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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이야기/프랑스 시월드

며느리가 아니라 손녀처럼 예뻐해 주시는 시부모님

by 낭시댁 2021. 1. 20.

온세상에 눈이 쌓여있으니 아침에는 눈을 뜨자마자 항상 창가로 달려간다. 

 

 

 

 

뒷집에 눈사람이 하나 더 늘었다. 노란 모자를 쓴 키큰 눈사람- 


점심을 먹는데 시어머니께서 메세지를 보내오셨다. 

"너희를 위해 마쉬 샐러드를 준비하고 있단다~"

 

 

 

 

음... 잠시 갈등했다. 우리집에도 샐러드를 사다놓은게 많기 때문이다. 물론 마쉬는 아니지만... 고민하다가 결국 거절하기로 했다. 

"감사하지만 괜찮아요. 저희도 샐러드가 많아요. " 

 

 

 

 

하지만 시어머니께서는 포기(?)하지 않으셨다.

"이건 농장에서 사온거란다!" 

"그리고 나는 널 위해 참기름도 사다놓았단다."

"또 네가 오면 핫초코도 만들어 줄 수 있어."

아 이쯤되면 가야 된다...ㅎㅎㅎ



며칠전에 참기름얘기를 하신적이 있다. 뉴스에서 거의 모든 참기름에서 농약성분이 검출되었다는걸 보셨다며 유기농샵에 가셔서 나를 위해 참기름을 사오셨다고 하셨다. 이제부터 참기름은 유기농으로만 먹으라고 하셨다. 

"저 지금 갈게요. 모웬에게 미리 저 간다고 좀 전해주세요. 같이 눈사람 만들거라구요." 

시어머니께서는 알았다고 하시며 모웬이 혼자 눈위에서 노는 비디오도 보내주셨다. 이스탄불은 의외로 또 눈은 별로 안좋아하나보다. 하여간 이스탄불은 참 까다롭고 모웬은 참 안까다롭다 ㅎㅎㅎ

 

 

 

 

 시댁에 가다가 발견한 못난이 눈사람- 

 

 

 

 

당근이 꽂힌걸로 봐서 누가 인위적으로 만들긴 한거같은데 ㅍㅎㅎ 난해하다... (녹은건 아님. 왜냐면 눈이 온 후로 기온이 더 떨어졌다.)

시댁에 갔을때 시아버지께서는 늦은 점심식사를 마치고 계셨고 나는 바로 눈사람을 만들겠다며 정원으로 나갔다.

시아버지께서는 미끄러우니 조심하라고 하셨다. 

내가 며느리가 아니라 방학때 할머니네 놀러온 손녀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ㅋㅋㅋㅋ

 

 

 

그런데! 눈이 안뭉쳐진다 ㅠ.ㅠ 

장갑에만 달라붙고 안뭉쳐져... 엉엉... ㅠ.ㅠ

 

 

 

여러번 시도하다가 결국 안돼서 그냥 집으로 들어가려고 했다. 

그런데! 시어머니께서 나오셔서는 눈사람 눈에 붙이라며 커피콩을 두개 주고 가시는게 아닌가...

포기하는 모습을 보이면 안되겠다싶어서 다시 노력했다. 요용은 포기하지 않아요! 

 

 

 

 

시어머니께서 틈틈히 나오셔서 사진도 찍어주시고 지켜보고 계셔서 더더욱 포기할 수가 없었다.ㅋㅋ

"핫초코 만들어 놓을까?"

"아니요. 그냥 녹차가 좋을것 같아요. 집에서 초코케잌을 먹고 왔거든요." 

 

 

 

 

결국 장갑을 벗고 맨손투혼으로 작은 오리를 탄생시켰다.

시어머니께서 주신 커피콩으로 눈자리에 콕콕 박아주었다. 하지만 손이 너무 시려서 디테일은 더 다듬지 못하고 들어왔다. 

 

 

 

자서방에게 사진을 보내줬더니 완벽하다고 했다. 으헤헤

 

 

 

 

잠깐 밖에 있었을 뿐인데 신발이며 장갑이며 눈투성이가 되었다. 손도 너무 시리고... 

장갑은 벽난로위 명당자리에 꽂아두고는 갈때 혹시 내가 까먹고 안가져가면 말씀 좀 해달라고 시부모님께 부탁드렸다.  

 

 

 

 

"아참, 장갑 까먹은 얘기하니까 떠올랐어요. 저랑 자서방이랑 눈사람 만든다고 공원에 갔었잖아요......" 

눈사람을 만들겠다고 가놓고는 내가 차에다 장갑을 두고 내렸고, 또 공원에 가자고 먼저 제안했던 장본인인 자서방은 도착하자마자 춥다고 집에 가자고 했다고 말씀드렸더니 시아버지께서 커피를 드시다말고 큰소리로 웃으셨다. 소리내서 잘 안웃으시는데 크게 웃으시는 모습을 보니 나도 기분이 좋았다. 

 

 

 

 

벽난로앞에 앉아서 시어머니께서 준비해 주신 뜨거운 녹차한잔을 마셨더니 몸이 금새 다 녹았다. 대신에 볼이 새빨개져서... ㅠ.ㅠ 얼굴이 에스키모같이 변했는데 시어머니께서는 자꾸 내 얼굴을 사진으로 찍으셨다. ㅠ.ㅠ 앙대요...앙대...

"예쁜데왜~ 마 벨피으 마 졸리 피으..."  

프랑스어로 며느리는 벨피으 (Belle-fille) 인데, 벨 (Belle): 아름다운, 피으(Fille): 딸, 이 두단어가 합쳐진 것이다. 그걸 몰랐던 나는 한동안 고대로 직역해서 항상 시어머니께서 나를 예쁜 딸이라고 부르시는줄 알았다. ㅎㅎㅎ 그런데 지금은 벨피으라고도 부르시고 마 졸리 (jolie: 역시 예쁘다는 뜻이다) 피으 : 내 예쁜 딸이라고도 부르신 것이다. 

비록 얼굴이 에스키모가 되었고 그 사진을 또 친구분들께 뿌리시겠지만 ㅠ.ㅠ 그래도 예쁘다고 해주시니 뭐 ....;; 맘껏 찍으셔요...

 


모웬! 너 어디 숨어있다가 이제서야 나온거냐!!! 나 혼자 눈사람, 아니 눈오리 다 만들었자나~!! 

 

 

 

뒤늦게 나타난 모웬이 얌전하게 내 앞에 앉아서 눈인사를 건넸다. 그리고는 잠시후 내 부츠에 있던 눈이 녹아내려서 바닥에 물방울이 떨어져있었는데 거기에 코를 대고 자꾸 킁킁거렸다. 아 미안하다고... 내가 그랬다고...

 

 

 

 

모웬! 내가 만든 오리 봤어? 나가서 구경해봐~!!

모웬은 나가서 잠시 바라보더니 올라가지는 않았다. 눈이 너무 높이쌓여서 점프를 못함... 

 

 

 

녹차를 다 마신 후 집에 가겠다고 일어났더니 시어머니께서 봉지에 이것저것 준비하신 것들을 담아주셨다. 

 

 

"바닥에 호일에 쌓인건 뭐예요?"

"내가 만들 갈레트란다. 부르주식이지." 

"근데 너무 많은것 같은데요..." 

시어머니께서는 안많다며 잽싸게 봉지를 닫으셨다. 

집에와서 보니 커다란 갈레트가 3조각이나 들어있었다;; 

 

 

집에왔더니 자서방이 갈레트를 보고 너무 좋아했다. 이래서 시어머니께서 세개나 싸주셨구나... 우리집 냉장고에 먹을게 너무 많이 쌓였는데 저건 또 언제 다먹나... 

자서방은 본인도 고향이 부르주인데다 시어머니표 수제 층층 갈레트는 특히 최고라고 했다. 결국 세조각 중 하나는 저녁에 먹기로하고 두개는 각각 수비드 기계로 진공포장을 한 후 냉동실로 보냈다.

유기농 참기름은 샐러드 드레싱 만들때 써야겠다. 과일은 항상 내가 가면 바구니에서 몇개씩 담아주곤 하신다. 진심 시댁에 갈때면 시부모님께서 나를 며느리가 아니라 손녀로 대해주시는게 아닌가 싶을 지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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