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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이야기/한국

산부인과 과잉진료 체험담

by 요용 🌈 2017. 10. 8.

태국에서는 경험상 어느 병원에 가든지 약처방이 과하다. 증상이 다 낫고나서도 집에 쓸모없은 약들이 자꾸만 쌓이게 된다. 자서방 말로는 의사들이 커미션때문에 그러는거라고 하더라. 병원에 자주 가진 않지만 자서방이 따라오는 날에는 의사가 약 처방할때 옆에서 미리 보고 "집에 있으니" 이것저것 다 빼달라고 요청해주곤 한다.

한국에서는 치과빼고는 그렇다할 과잉진료를 당해 본적이 없었는데 바로 며칠전에 산부인과에서 그걸 경험했다.

 

나는 산부인과 가는걸 무척 꺼려하지만 이번에 집으로 자궁경부암 무료검진 안내서가 왔길래 그거때문에 동네에 있는 L산부인과를 가게 되었다. 거기로 간 이유는 단순히 가깝고 여자의사라서- 솔직히 평은 안좋던데 뭐 나야 무료 검진만 받으면 되니까-
근데 그게 아니었다. 조직 채취하면서 여의사말이 이건 자궁경부암이 문제가 아니라고 이래저래 이유를 나열하면서 종합검사를 해야된다는 말에 넘어가버렸다.  

 


"전 근데 전혀 이상증상을 못느꼈는데요?"

"그럼 다행이네요. 그래도 검사는 꼭 해야해요. 특히 지금껏 한번도 안해본 상태라면요"


암튼 그녀는 나를 옆방으로 보냈고, 옆방에 갔을땐 상담실장인듯한 여자분이 마치 식당에서 메뉴를 건네 주듯이 코팅된 종이를 나에게 내미는데 거기에는 10만원, 15만원, 20만원 세가지로 구분된 검진의 종류가 적혀있었다. 그러면서 원장님이 이거 하시라고 했다며 20만원짜리에 손가락을 가리키심..

난 이나이 먹도록 아직 산부인과 종합검진을 받아본 적이 없는 상태라 뭐 해보자 하고는 알았다고 했다. 피도 안뽑고 그냥 자궁경부암용으로 채취한 조직으로 다 검사하면 된단다.

암튼 집에 돌아오니 울언니가 얘길듣고 난리가 났다. 그 L산부인과 과잉진료로 유명한데라고.. 무료검진갔다가 20만원을 쓰고왔으니..
그래도 헛돈 쓴것 같지는 않다고 설득을 시켰다.


그런데 2주가 넘어도 결과에 대해서 연락을 안주는것이었다. 결국 내가 전화를 해 보니 이미 결과가 나와있으니 예약을 잡아주겠단다. 여긴 접수하는 직원도 굉장히 불친절 하다싶었는데 알고보니 중국인들을 담당하는 직원인듯 했다. 한국어가 살짝 어색한것이... 여담이지만 대기실에 중국인들이 굉장히 많았다.  

아무튼 최대한 빨리 예약을 잡고 찾아갔는데 검사결과에서 바이러스가 두가지나 나왔다는 거다. ㅠ.ㅠ 너무 겁먹고 무서웠는데 그 여의사는 이거 암생기는거라 당장 치료하지 않으면 큰일난다고 했다.


"아... 진짜요... 정말 하마터면 큰일날뻔 했네요...."

나는 진짜 얼굴에 핏기가 빠지는 기분을 느꼈다. 이걸 어쩌지.... 아직 아기도 안가졌는데...

"간호사, 그 스프레이 가져와봐!"

살짝 흥분한 듯한 목소리로 여의사의 갑작스런 약소개가 정신없이 이어졌다. 이 스프레이는 7만원짜린데 하나사면 오래 쓸수있고, (직접 뿌리는거 보여줌) 영양제는 24만원.. 그리고 자궁경부암 예방접종 3회까지 해야 하는데 회당 가격이 21만원에다가....

아.. 나는 암이라는 소리에 하늘이 무너지는데 그 여의사는 약값얘기만 속사포처럼 떠드는게 정말 야속했다. 환자 감정은 무시하고 돈얘기만 하면서 이거 안하면 암걸린다고 겁주는 느낌이랄까. 순간 울언니가 한 말도 생각나고해서 일단 그녀의 말을 멈추었다.

"저, 우선은요.. 남편이랑 상의하고 결정해야겠어요..."

"뭘 상의해요? 이거 방치하면 큰일나는거예요. 빨리 치료해야지"

강하다.. 왠만한 멘트로는 빠져나오기 어려울듯해서 남편이 종합병원에서 일하는데 상의해서 같이 치료받는게 좋겠다고 말했다. (사실 자서방이 프랑스에 있을때 국립병원에서 10년이상 근무한건 맞다. 물론 과는 전혀 다르지만)

그때부터 그녀는 완전 딴사람처럼 친절하게 돌변하며 말 속도를 늦추었다. 남편이 무슨과에서 일하냐 혹시 나도 병원에서 일하는지 묻는가하면 사실 뭐 암이 당장에 생기는거는 아니라고.. 진행되는데는 2-3년 걸리는거라고.. 일단 상의해 보시라고 하고는 진료를 마쳤다. 나가려는데 간호사가 '친절하게도' 메모지에 금액들을 메모해서 주는걸 받아서 나왔다.

검사결과지와 메모지를 받아들고 병원을 나오면서 생각했다.

'다신 여기 오나봐라..'  

기분이 너무 울적하기도 하고 무서웠다. 울언니한테 연락했더니 자기가 다니는 산부인과로 바로 가보라고 했다. 근처에 있는 Y산부인과-

울언니는 예전에 다른병원에서 수술해야 된다고 했는데 Y산부인과로 갔더니 K원장님께서 수술없이 잘 치료해 주신적이 있었다고 했다.  

나도 같은 산부인과로 가서 K원장님으로 진료를 접수했다. 무슨일로 오셨냐고 묻는 직원에게 L산부인과에서 받은 검사결과지와 간호사가 적어준 메모를 보여주었다. 사연을 들은 직원이 눈을 휘둥그레 뜨고는 여러번 놀라더라-

"고작 이거 테스트하는데 20만원이나다구요? 피검사도 안하고요? 왠 스프레이? 왠 영양제가 이렇게나 비싸요? 나참.."

안바쁠 시간대였기도 하고 그 병원에서 이런 사례를 종종 들었다고 하며 주변 직원들이 서너명 몰려와서 다같이 고개를 끄덕이며 따스한 눈길로 나를 보는데 나는 왈칵 눈물까지 날뻔했다. 

잠시후 진료실에 들어가 K원장님께 다시 설명을 드렸더니 옆에 서있던 간호사도 혀를 같이 찼다. 원장님께서는 걱정할 건 없고 이건 흔한 바이러스고 저절로 소멸될 확률이 높으니 1년안에 와서 다시 검사하면 된다고 하셨다. 앞으로도 최소 1년에 한번씩은 꾸준히 검사해야 한다고- 
자궁경부암 접종은 추가 감염을 대비하는 옵션이고 해당 바이러스치료와는 상관없으며 그외 메모에 적힌것중에서 필요한건 없다고 하셨다. 그리고 진료비도 받지 않으셨다. 그리고 L산부인과에서 이런 일이 많다고 본인도 들으셨다고 나직하게 덧붙이셨다.


암튼 오늘 나 정말 십년감수했다. 암걸린다그래서 별별생각을 다했다 ㅠ. ㅠ 괜히 막 남편한테 죄지은 기분까지 들고 말이다.

​그래도 테스트를 한건 잘한 것 같다. 그리고 앞으로 산부인과는 꾸준히 다녀야겠다고 절실히 깨달았다.

병원에서 장사하는거 아입니다.... ㅠ.ㅠ 멋모르는 환자 겁주고 그르지마이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