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업시간에 선생님께서 오늘 캠퍼스에서 벼룩시장이 열리고 있다며 쉬는 시간에 가보자고 하셨다.
"그럼, 쇼핑 좀 해 볼까요?"
지갑을 들고 우리는 선생님을 따라 나섰다.
캬... 날씨한번 조쿠나...
캠퍼스 한쪽구석에서 옷이나 악세서리등을 팔고 있는 사람들이 보였다.
선생님께서는 미리 봐두셨던지 곧장 예쁜샌들을 20유로에 구입하셨다. 신발상자에는 42유로라고 써져있었는데 상태가 아주 좋았다.
그리고 내 친구는 너무나 예쁜 빨간 드레스를 4유로에 샀다.
임시 탈의실로 사용하는 작은 창고가 있었지만 줄이 길었고 친구는 어찌나 날씬한지 청바지를 입은상태로 겉에 드레스를 입은것이다.
그리고 나는... (진짜 에피소드는 지금 시작됩니다.)
바지를 두개 골라서 탈의실을 기다리는데 다들 수업하러 돌아가고.. 선생님께서는 시장이 곧 파장이니 나더러 후딱 입어보고 돌아오라고 허락해주셨다.
그렇게 마침내 들어간 탈의실.
저기요... 유리로 다 보이는데요... 😳
일단 바쁘니까 대충 입어야겠다. 앞에 별 도움 안되는 수레를 끌어다놓고 후다닥 바지를 갈아입으면서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내가 40대가 되니 이런 상황에도 초연해지는구나...(이 단어를 이런 상황에 막갖다써도 되는지 모르겠다.)
그런데! 황당한 일이 발생했다.
출입문 유리쪽을 노려보면서 내가 바지에 다리 한쪽을 겨우 집어넣었을때 갑자기 반대편 문이 열리더니 40대쯤 돼 보이는 남성이 아무렇지 않게 걸어나오는 것이었다.😱😱
그것도 모자라, 내가 다리 한쪽을 헐벗고 있는 걸 못봤는지 나에게 "봉쥬!"하고 친절하게 인사까지 건네는 이 남자.
순간 얼음처럼 굳어있던 나는, 또 동방예의지국 출신인지라, "봉쥬"하고 인사를 받아준 후 바지를 마저 입기 시작했다. 이 남자, 그제서야 상황을 파악하고는 기절초풍하면서 "미안해요미안해요! 나 진짜 몰랐어요!" 라고 외치면서 나왔던 문으로 다시 쏙 들어가버렸다.
내가 바지를 마저 입는동안 그 남자는 그안에서 계속 미안하다고 어쩌고 저쩌고 외치고 있었고 바지를 다 입은 나는 오히려 그 문을 열고 그 남자를 달래는 상황이 연출되었다.
"괜찮아요. 이제 나와도 돼요."
이 남자는 아직 내 눈치를 보면서 못나오고 있는데 나는 여유있는 표정으로 내부를 둘러보면서 말했다.
"혹시 거울 없으세요?"
남자는 거울이 없다며 세상 미안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나는 한술 더 떠서
"이 바지 어때요? 🤔 거울이 없어서 모르겠네요."
이런 뻔뻔한 소리까지했다.
남자는 내가 입고 있는 바지를 노려보며 진심을 다해 감상평을 속사포처럼 쏟아내기 시작했다. 물론 거의 못알아들었지만 괜찮다는 소리같았다. 미안하기도 하고 자기도 놀랬기도 하고 많이 당황한 상태같았다.
여전히 멀뚱멀뚱 서있는 남자에게 나는 다시 옷을 갈아입어야 한다는 의미로 "Je peux?" 라며 내 바지를 가리켰더니 이 남자는 "아! 네네!" 라는 대답과 동시에 바람처럼 푱 사라졌다.
창고를 나오는데 나에게 탈의실을 안내해 줬던 옷파는 언니가 달려와서 미안하다며 어쩔줄 모르는 표정으로 연신 사과를 했다.
"거기에 사람이 있는줄은 진짜 몰랐어요. 분명 확인한다고 한건데.."
"괜찮아요. 이 바지 얼마에요?"
너무 쿨한 대답이 나와서 당황했던지 선뜻 대답을 못하는 그녀.
"음.. 얼마로 해 드릴까요?"
"저는 모르겠어요."
"그럼...5유로...?"
자기가 말하고도 확신이 없는지 내 표정을 살피는 그녀.
아마 내가 공짜로 달라고 해도 줬을것 같은 얼굴이었다.
새것과 다름없는 망고바지를 5유로에 득템하다니! (이미 탈의실에서의 기억따위는 다 잊음)
수업에 늦어서 얼른 돈을 지불하고 바지를 들고 강의실로 날아(?)가는데 아까 그 남자가 저쪽에서 동료들이랑 서 있다가 나랑 눈이 마주쳤다. 둘다 동시에 반갑게 눈인사를 건넸다ㅋㅋㅋ 누가 보면 완전 친한줄 알았겠네.
수업이 끝나고 친구들한테 얘기해줬더니 웃겨죽는다.
봉쥬라니... 거울 없냐니... 이 바지 어떻냐니... 내가 생각해도 내가 참 웃기다.
예쁜바지 싸게 잘 샀으니 오늘은 그저 또다른 좋은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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