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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새출발

프랑스 젠더... 애매한 순간들

by 요용 🌈 2024. 7. 9.

가게에서 일을 하다보면 정신없이 바쁜 와중에도 배꼽이 빠져라 웃게 되는 상황이 빈번하게 발생한다.
 
우리 가게에서는 카운터에서 주문을 받는데 포장인지 먹고가는지를 구분해서 음식을 준비해 준다. 세사람으로 구성된 그룹의 주문을 SK가 받고 있었고 나는 바로 옆에 서서 음식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런데 웬만한 일에 당황하지 않는 SK가 말을 어버버하고 있었다. 한 명의 주문을 매끄럽게 끝낸 후 다음사람에게 SK가 말을 건네고 있었는데-
 
"당신은 무얼 주문하시겠어요 무슈... 마담...?"  
 
나는 무슨 소린가 싶어 고개를 살짝 들어 앞 사람을 보았다가 웃음이 터져나오는 것을 간신히 붙들어 잡느라 혀를 깨물어야 했다. 앞에는 머리긴 여장 남자가 서 있었던 것이다. 프랑스어로 정중하게 말 할때는 문장 끝에 마담 혹은 무슈(신사)를 붙이는데 무심코 호칭을 붙이려던 내 친구의 회로가 버벅거리고 있었던 것이다. 이럴땐 마담인가 무슈인가... 아... 웃으면 안돼. 내가 여기서 웃으면 저 남자는, 아니 그녀는? 감정이 심하게 상할거야... SK는 그 후로도 습관적으로 붙이던 무슈나 마담을 말 끝에 붙이지 않으려고 혀를 삼키는 소리를 냈는데 그 모습이 너무나 웃겨서 결국 나는 손에 들고 있던것들을 모두 내려놓고 급하게 자리를 떠나야했다. 계단에서 실컷 웃고나서야 숨을 돌릴 수가 있었다!
 

 
우리 가게에 자주 놀러오는 고등학생 소년이 있다. 
아무래도 나와 SK가 그 소년의 베프가 아닌가 싶을 정도로 학교를 마치면 하루가 멀다하고 찾아와서 몇 시간동안이나 수다를 떨다간다. 고민상담을 하기도 하고 자신의 이야기를 하도 많이 들려줘서 우리는 그 소년에 대해 모르는게 없을 정도가 되었다. SK가 늦게까지 일하는 날엔 그녀의 퇴근길을 함께 걷기도 하고 내가 늦게 퇴근하는 날엔 우리 집앞까지 함께 걷는다. 파리에서 살다가 작년에 낭시로 전학을 왔는데 아직 친구가 많이 없다고 했다. 그 소년의 어머니는 우리랑 동갑인데(!) 우리 가게에 가끔 소년과 함께 와서 음식을 사먹고 우리에게 아들과 친구가 되어줘서 고맙다고 거듭 말하곤 한다.
 
그 소년은 충격적이게도 본인이 레즈비언이라고 했다. 
 
넌 남자잖아! 어떻게 레즈비언이 될 수 있지? 혼란하다 혼란해. 
 
소년은 남자로 태어나긴 했지만 2년전 레즈비언 관련 영상을 보다가 바로 자신이 레즈비언이라는 것을 깨달았다고 했다. 혼란하다고... 
그러니까 자신은 여자처럼 꾸미는 것을 좋아하는데 또 남자를 만나는건 싫고 여자가 좋다는거다. 
 
넌 아직 어리니까 뭐든 단정적으로 생각할 필요가 없어. 사춘기때는 별별 생각이 다드는 법이야. 나도 여중 여고를 다니고 연극을 하면서 남자역할을 하느라 머리가 항상 짧았었는데 여학생들에게 인기가 꽤 좋았어. 그때 잠시 혼란을 느낀 적이 있기도 했고. 하지만 졸업하고나니 남자가 좋더라고. 사춘기때 판단은 믿을 게 못 돼. 
 
소년은 내 조언을 귓등으로 듣는 것 같긴 했지만 여학생들에게 인기가 있었다는 말을 들을때 만큼은 두눈이 반짝반짝했다.
 
아, 소년은 그 여장남자 손님에게는 마담이라고 불러주는게 맞다고 한다. 자신역시 마담이라고 불러주는게 좋다면서 말이다 ㅡㅡ; 아 그르셔요...하지만 넌 마담으로 불러주지 않을거다. 메롱
 
 
저녁때 나는 버거씨와 전화통화를 하며 여장남자 손님에 대해 들려주었다. 버거씨는 프랑스인임에도 불구하고 나만큼이나 빵터져서 껄껄 웃었다.
 
"나라도 당황했을 것 같아. 그런데 그 사람들은 특정 성별로 자신들이 분류되는 것을 거부하는 사람들이야. 그러니까 마담인지 무슈인지 아예 안부르는게 맞을거야." 
 
"하지만! 공중화장실을 갈 땐 선택해야 할 거 아니야! 남자 화장실이냐 여자화장실이냐..." 
 
"아, 좋은 질문이야. 하지만 그건 애매하네. 아마도 여장을 하고 있을 땐 여자화장실이겠지....? 그렇다고 남자화장실을 절대 안가는건 또 아닐 것 같고."
 
"나는 프랑스에서 성교육을 하는 방식이 마음에 안들어. 어린 학생들에게 굳이 성소수자에 대한 내용을 교육하고 선택권을 줄 필요 있나? 분명 남자나 여자로 속하지 못하는 성소수자들이 있다는 것을 인정해. 나도 그들을 지지하고. 하지만 말이야 어린시절부터 내 성별을 직접 선택할 수 있다는 인식을 심어주는건 오히려 부추기는 꼴이 아닌가 싶어. 학교에서 어떤 서류를 작성할 때 성별을 선택하는 항목에 제3의 항목이 있다는 말을 듣고 충격을 받은적이 있어." 
 
내 말에 버거씨는 강하게 공감을 했고 꽤 긴 시간 우리는 이 내용으로 토론을 했다. 
 
그나저나 프랑스에서는 나이와 상관없이 친구가 될 수 있어서 참 좋다. 나와 동갑의 엄마를 둔 소년과 친구가 되다니. 얼마전 프랑스 음악축제때 (이날 저녁에는 프랑스 전역에서 길거리 클럽이 열리고 맥주를 마시며 춤을 춘다) 소년은 나와 내 친구들과 함께 어울려 놀았고 (혼자 돌아다니다가 나를 보더니 강아지처럼 달려왔다.) 내가 일찍 귀가한 후에도 소년은 내 친구들과 더 어울려놀았다고 한다. 그래도 내가 음료수를 사준다고 할때마다 완강하게 거부하며 자기 돈으로 사먹고 알콜은 못마신다고 말하는 모습을 보니 집에서 잘 가르쳤구나 싶고 대견해보였다. 앞으로도 친하게 지내야겠다.
 

낭시 la fête de la musique 현장. 나도 맥주병을 들고 길에서 몸을 좀 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