심을 하고 쓰게 되었습니다.
몇 달동안 속에만 꼭꼭 눌러두었던 상처 가득한 기억인데 다시 끄집어 내다보니 눈물도 몇방울 흘리면서 작성했답니다. 어떤 상처는 속에 뭍어두는게 좋다고도 하지만 이렇게 다시 끄집어내서 글로 표현을 하는 과정에서 신기하게도 상처가 기체처럼 흩어지는 느낌을 느끼고 있습니다. 속 깊은곳에서 더 오래 썩어 악취가 나기전에 이렇게 용기내 상처를 마주할 수 있게되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습니다. 글로 쓰면서 상황과 생각이 다시금 정리되는 느낌도 저에게 도움이 되고요.
글을 쓴다는건 이래서 좋은건가봅다. 일종의 명상처럼 꾸준히 써야겠습니다.
일전에도 제 행복의 원천이 바로 글쓰기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자주 들곤 했었는데 역시 다시 돌아오기를 잘한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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