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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이야기/프랑스 시월드

내가 잘 먹으면 시어머니께서는 고맙다고 하신다.

by 낭시댁 2021. 12. 16.

오전 10시.

한글서류를 프랑스어로 번역을 맡겨야 하는데 번역비용을 우편으로 부치라는 요청을 받았다. 20유로짜리를 깨야 해서 슈퍼에 가야하나 망설이다가 시어머니께 연락을 드려보았다. 우리 시어머니는 지갑도 확인하지 않으신채로 잔돈은 무조건 있으니 오라고 하셨다. 거기다가 어제 구운 쿠글로프도 얻어가라고 하시면서-

전날 갓 구워져 나온 쿠글로프. 우리 시어머니께서 자신있어 하시는 요리중 하나이다.


시댁에 갔더니 시아버지께서는 외출하셨고 시어머니께서는 따뜻한 벽난로 앞에서 크리스마스 메뉴를 참고하시려고 책자들을 보고 계셨다.

"통나무 계잌을 주문할거란다. 이건 어떠니?"

크리스마스 음식준비를 혼자서 도맡아 하시지만 힘든 내색은 커녕 오히려 들뜨신것 같다.

"이건 매년 크리스마스때마다 준비하는건데 기억나니?"

요즘에 내가 꽂힌 사과 오이향이 나는 녹차를 한잔 뽑아왔더니 시어머니께서는 과자와 초콜렛을 봉지채 갖다주셨다.

"어제 우리집에 저녁식사를 하러왔던 지인이 선물로 샴페인이랑 이 과자들을 가져왔더라구. 달아서 우린 안먹는게 좋을것 같아. 너 갈때 가져가거라."

"초콜렛이 코르크마개모양이네요, 너무 귀여워요! 근데 초콜렛은 아버님이 좋아하시고, 과자는 크리스마스때 다같이 먹으면 되잖아요."

"아니다. 크리스마스때 먹을 과자는 이미 다른걸로 내가 사다놨으니 초콜렛이랑 모두 가져가다오 제발."

이게 바로 크리스마스를 위해 미리 사다놓으신 과자이다.

"과자는 일단 맛만 볼게요. 여기 뒀다가 손님오면 커피랑 같이 드시면 되겠네요."

음... 맛있다. 내 스탈...ㅋㅋ 정 그렇게 원하시니 제가 접수해드려야겠네요...

마카롱이랑도 좀 비슷한데 식감이 그보다 폭신폭신하다. 달콤한 계란빵 느낌도 나고-

시아버지께서 곧 외출에서 돌아오셨고 에스프레소를 한잔 뽑아서 벽난로 앞에 앉아있던 우리와 합류하셨다. 그리고는 곧 내 앞에 있던 초콜렛을 발견하셨다.

"오, 초콜렛!"

반가운 표정으로 초콜렛을 집어드시다가 곧 시어머니의 잔소리를 들으셨다.

"애들도 아니고 참내... 내가 얘더러 가져가라고 일부러 챙겨준건데 그걸 물어보지도 않고... "

우리 시아버지 난처한 표정을 지으시더니 초콜렛을 3개만 꺼내신후에 리본을 다시 고이고이 묶어서 내 앞으로 슬쩍 밀어주셨다. 그 모습에나는 또 빵터졌다.

"아니에요, 저는 안가져간다고 말씀드렸던거예요."

다시 밀어드렸지만 아버님은 아무말씀없이 내 앞으로 도로 밀어주셨다. 🙄

"점심식사하고 갈래? 부당 안먹어봤지?"

"아니예요, 어제 먹다남은 김치볶음밥이 있어서 저는 오늘 그걸 먹어야해요."

오븐에 익어가는 부당과 구운 사과

부당은 프랑스 피순대라고 가르쳐주시며 오븐을 열어서 익어가는 모습을 보여주셨다. 특이하게도 구운 사과와 함께 먹는다고 하셨다. 밑에는 구운 감자인줄 알았지만 왠걸, 사과라니...!?

"한국에도 부당같은거 있지 않니? 많은 나라에 이런 비슷한 요리가 있더라구."

"네! 순대라고 있어요. 대신 당면이 들어가지요."

"그렇구나! 부당에는 다진 양파만 좀 들어간단다. 그런데 나는 안좋아해서 미셸 혼자 먹을거야. 내가 먹을 연어구이랑 구운 감자도 따로 준비했지."

이것저것 가져가라고 챙겨주시던 시어머니께서는 쿠글로프를 권하셨다. 사실 쿠글로프는 많이 먹어서 그다지 생각이 없었는데...

"우리는 저거 다 못먹어... 저 반쪽도 옆집에 준거야..."

"안드실건데 왜 만드셨어요?"

"그냥 만들고싶어서... ㅎㅎ"

우물우물 대답하신후에 어색한 웃음을 끝에 덧붙이셨는데 그 모습에 내가 크게 웃었고, 또 내가 웃으니까 시어머니께서는 더 크게 따라서 웃으셨다. ㅋㅋㅋ 아 어무니 너무 웃겨요ㅋㅋㅋㅋㅋ

"저는 맛만보게 한조각만 작게 잘라주세요."

"오, 그래! 고맙다 고마워!"

마치 내가 마음이 변하기라도 할까봐 빛의 속도로 칼을 가져오셔서 후다닥 쿠글로프를 잘라주시는데 연신 나에게 "고맙다, 정말 고마워"를 반복해서 말씀하셨다.

"왜 저한테 고맙다고 하세요ㅋㅋ 제가 고마운건데요."

"아니야, 정말로 고마워. 이걸 다 어떻게 먹나 걱정했는데 역시 네가 최고다. 호호"

"아니, 근데 그건 작은 조각이 아니잖아요! 절반이나 자르셨어요..."

"한 조각이야. 안커 안커"

이미 봉지에 쿠글로프 조각을 둘둘 말아서 내가 확인을 하기도 전에 내 가방에 담으셨다. (이렇게 사랑스러우신 시어머니시라니...ㅋㅋ)

그 외에도 빌베리 수제잼도 세병 주셨고 조갯살 캔도 하나 주셨다.

시댁을 나올때 시아버지께서는 코르크모양 초콜렛을 들고 따라나오셨는데 나는 끝까지 거절했다. 그건 아버님 드셔요... 😋

쿠글로프는 우유랑 먹으면 제일 맛있는것 같다. 자서방이랑 같이 알뜰하게 클리어했다.

요리하는걸 더 좋아하시는 시어머니와 먹는걸 더 좋아하는 며느리라니, 찰떡궁합이 아닌가 싶다.

그런데요 어머니... 다음에는 좀더 작게 만드시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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