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은 위자료는 커녕 재산분할도 없을거라고 했다. 내가 한국으로 돌아가면 매달 조금씩 돈을 부쳐주겠지만 얼마가 될 지는 장담할 수 없다고도 했다.
아파트를 구입할때 남편은 나더러 돈 걱정은 말라며 자기가 다 알아서 한다고 했는데, 시부모님께 돈을 빌리는 과정에서 일부는 유산을 미리 받은 것인데 그때 공증인과 서류를 작성한 게 있었다. 당시 나에게도 separation de bien이라는 서류를 서명하도록 했다. 남편은 시부모님께서 요구하신 거라고 했고, 어차피 이혼할 거라는 예상은 눈꼽만큼도 없었기 때문에 별 생각없이 서명을 했드랬다. 그 서류는 이혼시 재산 분할에 대한 문서였는데 그때문에 나는 어떠한 재산분할도 받지 못하게 된 것이었다. 어차피 위자료는 소송해봤자 얼마 못받는다고 하길래 그냥 나는 다 포기했다.
그 누구에게도 상황을 말하지 못하고 있을때였는데 프랑스인 친구 한 명에게 용기내서 털어놓기로 다짐을 했다. 이혼을 하게 되면 내 비자상황이 어떻게 될 지도 너무 걱정이 되는데 내가 아는 것도 없고 누군가에게는 털어놓고 고민상담을 할 필요가 느껴졌기때문이다.
그녀에게 메세지로 [나 남편이랑 이혼할 것 같아. 얘기 상대가 필요한데 혹시 너 시간 있어?]라고 보냈다. 그녀는 보쥬에서 휴가를 보내고 있는 중이라 다음주에 돌아올거라고 했고 그럼 돌아오면 연락을 달라고 대화를 마무리 했다. 그런데 다음날 아침 장문의 메세지가 그녀로 부터 왔다. 주된 내용은 이런거였다.
[난 네가 네 남편에게 나에 대해 말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네 남편은 총을 가지고 있고 내가 어디에 사는지 알고 있잖아. 난 지금 너무 무서워. 도움이 필요하면 나 대신에 네 남편이 주소를 모르는 친구에게 요청하거나 혹은 네 가족에게 말하는게 좋겠어. 나는 총에 대한 안좋은 기억이 있어.]
정말 생각지도 못한 반응이었다. 우리 남편의 유일한 취미가 사격인데... 아주 커다란 연습 용 장총이 있기는 하다. 하지만 그런 일을 저지를 배짱도 없는 사람인데다 무엇보다 내 친구가 어디 사는지 남편은 정확히 알지도 못한다. 그 동네까지 나를 데려다 준적은 있지만 매번 길을 헤매느라 한참 뱅뱅 돌다가 결국 근처에서 나 혼자 내려서 걸어갔고 그건 친구도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동네 집들이 비슷해서 찾기 어렵다고 본인도 말하기도 했다. 나는 내 친구에게 걱정말라고, 그리고 내 남편은 사이코패스가 아니라고 말했다. 그후로 우리는 서로 연락을 끊었다.
아침부터 이 메세지를 받고서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난 정말 세상에 혼자구나…
혼자서 마음 고생을 하던 나는 결국 알마와 에리카에게 모든 일을 털어놓았다. 그녀들은 왜 이제서야 말하냐며 서운함에 화를 냈다. 나는 펑펑 울면서 친구들에게 기대 울었다.
"크리스마스때 너 혼자 집에 있었다고? 왜 말 안했어. 우리집에 아무때나 와도 된다고 내가 말했잖아... 우리 가족들이랑 보냈으면 좋았을텐데! 아 속상해 진짜! 내년 노엘때는 꼭 우리집으로 와, 알았지?"
"이런일은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어. 내 남편도 내일 당장 알수 없는 이유로 이혼을 하자고 말할수 있다는 거지. 그러니 이런일로 주눅들지마. 앞으로는 뭐든 우리한테 다 말할거라고 약속해 줘. 그래야 우리가 도와주지. 일단 너는 법률자문을 먼저 받아야 해. 차근차근 같이 알아보자."
에리카는 그녀의 남친인 마이크와 함께 무료로 법률자문을 받을 수 있는 곳들을 알려주었고 알마는 그녀의 남편과 함께 수시로 나에게 전화를 걸어 내가 괜찮은지를 확인했다. 그녀의 남편은 나라에서 아주 저렴한 가격에 제공되는 임대 아파트를 신청하는 것을 알려주었다. 독일인 출신인 그는 오래전 프랑스인 전부인과 이혼했을 때 딸 둘을 부양하며 경제적으로 어렵게 지냈었는데 그때 임대 아파트에 들어갈 수 있어서 큰 도움이 되었다며 본인의 경험을 들려주었다.
무료 법률 자문을 받으러 갔을 때 은퇴한 변호사인듯한 할머니께서 내 사정을 들은 후 하시는 말씀이 내 비자가 배우자 비자지만 내 명의로 집을 임대해서 살고 있다면 문제가 없을거라고 하셨다. 문제는 당시 직장을 다닌지 두 달밖에 안되었기때문에 보증인 없이는 집을 구하는 게 어려웠고 일단 최소 석달치 급여명세서를 제출할 수 있을때까지는 독립하지 말고 그 집에서 버티라고 조언하셨다. 당시 우리 시어머니는 나더러 본인의 친구집에 머물 수 있도록 해 준다고 하셨었는데 남편과 동의하에 내 스스로 집을 나가는거라는 내용의 서류를 작성해서 서명하라고 몇번이나 보채셨다. 그 말을 들은 할머니는 눈을 번쩍 뜨시며 시어머니를 절대 믿지 말라고 하셨다. 어떤 서류에도 이제는 서명하지 말라고 하시며, 잘못 사인했다가 그쪽에서 악용하면 내가 프랑스에서 추방 될 수도 있다고 하셨다.
며칠 후 에리카와 마이크는 최근 그들의 친구인 기욤이 친구들 3명과 함께 새로운 아파트로 이사를 했다며 집들이에 함께 가자고 했다. 기욤은 경시청에서 근무를 하며 이민자들의 국적변경 업무를 했기 때문에 나에게 필요한 정보를 줄 수 있을거라고 했다. 손을 내밀었더니 내가 필요했던 도움의 손길이 저절로 찾아오는 기분이었다! (기욤은 내 비자를 보더니 문제가 없으니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다만 비자를 받은지 1년이 채 안된 상태라 일년이 되는 한 달쯤 더 버티다 나오면 더 안전할거라고 했다. 지금 나는 직장이 있고 세금도 내고 있기 때문에 최악의 상황에서는 취업비자로 바꾸는 방법도 있겠지만 내가 갖고 있는 비자는 영주권이라 가장 좋은거니까 아무일 없다고 장담해주어서 마음이 놓였다. 대신 10년후에 갱신할 때 더이상 혼인 상태가 아니라면 비자를 바꿔야 할 지도 모른다고... 뭐 아직 9년이나 남았으니까 그 전에 무슨수가 생기겠지.)
그리고! 내 친구이자 고용주인 SK의 도움을 빼고는 말할 수가 없다. 내 사연을 처음 들은 그녀는 깊이 공감해 주며 왜 진작 말하지 않았냐며 역시 다그쳤다. 그리곤 이렇게 말했다.
"넌 하늘이 구한거야. 올해부터 좋은일만 있으려나보다. 딴 남자랑 살아보는 것도 나쁘지 않아. 이혼 별거 아니야. 네가 임신이 안된게 다 이유가 있었네. 너처럼 예쁘고 매력적인 애가 무슨 걱정이니? 내 말 들어. 이제 너는 불행 끝 행복시작이야."
그녀 역시 전남편과 외도로 인해 이혼을 한 경험이 있었다. 나와 같은 비자 문제를 안고서 프랑스에서 학업과 취업을 훌륭하게 이뤄낸 후 지금의 남편을 만나 두 아이의 엄마가 된 동갑 친구인 그녀의 조언이 나에게는 그 어떤 말보다도 큰 힘이 되었다. 나와 비슷한 경험을 한 그녀를 딱 이 시기에 만나 각종 도움을 받게된 게 과연 우연일까. 그녀가 없었더라면 나는 아마 프랑스를 떠났을 것이다. 딴 사람도 아니고 그녀가 이 일은 별일이 아니라고 자꾸만 반복해서 말해주니 한결 가벼워지는 기분마저 들었다.
"한국에 뭐하러 돌아가니? 프랑스에서는 이혼녀 아무 흠도 아니야. 너 좋다고 따라다닐 남자들이 널렸다니까? 너 이제 진짜 행복 시작인거야! 비자때문에 네 이름으로 직접 사업은 못하겠지만 앞으로 나랑 끝까지 같이 가 보자. 나는 잘되면 절대 혼자만 잘되지 않아. 고마운 건 잊지 않는다고."
그녀는 출산 후 사이즈가 안맞는데 미련을 갖고 처분하지 못하고 있었다며 예쁜 옷과 신발들을 계속해서 갖다주었다. 그리고 나에게 꼭 맞는 모습을 보며 예쁘다며 기뻐했다. 그녀는 뭐든지 아낌없이 퍼주었다. 덕분에 나는 새 사람으로 거듭났다. 이제는 예쁘게 화장도 하고 화려한 색깔의 옷을 즐겨입게 되었다. 요즘은 만나는 사람들마다 얼굴이 좋아졌다고 무슨일이냐고 묻곤 한다. 얼굴에서 빛이 난다는 소릴 몇 번이나 들었는지!
집을 구할 때 보증인이 없어서 마음에 꼭 드는 집을 몇 곳이나 놓쳤는데 동생 M의 남자친구가 나를 위해 보증인이 되어주겠다고 자처하기도 했다. 남편이나 시부모님도 안해주던데… 결코 쉬운 일이 아닌데 어찌나 고맙고 감동스러웠던지...
운좋게 시내 한복판에 작은 스튜디오 아파트를 구했는데 젊은 집주인 커플은 내 상황을 듣더니 너무 안타까워하면서 주택보조금(CAF) 제도를 알려주었다.
"저는 정규직 직장도 있는데 보조금을 받을 수 있나요?"
집주인의 여친은 "저도 직장 있는데 받고 있어요. 제 담당자의 연락처를 드릴게요. 집세 말고도 전기세가 한달에 50유로 이상 나갈텐데 보조금이 꽤 도움이 될 거예요." 라고 말했다.
생각지도 못했는데 혹시나 하는 마음에 인터넷으로 직접 신청을 해 보았는데 한 달 후부터 매달 월세의 절반에 해당 하는 금액을 지원받게 되었다! 할렐루야! 프랑스 만세!!!!
남편의 도움 없이도 나는 이제 하나 하나씩 도장을 깨어 나가고 있다. 나 혼자의 힘으로는 도저히 못했을 일들이었다. 혼자 끙끙 앓는 대신 주변에 도움을 요청했더니 신기하게도 나에게 필요했던 정보와 도움이 알아서 딱딱 나타나주었다. 이래서 사람은 혼자서는 못산다고 하는 건가보다.
이렇듯 나는 여전히 완벽한 세상에서 살고 있는 중이다.
'2024 새출발' 카테고리의 다른 글
봄이 오고 있었다. (21) | 2024.07.15 |
---|---|
이제는 꽃 길만 걸을거다 (15) | 2024.07.14 |
급하게 찾아온 새로운 인연 (22) | 2024.07.13 |
눈치없이 맛있었던 라떼와 크루아상 (30) | 2024.07.12 |
어렵게 꺼내는 이야기 (48) | 2024.07.10 |
프랑스 젠더... 애매한 순간들 (21) | 2024.07.09 |
내 삶을 더 사랑하게 되었다. (54) | 2024.07.08 |
맑음 흐림 그리고 다시 맑음 (31) | 2024.07.0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